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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GM-79의 삼국사기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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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 한국고대사연구의 결정체..

짐순 폰 데그레챠프 2012. 11. 3. 00:30

이렇게 오래된 책 사진이 웹에 있을리가요..


이기백 외, 『한국고대사론』한길역사강좌 12, 한길사, 1988.


이미 절판된지 오래고 중고로도 찾아보기 힘든 이 책이 여전히 소중한 이유를 들자면

70년대부터 여러 곳에서 공격받던 한국고대사 연구자들이 

그래도 대중과 함께 하겠다는 증거임이 첫째고

70년대 접어들면서 양과 질적으로 팽창한 학계가 

드디어 식민사학을 장례지내는 선언적 의미가 둘째입니다.

어떤 분들은 아직도 한국고대사학계는 식민사학에 지배받는다고 욕을 하긴 합니다만

분명 5,60년대는 여전히 그림자 속에서 허우적 거리던 땝니다.

일본은 자국연구뿐만 아니라 동아시아사연구라는 틀이 잡혀 70년대에 들어서기 전까지

한국인의 연구성과보다 더 많은 결과물을 내놓았습니다.

먹고 살기 어려운 시절에 누가 감히 돈도 안나오는 풍월 놀이를 할 수 있겠습니까.

그 당시 공부 시작하신 분들치고 입시 때 '자네 집은 여유로운가'란 질문 안받으신 분들은 없을 겁니다.

당시 어떻게든 노력해서 만든 진단학회의 한국사도 미국 돈 아니었으면 구경도 못했을 시절입니다.

그래도 이 나라의 역사가 정말 독립해야한다는 일념하에 열심히 노력한 끝에

80년대 들어서면서 우리는 식민사학을 영원히 장사지냈다는 선언을 할 수 있게 됩니다.

70년대 들어서며 경주와 공주, 부여의 발굴성과가 나오고

중원고구려비, 적성비 같은 금석문의 발견은 연구자들의 증식을 가져왔고

그것이 한곡고대사연구의 르네상스를 가져옵니다.

그 결과 정말 요즘은 일본말 모르면 한국사연구하기 어렵다는 말을 이해하지 못하지요.

일본말은 야메떼~밖에 모르는 모 19세가 온 몸으로 그것을 증명합니다.


이 책은 80년대 후반에 한길사가 주최한 한길역사강좌의 12번째 강좌의 결과물입니다.

이 중 한 분은 돌아가셨고, 두어 분은 최고 원로가 되셨고,

뽀송뽀송하던 어떤 분도 할아버지가 되셨습니다.

그때는 신진 연구자라 불리던 분도 이젠 최소 제대 날자가 보이는 병장계급장을 달았습니다.

그리고 각기 다양한 주제, 다른 방법론으로 각 현안에 대해 다루고 있습니다.

글은 일반 대중들을 위한 강의원고이니만큼 평이합니다.

사실, 이기동 선생님의 서두강연이나 이기백 선생님의 신분제를 제외한다면

이 분야를 이끈 박사논문에 해당됩니다.

평이하다고 했지만 그만큼의 깊이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책의 장점에서 두번째로 든 것을 이 강좌에서 의도하였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지금 이 시점에서 이 책을 돌아본다면

분명히 '아듀 식민사학'을 외치며 땅에 매장시켜버리는 중요한 과정이었다고 보입니다.

물론 연구사적으로도 그런 의미의 논문들입니다.

연구가 소수에 의해서만 향유되는 게 아니라 대중과 공유할 수 있을만큼

풍부해지고 성숙해졌다는 학계의 자신감이 배어있습니다.

아직도 식민사학의 잔재라고 욕을 먹고,

93년, 경향신문에서는 

정의의 용사가 식민사학자를 연구실에서 불태우는 내용의 소설이 연재되기도 했었지요.

이 책이 나오던 시점에는 이른바 교과서 파동으로 고초를 겪던 때입니다.

모든 면에서 성과를 거두었냐면 확언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언젠가 이 책이 재평가를 받을 날이 오지 않겠냐고 믿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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