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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GM-79의 삼국사기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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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고대사이야기/고대사 잡설

비명을 지르지 않는 고대인

짐순 폰 데그레챠프 2015. 2. 19. 16:35

얼마전까지 가재는 고통을 느끼는 통각기관이 없다고 알려졌습니다. 펄펄 끓는 물에 살아있는 가재를 넣는 요리가 너무 잔인한 것 아니냐는 이야기에 나온 답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정말 가재는 고통을 느끼지 않을까요? 어디선가 나온 이야기에는 물에 집어 넣을 때 뭔가 터지는 소리가 난다고 하는데 그게 가재의 비명이라고 합니다. 동물은 불쌍하니까 먹지 말자는 사람들도 서슴없이 먹어도 된다는 식물 조차도 베어지고 뽑혀질 때 특수한 호르몬을 방사해 주변의 동료들에게 위기를 알린다는데, 동물이라고 완전한 벙어리겠습니까? 그걸 우리가 들을 수 없다는 것이겠지요.


요즘에야 귀찮아서 언급도 안하고 있지만 여전히 고구려가 우리의 미래이고, 앞으로 나가야할 지향점이라고 나불나불대는 사람들은 많습니다. 요즘 이런저런 일로 신경이 분산되어 화를 낼 정도로 들여다보진 않지만(연말연시라 솔로몬 요새랑 아 바오아 쿠에서 자쿠랑 돔이랑 한 판 뜨고 왔심. 브이~!) 여전히 보면 ㅂㅅ같아요. 트위터, 페북 쳐다보다 IS 가입하겠다고 집나서는 애들하고 다른 게 뭐냐고.. .


고구려가, 그래 땅따먹기 열심히 했다고 칩시다. 그 전쟁은 누가 뛰는 겁니까? 가뜩이나 인류의 생산력이 한참 발달하기 전에, 중국에선 춘추시대에 이미 벌벌 떤 전비조달을 누가 합니까? 화살이 비처럼 떨어지고, 고슴도치처럼 창날이 수십, 수백, 수천 개가 날 세운 곳에 돌진해야하는 건 누군가요? 다들 그 시대 돌아가면 말 타고 칼 휘두를 것 같죠? 99% 달려가는 병졸 34782번이죠.(그래도 올빼미는 면한 거당! 와아~!)


뭐 지하자원이 중요한 현대도 아니고 끽해야 철이나 캐고 나머지는 농사짓거나 가축 부리는 게 전부인데, 저 북쪽 땅이 전부 호남평야, 김제평야, 팜파스도 아니고. 가뜩이나 3대 왕조질 하느라 말아먹어 그리 티도 안나보이지만 거긴 세종대왕이 다스려도 남한의 농업생산력을 따라잡을 방도가 없죠. 쌀이 아니라 기장, 수수, 조가 주식인 동네입니다.(요즘은 옥수수 낱알로 밥해먹는다는 선택지가 늘었죠) 만주? 맨날 만주평원, 만주평원 하니까 거긴 산도 없을 것 같지?


그나마 백제나 신라 쪽이 사정이 낫다지만 그래도 살만하다는 백제쪽 평야도 그 생산 능력의 반도 이용하지 못했을 겁니다. 그런 시대에 중요한 인적 자원 갈아넣고, 물적 자원의 대다수를 전쟁을 위해 밀어 넣어야죠. 관산성이나 아막성에서 3~4만 병력 증발한 것이 마치 2차 대전 중 독소전에서 1개 군단 날아간 것과 같지 않아요. 


평화시라도 힘든 건 다르지 않아요. 뒤에 이야기하겠지만 고대의 지배층이 특별히 애민의식을 가졌다는 증거는 없어요. 개인의 선의만이 존재할 뿐이지. 적어도 우리는 이렇게 해야한다는 방향성은 존재하지 않아요. 애민愛民을 이야기하는 유교경전을 읽어도, 그건 토익책 보듯 읽었지 내용을 음미하고 그걸 실제에 적용하려는 생각을 잘 못했던 시대입니다. 설령 그런 사람이 있어도 특수한 경우지, 보편적인 경우가 아니란 말입니다.


아무리 조선이 망하는 과정이 지리멸렬해도(아니, 망할 때 아름답게 망하는 나라가 어디 있음?? 풋) 그래도 그 시대에 사람들을 어떻게 잘 이끌까 고민이라도 하고, 이거저거 열심히 시도해 본 나라가 몇이나 있다고. 그 잘났다는 서유럽도 우리가 연분 9등법이니 차등적인 세제 시도할 때, 거긴 재무장관 숙청하는 것으로 수입을 거두고 그랬는데. 망하기 100여년 전까지도 실제 법이 어떻게 잘 적용될까 고민하고, 왕이 세법의 틈새 이용해서 아랫 것에게 부담 전가하는 것을 증오한다고 어전회의 시간에 이야기 했지요. 과연 조선의 현실은 어땠을까요?


국가 백년의 가장 고질적인 폐단은 양역(良役)이니, 호포(戶布)・구전(口錢)・유포(遊布)・결포(結布)의 말이 어지러히 번갈아 나왔으나 적절히 따를 바가 없습니다. 백성은 더욱 날로 곤란해지고 폐해는 날로 더욱 심해져 간혹 한 집에서 부자(父子)・조손(祖孫)이 군적(軍籍)에 이름이 편입되기도 하고, 간혹 한 집에서 3, 4형제가 직접 군포(軍布)에 응하기도 합니다. 또 이웃의 이웃이기 때문에 책임을 당하고 일가의 일가이기 때문에 징수를 당하게 됩니다. 어린 아이는 젖 아래에서 포함되고, 죽은 사람은 지하에서 징수를 당하며, 한 사람이 달아나면 열 가구가 보존되지 못하니, 비록 현명한 재상・어진 수령이 있더라도 또한 어찌할 수 없습니다. - 영조실록, 23년(1747) 10월 23일 기사


우연히 발견한 실록의 기사로 영조에게 군포제의 폐단을 고하는 전라감사 조영로의 상소 일부입니다. 고대에 비해서, 동시대 여러 나라들에 비해 조선의 제도 정비는 정교했고, 또 이렇게 하고 싶다는 선언적 의미의 청사진보다 실제로 운영하는 것에 가깝습니다. 그런데도 실제론 구멍이 많았어요. 황구첨정, 백골징포야 다들 세도정치기의 대표적인 부정으로 알지만 실제로는 그 이전부터 있었던 것이죠. 영정조 시대에도 국가는 지주에게 부과하는 세금을 소작농에게 돌려버리는 이른바 '갑의 횡포'를 없애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러나 그건 현실화하지 못하고, 세도정치기에 꽃을 피우지요.(아, ㅆㅂ. 눈물부터 닦고..)


어떤 이들은 삼국시대부터 정교한 국가운영 시스템을 가졌다고 보기도 합니다. 그게 그렇게 보인다면 인구가 적고 한정된 거점에 모여살다보니 관리가 약간 편해보여서 그런거고 정말 그대로라면 조선왕조 518년 동안 경국대전의 시스템이 완벽하게 돌아갔다는 얘기랑 다를 게 없어요.(아마 조선시대 전공자에게 이렇게 말하면 환빠나 일베충보듯 바라볼 겁니다)


그래도 조선이 대단해 보이는 건 저게 문제라고 인식하고 어떻게든 고쳐보려고는 했다는 거지요. 그러나 고대에도 그랬을까? 지배자들이 신성한 권위에 의지하고 있던 시대는 단순한 신분제 사회와도 다릅니다. 그냥 법제적으로 사람을 가르는 게 아니라 신성한 권위에 의해 기본적인 품종이 다르다는 인식이죠. 이런 시대에 애민정신이라고해도 그건 개인의 품성입니다. 좀 더 나아가자면 돌아가신 고려시대 경제사의 거두셨던 강진철 선생님은 아예 고려의 무인정권 시대 전은 고대로 보지요. 경제사의 입장에서 본다면 소득의 차등에 따른 세금부과가 아니라 인두세적 성향이 강하다는 면에서요.


물론 고구려에서 최소 3등분의 세금 부과 기준이 있고, '기사 해석에 따라' 농경민과 유목민의 세금 부과 기준의 차이가 보입니다. 그러나 그게 얼마나 실질적으로 유효했는가에 대해서는 좀 더 조심스러워야 하죠. 우리는 그 시대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부담을 가지고 살았는지 알지 못합니다.


포에니 전쟁이 끝난 후 헐벗은 모습으로 나타나 그라쿠스 형제의 농지법 개혁을 촉발시킨 노병도 존재하지 않고, 겨울에 소매없는 옷을 껴입으며 죽지 못해 살아가는 농민을 노래한 시도 가지지 못하였지요.(야마노 우에노 오미 오쿠라, 빈궁문답가) 너무 지친 나머지 사슴이 울타리에 올라 해금을 켜는 환상을 보는 노래도 후대인 고려시대의 노래입니다.(청산별곡) 그나마 고대인의 목소리가 나오는 것이 신라 하대에 들어서야 부모를 먹이기 위해 자식을 땅에 묻으려던 손순이란 효자나, 부모 봉양을 위해 자신을 팔아야 했던 아가씨, 지은의 이야기입니다.


아쉽게도 고대의 기록의 상당수는 매우 단락적인, 앞 뒤가 빠진 짤막한 단신들과 1%도 안되는 사람들의 일부 성공담과 실패담입니다. 짐순이는 그것에 의지해 환상을 품고, 그것을 남에게 강요하는 행위를 이해할 수 없어요. 모든 국민은 평등하고, 각각 주권을 가진다는 시대에(물론 대한민국 헌법대로만 하면 우린 지상낙원 주민입니다. 큿!) 1%는 커녕 0.001%의 사람들만 행복한 길이 우리의 이상이라고 떠드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이냐. 진짜 종교에서도 그리 하라고 하지 않는 짓을 서슴없이 해치우는 광신도들을 욕할 수 있는가란 질문을 하고 싶습니다. IS애들하고 다른 게 뭡니까?


마지막으로 가재의 비명이 들리지 않는다고, 가재가 끓는 물에 수영하는 것을 좋아하는 건 아닙니다.


말꼬리 --------------------------

1.

가끔 최저임금을 최대임금으로 착각하는 인간들이 많은 시대에 과거가 나빴다고 디스하는 걸 보면 황당합니다. 경우에 따라 동일 인물에서 두 경우를 다 발견하면 아 ㅆㅂ.. . 콜로니 레이져(아! 짐순이는 연방군이니 솔라 레이지) 어디있어.

2.

적어도 저 시대에는 '열정 임금'이라는 정말 개뭣같은 수사는 사용하지 않았네요. 이런 馬多朴家 色姬들!!!!

3.

강진철 선생님 이야기는 짐순이가 오독하고 있을 가능성도 큽니다. 어려워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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