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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GM-79의 삼국사기 이야기

소춘풍도 알았던 외교의 기본 본문

역사이야기/역사잡설

소춘풍도 알았던 외교의 기본

짐순 폰 데그레챠프 2016. 2. 10. 19:23

조선 성종 때에 왕이 친히 문무백관을 모아 잔치를 엽니다. 뭐, 너무 과한 주사가 아니라면야 이렇게 맘놓고 취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죠. 고대로 올라갈 수록 이런 연회는 중요한 정치적 행위였으나 유교의 세례로 말미암아 차차 도학과 거리가 먼 음주가무는 기피되는 게 다반사였죠. 그래도 왕에게 술을 받았다는 것 자체가 가문과 개인의 영광이 됩니다.


이 날의 연회에는 함경도 영흥의 명기 소춘풍笑春風이 불려나옵니다. 이들 쟁쟁한 관리들 앞에서 흥을 돋구워라는 명이 떨어지자 문신들 쪽으로 가서 노래를 부릅니다.


당우를 어제 본 듯 한당송을 오늘 본 듯

통고금 달사리하는 명철사를 어떻다고

저 설데 역력히 모르는 무부를 어이 좇으리


당우唐虞는 요순의 태평시대를 말하고 한당송漢唐宋은 한나라, 당나라, 송나라를 말합니다. 문화가 융성하고 사람들이 살기 좋은 시대라는 거죠. 통고금通古今달사리達事理한 명철사明哲士, 고금의 일에 능통하고 사리에 밝은 선비를 말합니다. 그러니까 이렇게 좋은 태평성대에 우리가 살고 있는데 시대를 이끌어가는 문신들을 보노라니 저기 자기 설 자리도 모르는 무식한 무신들하곤 못놀아요.. 이런 이야깁니다. 한줄로 줄여서 선비 좋아!!!!!


문신들은 신나고, 무신들은 술김이 확 깨는 분위기 입니다. 정말 주상전하 면전이라 그렇지 저걸 콱! 그런데 소춘풍은 그쪽으로 가서 노래를 부르죠. 


전언은 희지이라 내 말씀 허물 마오

문무일체인 줄 나도 잠깐 아옵거니

두어라 규규무부를 아니 좇고 어이리


앞의 말은 그건 농담일 뿐이야~. 오빠들은 너무 화내지는 마시구려. 문신이나 무신이나 다같은 왕의 신하인데 사실 씩씩하고 듬직한 무신이 너무 좋아! 이러니 앞의 시조에 흥이 올랐던 문신들이 또 난리죠. 아까는 우리들이 좋다면서! 왜 너는 왔다갔다 간을 보는 거냐! 그러자 또 노래를 부릅니다.


제도 대국이요 초도 또한 대국이라

조그만 등국이 간어제초間於齊楚하였으니

두어라 이 좋으니 사제사초事齊事楚하리라


제나라도 강국, 초나라도 또한 강국이라 그 사이에 낀 작은 등나라는 제도 섬기고 초나라도 섬길 뿐이다!라고 외치니 모두들 파안대소 할 수 밖에요. 사람 상대하는 물장사 종사자의 입장에서 문신이면 또 어떻고 무신이면 또 어떻습니까. 진상 안부리고 돈만 잘 내면 다 내 손님인 것을.. . 문신과 무신을 오가며 들었다 놨다를 반복하며 흥을 돋구니 성종도 크게 기뻐하여 소춘풍에게 상을 줍니다. 


춘추전국시대는 동아시아에서 외교가 무엇인가를 제대로 보여준 시대입니다. 외교를 알려면 이 시대를 알아야 할 정도였지요. 이 시대의 역사를 기록한 춘추, 그를 해석한 좌전은 외교의 필수서였습니다. 가끔 외교 사절들이 마주앉아 시를 읊는데 모르는 이들은 문학놀이한다고 욕하지만 그들이 시를 통해 매우 고차원적인 외교를 하고 있던 것이죠. 토씨 하나만 틀려도 이기고 지는 그야말로 냉전이었습니다.(무기를 들지 않는다는 점에서요) 


초와 제나라 사이에 낀 등나라는, 중원에 위치한 정나라는 강대국의 봉이었습니다. 진이 쳐들어오면 친진국가, 초가 쳐들어오면 친초국가, 제가 쳐들어오면 친제국가가 되어야 했지요. 그것도 수십년 간격이 아니라 연단위로 바뀌는 운명이었습니다. 같은 처지의 송나라였던가 어느 소국의 재상이 강대국들이 모인 회의에 나가서 차라리 너희들끼리 담판지어 우리보고 이렇게 하라고 답을 달라고까지 하는 지경에 이릅니다. 맨난 교대로 쳐들어와 기조변경을 강요하느니 너희들이 답을 정해서 알려달라고요.(답정너의 기원? 답을 정하는 건 너야, 나는 듣기만할께?)


우리가 흐름을 정할 수 없다면 그 흐름의 변화를 누구보다도 기민하게 계산하고 흐름에 따라야 합니다. 왜냐고요? 외교는 칼자루가 아니라 날을 쥔 놈이 매달려야 하는 무기거든요. 외교에 대한 생각이 없으면 높은 자리는 꿈도 꾸지 않는 게 사람들 살리는 길입니다.


말꼬리 ---------------------

1.

인터넷 유행이후 지나가는, 지나가다로 지칭하는 관습의 어원은 행인行人입니다. 이 말이 처음 나왔던 춘추시대에는 외교사절을 지칭하였지요.

2.

언젠가 쓴 글을 다시 축약하여 올려봅니다. '춘추전국시대는 동아시아에서..'하는 대목부터가 새로 쓰는 대목이고요. 이 블로그에 올라올 일이 없기에 올려봅니다.

3.

조선시대를 욕하면 뭔가 시원하게 모이는 줄 아는 바보들이 사대했다 입에 거품 물지만 사대모화의 구분도 못하면서(그래 암기는 니덜이 짐순이보다 낫긴 하지) 제발 아는척좀 하지 말았으면 합니다. 조선시대에 정묘~병자 사이를 빼면 그래도 매우 기민하게 합니다. 하다못해 선조 때조차도!

4.
소춘풍의 이야기를 읽을 때마다 미국의 고전영화의 클럽에서 가수가 노래하는 장면이 생각나고, 머리 속서 그리는 소춘풍의 이미지는 누가 로저 래빗을 모함하였는가의 제시카네요.

5.

판사님, 짐순이는 단지 역사이야기를 했을 뿐입니다.. 아닙니다. 자쿠가 썼습니다. 판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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