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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GM-79의 삼국사기 이야기
이기백 외, 『한국고대사론』한길역사강좌 12, 한길사, 1988. 이미 절판된지 오래고 중고로도 찾아보기 힘든 이 책이 여전히 소중한 이유를 들자면70년대부터 여러 곳에서 공격받던 한국고대사 연구자들이 그래도 대중과 함께 하겠다는 증거임이 첫째고70년대 접어들면서 양과 질적으로 팽창한 학계가 드디어 식민사학을 장례지내는 선언적 의미가 둘째입니다.어떤 분들은 아직도 한국고대사학계는 식민사학에 지배받는다고 욕을 하긴 합니다만분명 5,60년대는 여전히 그림자 속에서 허우적 거리던 땝니다.일본은 자국연구뿐만 아니라 동아시아사연구라는 틀이 잡혀 70년대에 들어서기 전까지한국인의 연구성과보다 더 많은 결과물을 내놓았습니다.먹고 살기 어려운 시절에 누가 감히 돈도 안나오는 풍월 놀이를 할 수 있겠습니까.그 당시 공부..
언젠가 왕의 성격에 대해 어느 분과 대화를 나눌 때였다. 무엇 때문이었을까, 순간 그 분과의 대화가 어긋나기 시작했다. 뭐랄까 왕과 군신과의 관계에서 두 사람의 개념은 크게 달랐다. 아무리 엿같은 선조의 뻘 짓에도 이순신은 반란이냐 절대적 충성이냐의 갈림에서 충을 선택하지 않을 수 없었지만 고대의, 좀 더 올라가는 시대의 신하들은 자기의 세력을 통째로 들어 타국으로 갈 수도 있다. 그러니까 군신의 관계라도 조선시대는 수직적인 상하관계가 성립되었고 (물론 군권을 제어하는 신권의 장치가 있었으니 전제정권은 아니었다는 건 안다) 고대사는 좀 더 수평적인 관계였다. 귀족과 왕족의 관계는 약간 애매하게 겹쳐있었고, 왕과의 상하관계도 뚜렷하지 않았다. 신라를 예로 든다면 진평왕이 성골을 주장해 일반 왕족과 차이를 ..
몇 주 전인가 일요일 아침에 디스커버리 다큐를 한 편 보았는데 투탕가멘과 그의 아버지 아케나톤에 대한 것이었다. 아시다시피 아케나톤은 범신론이 가득했던 고대사회에 최초로 일신교의 개념을 창시한 사람이다. 그가 아마르나에서 죽자 그동안 눌려왔던 세력들이 어린 파라오를 협박하여 아버지의 개혁을 없었던 것으로 하고 나중에는 투탕가멘도 죽인다. 그것을 보다 생각난 것이 바로 현재의 이집트. 그야말로 일신교인 이슬람교를 믿는 이가 대다수가 아니던가. 이슬람의 뿌리인 유대교도 그 시작은 아케나톤에게 배운 것이니 아마르나가 버려지고 아들은 피살당해도 결국 먼 시야로 보았을 때 아케나톤은 승리한 것이란 생각이 든다. 좀 전까지는 아케나톤과 투탕가멘, 그리고 이집트만을 생각해 왔는데 방금, 혜공왕이 떠올랐다. 그는 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