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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GM-79의 삼국사기 이야기

전쟁에서 약탈과 학살이 일어나는 이유 본문

역사이야기/역사와 과학기술

전쟁에서 약탈과 학살이 일어나는 이유

짐순 폰 데그레챠프 2022. 9. 19. 12:56

전쟁 중 약탈과 학살이 일어나는 일은 선사시대부터 일어난 일입니다. 수렵과 채집, 어로를 통한 자연의 식량거리를 수확하는 단계를 지나 직접 먹을 것을 키우는 시대가 되었을 때, 다수에 의한 폭력의 대결이 시작됩니다. 언덕 위에 마을이 새워지고, 그 주위를 도랑과 울타리가 둘러싸는 모습이 보이고, 깊은 생채기를 가진 유골이 발견됩니다. 동유럽에서는 마을 사람 30여 명을 한데 모아 학살한 사례가 발견되었습니다.

약탈의 이유는 사실 간단합니다. 물욕이죠. 농경이 시작되었다고 해서 현재와 같은 생산량이 나오는 건 아닙니다. 완전히 원시림인 곳을 다 밀어버려야 하는데, 농지를 새로 만드는 것은 그냥 농사를 짓는 것보다 더 많은 노력이 들어갑니다. 그런데 노력에 비해 생산량이 넘치지는 않죠. 이럴 땐 부족한 식량을 어디에선가 채워놓아야 자기 가족이 굶지 않습니다. 때로는 나한테는 없는 식량 이외의 재화가 필요하기도 합니다. 

또, 개중에는 보급이라는 부분을 도외시하고 전쟁을 벌이는 부분도 있습니다. 병사들도 먹어야 싸울 수 있으니까요. 적의 땅에서 얻는 곡물은 내 나라에서 가져오는 것의 몇 배의 가치를 가진다는 손자의 말도 있지만 이런 고급(?) 전략을 구사하는 이는 극히 소수입니다. 유럽의 경우 보급물자를 구입하는 관료도 군대를 따라다니지만 대부분의 경우 메뚜기가 쓸고 지나간 상태가 되기도 하죠. 오죽하면 30년 전쟁인가 한 번 군대가 쓸고 간 지역은 한동안 안전하단(?) 말이 돌았을까요.

학살이라는 부분에 들어가면 좀 더 복잡합니다. 딱히 이거다라고 하는 것이 잡히지 않습니다. 특정 전쟁에서는 이 이유가 결정적이라면 다른 전쟁에선 그건 고려의 대상이 아닙니다. 매우 다양한 원인이 그때 그때마다 다르게 작용한달까. 솔직히 머리 아픈 일입니다. 감정을 지우고 기계적으로 접근해 분석하자면,

영장류의 잔인성
일단 영장류 중 상당수의 종에게서 나타는 근본 속성-잔인성-을 들 수 있을 것입니다. 보노보나 오랑우탄 같은 상대적으로 온순한 종을 제외하고 특히 인간과 매우 가까운 침팬지로 갈 수록 무리와 무리의 충돌시 매우 잔인합니다. 적대 집단의 전투원을 우회하여 비교적 약한 암컷과 어린 새끼들을 죽이거나 성장한 개체는 무력화 후 성기를 의도적으로 제거합니다. 그런 공격을 받으면 상당수가 죽고 운좋게 살아나도 생식능력을 잃지요. 곰을 비롯한 맹수들도 상대하려는 암컷에게 새끼가 있으면 자기 자식을 낳게 하려고 죽여버리기도 하지만 영장류의 그런 행동은 상대 집단을 근본적으로 뿌리 뽑으려 하는 행동 수준입니다. 그런 공격은 수컷과 암컷을 가리지 않으니까요.

겁이 많을 수록 잔인해진다
그 다음에 생각해볼 요소로 두려움을 들 수 있습니다. 정신적으로나 물질적으로 안정적으로 복속시킬 수 없을 때 일어나는 행동이죠. 지금 당장은 누를 수 있지만 완전히 내 것으로 흡수하거나 항구적인 지배를 할 능력이 없을 때, 혹시라도 발생할 역전극을 막기 위해 미리 그 싹을 뽑아버리는 것 외엔 내가 발을 뻗고 잘 수 있는 방법이 없죠. 사실 겁이 많을 수록 잔인해집니다. 

가까운 증오심
세번째로 생각해볼 수 있는 것은 두려움과 양면의 거울 같은 증오심이죠. 인간 세상에서 일어나는 살인 사건 중 가장 잔인한 것은 가족과 그만큼 가까운 사이에서 일어난다고 하더군요.(한국전쟁 중 농촌에서 일어난 학살극의 경우 동족촌이 많았다고 합니다) 이는 개체간의 다툼이 아니라 집단과의 싸움에서도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입니다. 매우 친숙한 협력과 우호관계를 가지지 않은 상태에서 오랜 시간을 가까운 거리에서 살 경우 갈등은 누적되어 있을 것이고 단순한 투닥거림을 넘어 본격적으로 폭발을 할 때, 또 큰 다툼도 여러 번 일어났다면 감정의 깊이는 헤아릴 수 없습니다. 아프가니스탄의 여러 종족들을 보면 갈등의 역사는 100 단위를 가볍게 넘어갑니다. 그들을 그나마 단결하는 모양새라도 만든 것이 강력한 외부 세력의 침략이라죠.(영국, 러시아, 소련, 미국, 극단적 이슬람세력) 유고내전같은 종족, 종교간의 갈등도 이 가까운 증오심이라는 범주 안에 넣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인민의 아편이 독약으로 변할 때
방금 유고내전을 이야기했지만 종교라는 원인도 간과할 수 없습니다. 다신교라면 종교로 인한 다툼의 여지가 적지만(설령 싸운 후에 너희 신과 우리 신은 '원래' 동기동창이라는 식으로 공존의 여지가 가능합니다) 일신교의 경우 '나 이외의 신은 가짜/악마'라는 교리가 생김에 따라 다른 신을 믿는 대상은 악마숭배자 또는 우리 신을 거부하는 절멸대상이 되어버리기도 합니다. 거기에 중세 프랑스에서 일어난 이단학살, 독일의 30년 전쟁은 심지어는 같은 신을 믿는 내부의 전쟁입니다.(물론 30년 전쟁은 오로지 종교전쟁만은 아닙니다) 특히 프랑스에서 일어난 이단학살의 경우 전투원뿐만 아니라 비전투원까지 멸절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일반적인 전쟁 범죄와 달리 이 종교로 인한 학살과 약탈, 파괴는 같은 편에서라면 어느 누구에게도 비난받지 않고 그 정당성을 인정받기에 그 잔혹하기가 다른 유형보다 더욱 심하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지옥에서 살아남았다는 실감이 필요하다
이제 전쟁에 나선 병사 개개인의 문제로 접근해봅시다. 일단 개도 사람 피맛을 보면 변하는 것 이상으로 사람도 피를 보게 되면 흥분하게 됩니다. 본인이 사람을 죽이는 일을 하면서 알게 모르게 정신적으로 충격을 받습니다. 이것이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합니다.

아예 폭력과 살인이 일상화된 곳이라면 무덤덤해질 수 있겠으나, 일단 문명 발생 이후로는 서서히 피와는 거리를 두게 됩니다. 서양도 중세까지는 돼지고기를 먹더라도 통돼지를 식탁에서 잘라 먹었지만 중세를 지나며 해체를 하여 식탁에 올린다고 하지요. 돼지고기라는 것을 알지만 이것이 어떤 돼지였는지 알지 못하고 전혀 상상할 수 없는 상태로 고기를 먹게 됩니다. 몇 년 전 일본에서 초등학생들에게 돼지 도살을 보여 준 후 그 고기를 먹게 하여 논란이 되었습니다. 동서양 통틀어 상당기간 동안 공개처형이 큰 축제처럼 실시되다가 점차 비공개로 바뀌고 사형을 폐지하는 나라도 늘어난 현대로 내려올 수록 손에 피를 묻히는 일은 매우 적습니다.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가 20세기 이후 주목받은 건 이러한 사회적 변화의 발전에 따른 것으로 보아도 되지 않을까요? 예전에도 있었겠지만 점점 사람의 죽음과 먼 사회의 특성상 폭발적으로 늘어난 것 아닐까 싶습니다.(물론 이 부분의 전문가가 보기엔 가소로운 의견일 것입니다) 

그 다음으로 생각해볼 것이 집단의식입니다. 아까까지도 농담을 주고 받은 친우가 죽는 것을 경험하게 되면 흥분하게 되지요. 개인적으로 극혐하던 친구가 제 소속이 된 날입니다. 앞의 대열이 여러차례 뚫린 다음(그날 창천항로에서 여포가 전장을 질주하며 적을 말그대로 '날려버리'는 것을 봤습니다. 대부분의 독자들은 만화적 상상력이라고 하겠지만) 제 대열까지 밀려온 다음에 저도 깔려 겨우 숨을 쉬는 와중에 그 친구가 끌려가 당하는 것을 보니 순간적으로 눈이 돌아가더군요. 인간적으로 절대 가까이 하고 싶지 않았지만 그 날은 "내새끼"였던 겁니다. 

고대로부터 군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대열이었습니다. 화약병기가 나올 때까지 대열이 견고한 것이 승리, 또는 비참한 패배를 막는 가장 중요한 것이었습니다. 한 명, 한 명은 겁많은 존재지만 나와 같이 존재하는 전우가 있으니까 그것을 억누르는 것입니다. 대열에서 한 명만 등을 보이는 순간 전체가 무너질 수도 있습니다. 이제는 대열을 짓는 것이 무의미한 현대 군대에서도 훈련소에 들어가서 제일 먼저 하는 일이 발을 맞추고 어께가 직선처럼 이어지게 교육하는 것입니다. 너는 하나의 독립한 개체가 아니라 거대한 군대의 일원이고 모든 전우가 힘을 합쳐야 이기고 가족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것을 뇌와 신경 깊숙히 주입시키는 것이 그 무의미해 보이는 훈련의 근본 목적입니다. 고대 그리스의 동성애 전사단까지는 아니더라도 옆의 전우가 죽거나 다치는 것이 공포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분노로 이어지게 하는 것이죠. 

월남전을 다룬 전쟁영화의 공식같이 반복되는 것은 절정부에 피터지는 전투를 겪은 후 살아남은 주인공이 텅빈 눈으로 복귀하는 장면입니다. 정글 위를 날아가는 헬기 뒤로 저물어가는 태양이 보이면 더욱 좋지요. 이를 그저 영화적인 표현으로 보았으나 앞에서 든 저 날에 모든 것이 끝나고 겨우 살아남아 복귀하는데, 이제야 그 장면이 이해가 된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피맛과 연대의식이 교차하는 혈투를 치루고 나서 다음에 찾아오는 감각은 내가 살아있느냐, 죽은 후의 꿈이냐일 것입니다. 그것이 과도한 폭력과 파괴로 이어지기도합니다. 거친 행동을 통해 방금까지 펼쳐진 지옥도에서 살아남았다는 것을 실감하는 것입니다. 다만 확인의 대상이 되는 쪽의 의사는 묻지 않은 상태로 진행되니 그 비극의 도가 커집니다.

이런 요인들에 의해 전쟁범죄라는 것들이 벌어집니다. 지금까지 언급한 것은 가장 굵직굵직한 것이고 각각의 사례에 따르는 정치ㆍ사회ㆍ문화적 배경, 그리고 역사, 환경이라는 거대한 원인과 당사자 개개인의 특성이 매우 복잡한 확률로 다르게 나타납니다. 45개 숫자가 8백만 가지 조합으로 나타나는 로또복권과 같은 셈입니다. 8백만은 과장이지만 개개의 사건이 저마다의 다양한 이유가 조합되니 고작 몇 가지를 들어 '이거다!'라고 외칠 수는 없습니다.

맨정신을 가진 자가 전쟁을 생각할 때

여담이지만 현재 일어나고 있는 괴이한 일
여기까지는 왜 그런 일이 일어나느냐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전세계적으로 가장 문제가 되고 있는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전쟁(또는 한정적인 특수작전)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을 살펴봅시다. 전쟁은 결코 맨정신으로 치룰 수는 없는 일이므로 여느 전쟁처럼 약탈과 학살이 벌어집니다. 옳고 그름을 떠나서 그런 일이 일어나는 것은 냉정하게 말해 자연스럽습니다.(다만 이는 정쟁범죄를 옹호하기 위함이 아닙니다) 

그런데 한가지 이해가 안되는 면이 있지요. 러시아가 점령한 우크라이나의 동부는 러시아에 적대적인 곳이 아니라 오히려 가까운 곳입니다. 우크라이나어보다 러시아어가 더 많이 쓰이고, 이곳 출신의 젤렌스키 대통령조차 원래 우르라이나어보다 러시아어를 더 능숙하게 사용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최근 우크라이나가 이곳의 도시들을 수복하면서 학살과 고문의 흔적이 여과없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역사적으로도 우크라이나는 슬라브 정치체의 고조선과 같은 곳이고, 20세기 소련의 역사를 봐도 스탈린 이후 공산당 서기장의 반이 우크라이나 출신이고, 각 분야의 인재들 중에서도 우크라이나가 차지하고 있는 비중은 구 소련의 곡물생산의 비중만큼이나 큽니다. 인적교류도 매우 흔해서 이번에 침공군의 병사가 현지에서 친척들을 만나러 온 부모와 조우하는 일도 벌어졌습니다. 침공 초기에는 침공군과 우크라이나 사람들이 농담을 주고 받는 일도 흔했다고 합니다. 그러네 무엇이 이렇게 바꿔버렸을까요?

일단 일시적인 치고 빠지기, 혹은 보여주기식 위력투사같은 경우가 아니라면 현지에서 과한 일을 막는 것이 지휘부의 일입니다. 적어도 자기들과 말이 통하고, 가까운 곳이라면 굳이 사건을 만들지 않아도 점령군으로서는 반은 먹고 들어가는 것입니다. 앞으로도 계속 가깝게 지내야 하는데 거기 사람들과 원한관계를 가진다는 것은 정상적인 사람으로선 이해할 수 없는 일입니다.

일단 떠오르는 것은 러시아군 내부에 이런 문제를 통제할 수 있는 장치가 없다는 가정입니다. 때론 병사들을 가혹하게 다루는 것이 '늬덜이 힘든 것은 다 쟤들 때문이야'라고 주입시켜 악에 받친 상태로 만드는 수단이기도 합니다. 거기에 앞서 말한 병사개개인에게 닥친 지옥 문앞의 경험까지 더해지면 이성이 마비됩니다. 유능한 지휘관이란 때론 극도로 흥분시키기도 하고, 때론 터질 것 같은 열기를 김빼주는 일도 잘해야 합니다. 현시점의 러시아군은 그 장치가 없거나 작동정지된 것 같은 인상을 줍니다. 원래 부사관이 없는 편제라 현장지휘관에게 미치는 압박의 강도는 서방군대보다 더 가혹할 것이고, 지휘부 차원에서의 배려라는 것도 없어보입니다.

군사강국이라는 러시아군의 실상은 매우 열악한 상태인데다 식량보급조차 제대로 이루어지 않고, 쉬울 것 같았던 전쟁이 더 어려워진 상태에서 명분없이 끌려온 병사들의 제어가 쉽겠냐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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