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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GM-79의 삼국사기 이야기
아주 어릴 적부터 이 이야기를 익숙하게 여겼던 이야기가 있습니다. 삼국사기만 졸라 빨고 삼국유사는 쳐다도 안보던 19살의 여아는 지금까지도 그 이야기가 삼국유사에 있었겠거니하고 믿고 있었습니다. 기차안에서 노래를 하나 듣다가 문득 생각이 나서 마침 가지고 있던 박성봉 선생님 번역본의 한글 화일에서 F2로 열심히 검색해 봅니다. 원성왕 즉위 전 꿈 이야기의 무대로만 나옵니다. 이상하다 기이편의 김유신 이야기를 뒤집니다. 고구려 점쟁이의 원한 이야기만 나옵니다. 집에 돌아와 북한의 리상호 번역본을 뒤집니다. 가장 좋아하는 이민수 본과 주변에서 가장 좋아하는 이재호본은 안보입니다.. (여기까지 적던 중 이재호본의 초판 영인본이 보입니다. 아놔..) 이상하다 싶어 국사사전의 고전인 이홍직 선생님 책을 뒤집니다...
원문十二年 秋八月 新羅將軍金庾信 來侵東邊 破娘臂城 해석십이년(629) 가을 8월 신라장군 김유신이 동쩍 변경을 침범하여 낭비성을 파하였다. 어제의 기록이 신라의 입장에서 씌여진 기록이라면 반대편 당사자인 고구려의 기록은 어떻게 되어 있을까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런 시도는 그닥 도움이 안됩니다. 아마 고구려나 백제의 기록은 망국 300년을 넘어가며 건국기록같은 걸 제외하면 많이 사라졌을 것이고 또 고려 건국 200년의 시간이 더해집니다. 신라의 입장에선 애써 태워버릴 건 아니지만 그다지 남겨둘 필요를 덜 느낄 것이고, 더욱이 지금처럼 몇백 부, 몇천 부를 찍어내는 것도 아니라 그 기록이 유실되면 복구할 것도 없죠. (물론 누군가는 분서했다고 믿고 싶으시겠지만요. 그래요 당신들 유사역사 신봉자들) 더욱이 ..
원문五十一年 秋八月 王遣大將軍龍春·舒玄 副將軍庾信 侵高句麗娘臂城 麗人出城列陣 軍勢甚盛 我軍望之 懼殊無鬪心 庾信曰 “吾聞 振領而裘正 提綱而網張 吾其爲綱領乎” 乃跨馬拔劒 向敵陣直前 三入三出 每入或斬將或搴旗 諸軍乘勝鼓譟 斬殺五千餘級 其城乃降 해석51년(629)년 가을 8월에 왕은 대장군 용춘과 서현, 부장군 유신을 보내어 고구려의 낭비성을 치게 하였다. (고구)려인들은 성을 나와 진을 쳤는데 군세가 사뭇 성대하여 우리 군사들은 그것을 보고 두려움에 싸울 맘을 잃었다. 유신이 말하기를 "소매를 펼치면 갗옷이 단정해지고 벼리를 끌면 그물이 펼쳐진다 들었다. 나는 소매와 벼리가 되고자 한다"라 하였다. 이어 말에 올라 칼을 뽑고 적진으로 곧바로 나아갔다. 세 번 들어가고 세 번 나오메 매번 돌진할 때마다 적의 장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