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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6. 16. 11:44


이태진 선생 글을 읽다가 깨달은 것인데 해방 이후 연구사에서 신라 하대는 매우 어려운 시대였고 중대는 상대적으로 평온한 시기였다고 보던 관점은 근본적으로 재검토 해야 한다. 


물론 신라하대 중에서 진성왕이 세금 독촉 한 이후 정말 난장판이 된 것도 맞고, 왕을 비롯해 왕족들 계보 그려놓고 누가 누굴 죽였나를 살펴보면 아침드라마 이상이다. 그런데 정작 전체 신라인에게 치명적이었던 자연재해는 그 융성하였다는 중대에 집중해서 일어난다. 사실 대다수의 사람들에겐 왕경의 높으신 어른 누가 죽었다, 임금님이 비명회사를 했더라는 먼나라의 이야기다. 21세기 한국인이 대통령을 실감하는 것과는 근본적으로 차이가 난다. 어차피 괴로운 건 정쟁이 있으나 없으나다. 그것이 고대 율령제의 무서움이다.


헌강왕이 산에 올라 경주의 번영에 감탄하고 신의 목소리를 듣지 못하고 이제 태평성대..라고 한 것을 조낸 ㅂㅅ으로 보는 경향이 강한데, 그야말로 사료로 접근해보면 그 장소에서 엉엉 울지 않으면 사람色姬가 아닌 상황이다. 여동생과 사생아 아들놈 치세에 국밥을 말긴 하지만 적어도 경문왕과 헌강왕의 치세는 당시 사람들에게 단비와도 같은 것은 맞다. 그럼에도 '사람의 살림살이'는 나아지지 않는다는 것이 고대 율령제의 현실이다.


현대인이니까 현대적 관점으로 판단하는 것은 맞다. 또 자기의 관점으로 포폄, 그러니까 공인된 고인드립치는 것은 오히려 의무에 가깝다. 그런데 이따금 정말 그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하거나 그닥 원하지 않았을 것까지 해야 기준에 맞는다거나 그렇게 했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경우도 있다. 그건 본말 전도, 주종 전도다. 그 시대를 해석하기 위해 이론적 틀을 적용해야지 그 틀을 위해 사실을 재단하는 건 문제가 있지 않나.


말꼬리----------------

사진은 대구 동화사 탑에서 발견되었다고 전해지는 사리항아리. 민애왕을 추도하기 위해 경문왕이 만들었는데, 이 것을 당시 정쟁과 연결하면 짠하다. 경문왕의 할머니는 민애왕의 누이이다. 그런데 경문왕의 할아버지를 죽인 것은 그 민애왕이다. 그냥 현대적 감각으로, 민주주의 시대의 시각에 집착하여 본다면 도저히 이해 안가는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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