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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GM-79의 삼국사기 이야기
오늘 아침에 고구려사 관련 두 건의 신문기사가 올라왔습니다. 광개토왕릉비의 신묘년조를 재해석한 기사, 그리고 우즈베키스탄에 있는 아프라시압 궁전 벽화에 대한 기사입니다. 두 건 다 학술대회에 발표되었거나 예정인 내용을 소개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광개토왕릉비 문제에 대해서는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젖먹이일적부터 다짐한 것이 광개토왕릉비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관심을 끊자였습니다. 정직하게 말하자면 수정과의 잣 정도도 알지 못하기 때문에 함부러 압에 담지 않겠다는 다짐입니다. 뭐 공부하면 되지 않겠나 하실 분도 계시겠지만 어린 마음에도 광개토왕릉비는 베트남의 정글과도 같습니다. 발을 들이밀면 다시는 못나갈 것 같은 예감. 다만 빨리 교통정리가 되어 맘편하게 과실만 쪽쪽 빨고 싶을 뿐입니다.(교통정리가 될리가 있..
김부식 빠심가득한 연방의 폭죽이지만그래도 그의 서술에서 납득할 수 없는 것도 있습니다.그 중 하나가 봉상왕 때의 국상(재상이랄까요?) 창조리에 대한 기삽니다. 그의 열전은 삼국사기 권 49, 연개소문과 같이 실려있습니다.전통적인 분류로 보자면 반신전叛臣傳, 그러니까 반역을 한 신하의 범주에 놓여 있습니다.연개소문이야 왕을 죽이고 시체를 구덩이에 버렸으며, 동료 귀족 180여 명도 죽이고 권력을 잡았지요.전통적인 가치관에서는 반신이라고 봐도 무방합니다. 그러나 창조리를 어땠을까요?봉상왕은 흉년으로 백성들이 고역을 치루고 있는데궁궐수리를 위해 사람들을 모아 노역을 시키고그것에 대해 간하는 국상에게 ‘너 죽을래’라는 협박을 날립니다.나라를 다 갉아먹을 것 같은 포악한 왕을 갈아치우지요.기록 그대로라면 피도 안..
1. 7세기 후반 고구려사의 아이콘 연개소문 연개소문은 7세기 후반 고구려사를 연구하는 데 절대 빠질 수 없는 일이다. 관심을 쏟고 있는 6세기에 비해 사료도 많고(문헌기록과 묘지명..) 사건도 별별 것이 다 일어나고 있으나 그를 이야기 하지 않고 7세기 후반-멸망기를 이야기 할 수는 없다. 무엇보다도 근 100년 가량 활활 타올랐던 전시상태의 결말을 함께 한다는 점에서 아예 연개소문을 이야기 하지 않을 수 있기나 하나 만약 그런 연구자가 있다면 용자거나 바보거나.. . 그에 대한 평가는 어떨까? 일부에서는 그를 매우 남자답고 애국심으로 똘똘 뭉친 영웅으로 부르기도 하지만 학계에서는 좀 신중하게 접근하는 쪽이다. 그의 집권이 고구려 귀족사회의 원심분리적 이탈을 가속시켰다고 보기도 하고 신라를 친당외교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