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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GM-79의 삼국사기 이야기

과연 이 시대에 책을 읽는 것은 무의미할까? 본문

역사이야기/역사잡설

과연 이 시대에 책을 읽는 것은 무의미할까?

짐순 폰 데그레챠프 2014. 11. 8. 12:25

얼마전 서울 부모님 집이 집수리를 했습니다. 어디선가 물이 새서 아랫집으로 흘러내려 보일러를 틀지 못한 지난 겨울은 전기장판에 의지해야 했지요. 그 공사 덕분에 평소에 먹었던 욕의 10년분의 욕을 먹은 것 같습니다. 춘천 집에서 쌓이다 못해 주방까지 쌓이던 책들이 또 서울에도 쌓였거든요. 책장도 꽉 차서 바닥에 굴러다니는 책을 어떻게 하느냐 문제로 공사도 좀 꼬였거든요. 한 번에 확 해치우지 못하고 부분적으로 하나 끝내고 짐 옮기고 또 다른 부분을 공사하고.. 모든 책을 꺼냈다 꽃았다를 너댓번은 한 것 같습니다.


그나마 짐순이는 발굴보고서나 학술지는 안모으는 주의라 단행본밖에 없어요. 3천권에 못미치는 책(그나마 군사잡지랑 만화책은 제외)으로 낑낑대는 중입니다. 많다고요? 그 책이 만화라던가 소설책이라면 좀 많은 양이겠지만 상당부분은 자료입니다. 게다가 이 바닥의 책은 일반적인 단행본들과 달리 많아야 500권 찍으면 그게 답니다. 저자가 고료대신 가져가는 게 100권 남짓, 도서관에서 사주는 게 100~200권 남짓, 그리고 남은 초판이 소진되는데 길게는 10년. 좀 지나서 2쇄만 찍어도 체감상으론 이문열의 삼국지 느낌이죠. 뭐시기 우수학술도서가 되면 각급 도서관에 뿌/려/지/기 때문에 바로 2쇄를 찍습니다만, 그게 아니고 계속 찍는 책은 굇수책이지요. 


하여간 그런 책을 바로 구할 수 없을 때도 생겨요. 도서관에서 빌려보면 된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필요할 때, 개인적으로는 주로 깊은 밤입니다, 그걸 손에 넣기도 어렵고, 필요한 책을 다 볼려면 국립중앙도서관 옆에 사는 방법밖에 없어요. 뭐, 책을 쓴다거나 대단한 논문을 쓰는 것도 아닌 이 블로그에다 쓰는 뻘 글을 적을 때조차 자료가 많이 필요해요. 어떤 글은 한 줄에 한 권이 필요한 녀석도 있어요. 드라마 보고 화면 캡쳐해서 해설글 쓰는 게 편하긴 한데 또 그건 성격상 홧병 생길 것같으니 못할 것 같고.. . 아냐 드라마 보며 열받고, 또 그걸 해설한다고 한 줄에 책 한권을 펴겠지.  짐순이는.. , 


그저 책보고, ㅎㅇㅎㅇ거리는 게 좋아서 이걸 보는 건데, 욕을 잔뜩 먹고 있을 때는 참 뭔가 싶어요. 이걸로 돈을 버는 것도 없습니다. 오히려 까먹는 것에 가깝지요. 어느 기업에서 이리도 비효율적인 비용처리를 했다면 즉시 잘릴 일입니다. 차라리 이 책들을 샀을 돈으로 분칠하고 차려입는 게 더 낫습니다. 다들 그렇게 이야기하지요. 또는 이제 스마트 기기가 넘쳐나는 시대에 책은 의미 없다는 말을 하고, 실제로 많은 이들이 그렇게 살고 있습니다. 해당전공자들 숫자보다 훨씬 적은 책들도 안팔리는 마당에 다른 분야의 책은 더 말할 나위도 없지요.


이런 개인적인 징징거림은 제쳐두고, 좀 더 큰 이야기를 해봅시다. 


자본주의랑 황금만능주의는 언제나 짝꿍처럼 다니는 지라, 아니 인간의 경제는 언제나 그런 생각 속에 있었다만, 현대의 대한민국은 그런 생각이 다른 생각이 싹틀 기회를 아예 밟아버리고 있달까. 하다못해 그렇게 하고 싶어 환장하는 응용기술의 환금화조차도 그 배경에는 전혀 경제적으로 보이지 않는 기초학문에 대한 막대한 투자가 있은 후에 가능하다는 걸 모르고 있지요. 좀 더 쉽게 말하자면 사람들이 익히 알고 있을 그 돈되는 기술적 성취도 사실은 돈이 되지 않는 일에 멍때리는 극소수의 잉여들과 그들이 생존하고 더 나아가 더 잘 멍때리도록 지원한 사회시스템에서 생겨났다는 겁니다. 하다못해 돈이 되는 기초과학에 대한 투자나 인식도 그따위인데 정말 돈과는 거리가 먼 인문학이 살아 숨 쉴 공간이 만들어질까? 그들이 이야기하는 것을 들어줄 사람이 남아있을까?


그냥 잠 적게 자고 덜 쉬고 업무시간만 늘리면 되는 것으로 한국은 세계에서 제일 가난한 나라에서 그럭저럭 먹고 사는 나라로 발전을 했어요. 그런데 지금에 와서도 그 방식이 유효하냐는 것은 또 다른 이야기지요. 공부 못하던 초등학생, 방에 가두고 책을 달달 외우게 시키면 시험에서 점수가 잘 나옵니다. 소위 하위권에서 중상위권까지는 치고 올라갈 수 있긴해요. 그런데 중상위권에서 그 이상은 노릴 수 잇을까? 또는 그 무식한 방식을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에서 어른이 되어서도 쓸 수 있을까요? 노력 문제가 아니라 그냥 책을 외우는 것 말입니다.


중학교 시절에 짐순이는 공부랑 담을 쌓아서 정말 절망적인 성적표를 받았습니다. 중3 1학기 영어점수가 10점대였던가. 죽도록 혼난 연후에야 방학 때 수업도 따로 받기도 하고, 이해가 전혀 안되는 책을 죽어라 연습장에 적어가며 외웠어요. 정말 책을 말 그대로 필사를 했습니다. 2학기 중간 고사에서 65점이 나왔지 싶어요. 물론 그 이후에는 필사는 안했지만 그야말로 미친 공부를 하긴 했어요. 초등학교 4학년인가부터 수포자였으니, 거기는 운동부랑 전교수석을 경쟁하는 정도여서 아예 제쳐놨는데, 영어에 한해서는 수학 맞은 개수랑 영어 틀린 점수가 겹치는 정도는 갔어요. 65점부터 그 이후는 여름방학처럼 해서 올라간 것일까요? 영어공부, 정말 독하게 해보신 분들은 아시죠? 진짜는 국어실력에서 나온다는 거, 


우리가 그걸 모국어로 쓰는 게 아닌 이상 결국 머리 속에서 우리말로 변환하는 추가작업이 필요로 하지요. 아무리 영어에 대한 기교가 탁월하다 해도, 그걸 소화할만한 국어실력, 아니 그걸 떠나서 문장 자체를 이해하고 음미할 능력이 부족하면 말짱 꽝이에요. 아무리 좋은 전기를 만들어도 가정 집에 들어가는 전력선이 엉망이면 기기 손상만 불러오듯이요. 지금도 종로의 무수한 학원에 수강생이 바글거리지만, 일부지만 애들 혀를 손댈 정도로 영어에 광분하는 나라지만 실제 영어구사력은 떨어지는 것처럼요. 다들 한국애서 가장 고급 영어를 구사한다는 유엔 사무총장 발음 비웃기나 하지.


짐순이의 치부를 드러내며 영어로 예를 들었지만, 공부라는 게 그렇습니다. 단순한 기술을 축적하는 것은 초급 단계에서도 가능하지요. 포토샵의 기본 기능을 다 사용할 줄 안다고 해서 그래픽 디자이너가 되는 건 아니잖아요. 그 다음 단계로 가는 것은, 또는 그러한 수준의 것을 이해한다는 것은 단순한 기술 공부를 넘어 깊이 있는 공부가 필요하다는 겁니다. 이제 경제적으로 선진국대열에 들어간다는 대한민국은 종전의 방식을 뛰어넘을 준비가 되었을까?


현실은 그렇지 않죠. IT를 예로 들면 삼성은 독자적 OS를 만들지 못하고 남의 생태계를 빌어 조립만 할 줄 안다고 욕을 먹지만, 대한민국은 독자적 OS를 만들고 정착시킬 기반을 갖추었을까요? 그렇다면 우리보다 기술적 바탕이 탄탄한 나라들은 왜 윈도와 맥OS, IOS, 안드로이드를 쓸까? 하다못해 유럽도 유로파이터를 공동으로 만들 듯 하나 공동으로 만들어도 될텐데. 마치 김대중 정부시절 한중일 공동으로 아시아눅스 추진하듯 하나 해도 될텐데.. . 아마 여기에 대답을 내놓을 수 있는 사람은 뭐가 문제인지 이해하고 있거나 네이버나 위키백과에서 본 걸로 이야기하는 바보들이겠지요.  단순히 국지적으로 코딩실력이 딸려서가 아니라 전체를 구성하는 무언가가 아직 충족되지 못한 것이겠지요. 거기에 물론 어른들의 사정도 치명적인 요인으로 보였겠지만요. 그걸 돌파하는 것도 결국 시야가 어디까지 넓어질 수 있느냐가 근본 문제가 됩니다, 


어차피 제조업 수출로 먹고 사는 나란데, 다들 신기술빠는 사람도 많은데, 그 기술의 스펙에 대해선 능통하지만 정작 그 기술을 어떻게 구사할지에 대해서는 고민하지 않으려는데 무슨 창조가 나오고, 혁신이 나오나요? 인문학적 사유가 어쩌구 떠들지만 정작 그거 팔아먹는 사탕발림이나 보는 것조차 대견할 정도의 현실인데 거기서 속빈 강정같은 구호는 무슨 대단한 의미가 있나요? 타이포그라피와 경영학적 잔재주가 기술적 혁신이자 인문학적 진보로 포장되고 다들 그게 진짜라고 숭앙하는 정도에서 뭐가 대단한 걸까요? 물론 시장의 형성이라는 측면에서 말한다면 전적으로 지지할 의사는 가지고 있습니다.


기술적 성취나 사회적 진전에도 해당 기술이나 사회과학 이론들이 필요하지만 결국 그것을 구성하는 기본 구성은 인문학적 토대입니다. 새로운 것에 대한 접근 방식, 인간 그 자체에 대한 기본적인 인식이 깔려있어야 합니다. 인간의 경제적 예속을 파쇄하겠다던 사회주의 실험이 실패한 한 것도 실상은 해방자를 자처하던 이들 역시 욕망의 화신이었다는 문제였지만, 기본적인 접근부터가 인간에 대한 이해가 많이 부족한 이른바 탁상공학의한계였지요. 그이에도 도상연습에서는 좋았던 많은 이론들과 정책, 기술자들의 기술적 고안들이 결국은 실패로 끝난 것에는 바로 인간과 사회에 대한 이해부족, 또는 그에 대한 비중 무시, 몰이해에 기반됩니다.


세부적인 면에서 모두 긍정하는 건 아니지만, 예전에 우석훈선생님이 "너와 나의 사회과학"에서 이런 이야기를 한 것을 기억합니다. 네덜란드를 예로 들면서 독자적인 이론을 만들어내지 못하는 나라의 번영은 오래갈 수 없다라는 이야기를 한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이만큼 발전하는 데는 여러 요인이 있었지만 그저 따라가도 되었어요. 보름달빵과 우유 200ml, 더 올라가면 각성제를 먹으며 밤에도 재봉틀 돌려가며 평화시장에서 일을 열심히 하면 먹고 살았던 시대 얘깁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게 그대로 하면 꾸준히 올라갈까요? 한국사회에 저출산이니 경제성장율 감소나 IMF는 일 안해서 온 것일까요? 이상하게 대한민국의 표면적 지식축적은 전태일이 스스로 불태우던 시절보다 나아졌는데, 사람들의 인식은 더 나아진 게 없죠. 그야말로 "달라진 건 많은데 나아진 게 없었다"(UMC, "잠못드는 밤 비는 내리고" 중에서)는 형국이죠.


진짜 우리에게 잃어버린 세월은 어느 국회의원이 근로기준법 말아먹는 법안을 내놓아도 상관없는 그 당이 2기째 해먹은 시간이, 7%, 8% 찍던 성장률이 3~4%찍는 시절이 아니라 우리의 사유가, 인식이 더 나아지지 않는 순간에 올 겁니다. 모두가 철학자가 될 수는 없어요. 철학만 해서도 안되고요. 그러나 그 철학이 살아 숨쉴, 그 밖에도 다양한 인식이 살아숨쉴 공간만 되어도 우리는 잃어버리는 건 육체적 젊음 밖에 없어질 겁니다. 모든 것을 해결해주진 않는다고 하여도, 모든 것을 잃어버리진 않을 겁니다. 그게 참으로 잉여스럽고 뜬구름 잡는 인문학이 진짜 하는 일이지요. 그냥 이상한 사람들이 말장난하는 책에 인문자 들어간다고 그게 아닙니다. 사실 자기계발서를 매우 혐오하는 쪽이지만 진짜 인간을 이해하고, 또는 알기 위해 노력하다 나온 책은 천번은 아파야 한다. 아픈게 당연하단 말 못해요.(야! 천번 아프기 전에 사람 죽어! 조, 기장, 수수 껍질이나 까라구..)


그냥 닥치고 책을 읽어라는 건 아닙니다. 짐순이도 상당부분은 넷에 기대고 있고 상당수의 자료는 전자화일입니다. 학교에서만 공부하는 건가요? 세상에는 다양한 방식이 있어요. 뭘 선택하던 그건 자유입니다. 다만 가장 효과적이고 거품과 거짓이 많이 걸러진 수단이 책이라는 것만 말씀드릴뿐. 한국의 무의미한 노동시간 과다랑 돌아가는 세상이 수정과의 잣같고, 먹고사니즘은 생각의 음미를 막는다는 것도 모르진 않습니다. 그러나 그 GR맞은 현실을 제대로 인식하는 것까지 외면하면 결국 지주전호제갔다가 농노제 가고, 나중에 우리는 라티푼디움에서 일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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