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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GM-79의 삼국사기 이야기
원문二十二年 …… 秋九月 王薨 葬於柴原 號曰東川王 國人懷其恩德 莫不哀傷 近臣欲自殺以殉者衆 嗣王以爲非禮禁之 至葬日 至墓自死者甚多 國人伐柴以覆其屍 遂名其地曰柴原 해석22년 …… 가을 7월 왕이 돌아가셨다. 시원에 묻고 동천왕이라 이름하였다. 나라 사람들이 그 은덕을 생각함에 있어 슬퍼하지 않는 자가 없었다. 신하들 중에 스스로 목숨을 끊어 순장되려고 하는 자가 많았다. 새로 즉위한 왕(중천왕)이 예가 아니라고 금하려 하였다. 장례일에 이르러 능에 이르러 죽는 자가 많았다. 나라 사람들이 섶을 베어 그 시신들을 덮어주었다. 그래서 그 곳의 이름이 시원이 되었다. 서기 248년에 동천왕이 죽었습니다. 그의 죽음을 슬퍼한 신하들이 따라 죽으려고 하였고, 그 뒤를 이어 즉위한 중천왕은 뜯어말려야 했습니다만, 왕을 ..
원문三年 春二月 下令禁殉葬 前國王薨 則殉以男女各五人 至是禁焉 번역3년 봄 2월 령을 내려 순장을 금하게 하였다. 전에는 왕이 돌아가시면 즉 남녀 각 5명으로 같이 묻었는데 이때에 이르러 금하였다. 지증왕은 신라사에 있어서 그 어떤 왕 이상으로 중요성을 가지는 왕입니다.지증왕 이전의 신라는 소백산맥 안에서만 강한 척하는 약소국에 불과하였습니다.아들인 법흥왕의 여러 정치적 변화나손자인 진흥왕의 활발한 정복활동만큼 화려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이 지증왕이 없었으면..하는 말은 그저 혈연상의 수사가 아닙니다.시대의 변화상을 몸소 깨닿고 그쪽으로 과감히 방향을 전환을 한이 아버지, 할아버지가 없었다면 아들과 손자의 위업도 존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개인적으로 광개토, 장수왕보다 소수림왕을 더 중요시하는데이 지증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