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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GM-79의 삼국사기 이야기

장성 쌓아 대체 뭘 얻었는가?? 본문

역사이야기/역사잡설

장성 쌓아 대체 뭘 얻었는가??

짐순 폰 데그레챠프 2012. 6. 15. 20:13

이게 유적이니까 돈내고 보러가지 군생활이라 생각하면 토할 분들 많을듯


10년에 북경과 서안을 다녀오면서 만리장성을 가볼 기회가 있었는데

아주 어릴적 가졌던 부푼 희망은 사라진지 오래였습니다.

공부에 방해 되었던가 뭔가 사고를 쳐서 텔레비전 시청이 전면 금지되었던 중2시절에

유일하게 허락된 것이 교육방송에서 하는 한달짜리 만리장성 다큐였습니다.

(이것마저 금지했다면 정말 큰 사고칠 기세였을까요? 기억이 안납니다)

그때만해도 나중에 중국에 갈 수만 있다면

산해관에서 서역의 끝까지 만리장성을 걸어서 주파하겠다는 야망을 가졌는데

고딩들이 서울우유 먹다가 연세우유, 건국우유, 나중엔 삼육우유로 간다는 농담처럼

야망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고 역사를 이해하는 관점이 너무 달라져 있었습니다.

그래서 정작 만리장성을 간다는데 흥도 안났습니다.

그 시절이라면 감격하다 못해 심장마비에 걸렸을텐데요.

마침 두 군데 관광지중 하나가 파업중이라서 한 곳으로 인파가 몰렸고

(그 인파도 역시 듕궉..이랄 만큼의 숫자)

덥고, 전방 온 기분이라 조금 가다가 올라가는 건 포기했습니다.

만리장성 다큐를 보며 ㅎㅇㅎㅇ했던 과거와 달리 조금 아래에서 만리장성을 생각할 시간을 가졌습니다.

(물론 그 와중에 서양 아가씨들도 감상하느라 몰입하진 않았습니다. -_-;;)


정성을 쌓는다는 행위는 적과의 대적함에 있어서 공세보다는 수비에 전력한다는 의미를 가집니다.

이를테면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은 

북한을 주적으로 설정한 이상 그에 대비한 모든 군사 편제나 

전쟁에 대한 교리 원칙에 있어 철저히 수비를 지향하고 있습니다.

(물론 역습을 통한 공세전환을 안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기본은 대한민국의 방어에 중점을 둡니다)


저걸 군장메고 무장하고 오르락내리락.. 생각해봐요. 발이 안보일 정도로 뛰어다녀야지.. 


공화정 후반부에서 제정 초반기까지 가열차게 팽창하던 로마가

하드리아누스의 장벽을 건설하는 것으로 앞으로의 수성의 의미를 확고히 한 것,

중국에서 북방 유목민족사회와의 물리적 단절을 통해 

농업경제의 중원을 지키려고 한 것을 생각하면 충분한 예가 될 것입니다.

적극적인 팽창을 하는 국가라면 국내에서의 싸움에 대해 크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장성을 쌓는 비용보다 군비확장을 통해 거둘 수익이 훨씬 더 크기 때문입니다.

지금처럼 재정학이라던가 예산이라던가 하는 것들이 개념화된 것은 아니지만

그 시절에도 어렴풋이 뭐가 좋고 나쁜지는 알만큼 압니다.


진시황대의 중국이야 아직도 중국의 본토인 중원 인근에도 유목민에 가까운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나중에 한ㆍ위ㆍ조로 갈라지지만 한때 천하에 군림하던 진(晋)이나 통일을 하는 진(秦)이나

항상 이런 이민족과 치열한 생존경쟁을 해야했습니다.

제환공과 관중이 이 민족을 물리치자 공자가 중국의 문화를 수호했다고 칭송하기도 하죠.

그들이 아니었으면 우리는 이민족의 옷을 입고 있었을 것이라며,

그런 그들이니 조금씩 조금씩 힘을 내어 몰아낸 상황에서

장성을 쌓아 자기를 지키려 했음은 당연합니다.

한이나 제의 경우 중원의 다른 국가의 방어를 위한 것이나

북방의 진이나 조, 연의 장성은 분명 이민족을 막으려고 쌓은 것이니까요.

나중에 세워진 국가들도 장성을 쌓거나 보수하여 자기를 지키려고 합니다.

아예 적극적으로 이민족을 정복하고 그들을 자신의 방패로 삼은 당이 특이한 경우이지요.

그러나 궁국적으로 이 위대한 건축물은 실패작입니다.

여기서 관광객들에게 관람료를 받는 사람은 좋을지 몰라도

애당초 이것을 지은 사람들에겐 실패작입니다.


후방에서는 보급병이 맨날 새 속옷 입지만 전방에서는 고추장 한 통 나오면 눈 돌아가는 세상은 그때도 마찬가집니다..


우선 이것을 만드는 데 드는 천문학적인 비용입니다.

황제야 명령내리면 그만이지만 그 아래 관리들은 머리가 빠질 지경이 됩니다.

먼저 민정부서에서는 동원가능한 인력과 지역적 편제를 생각할 것이고

경제부서에서는 이것을 만드는데 드는 비용, 인부들 식비, 잘 곳 등을 수배해야죠.

그리고 군병력을 차출할 경우 전력누수를 생각해야 합니다.

또 이것이 후방에 세워지는 것이 아니니 건설 중 방어계획도 수립해야죠.

그리고 어느 지점을 지나는지와 보강해야할 시설물은 어떻게 해야할지를 궁리해야 합니다.

공사구간, 동원인력, 건설비용, 방어대책 등 머리가 아프겠지만

만드는 동안의 비용은 문제가 아닙니다.

바로 유지보수의 문젭니다.

이러한 대규모 건축의 문제가 바로 이 유지보수에서 나온다고 합니다.

특히나 소위 말하는 경제적 가치가 유지비용보다 크면 문제가 안되는데

그렇지 못하면 요즘 볼 수 있는 건축의 거품붕괴를 가져오지요.

특히나 명의 만리장성은 건설단계에서도 국가재정을 거덜내버렸고

철저히지 못한 유지보수는 방어망의 약세를 더욱 부추겼습니다.

벽돌로 쌓은 이상 무너지는 곳도 많은데 보수는커녕

병사들 식량이나 보급물자도 제대로 전달되지 못해 방어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닙니다.

게다가 아주 긴 방어선을 설정해놓고 촘촘히 사람들을 박아 방어에 임한다는 것이

그리 효율적인 방법은 아닙니다.

이렇게 말하면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어쨋거나 적을 막았으면 그것으로 된 거 아니냐, 어차피 군대는 생산대신 소비만 한다..라고요.

그러나 만리장성은 적을 제대로 막지도 못했습니다.

1550년 몽골의 알탄 칸이 만리장성을 통과해 북경을 포위한 것이 대표적일 것입니다.

알탄 칸은 명과의 교역관계를 맺으려다 실패하자 

만리장성의 빈 틈을 타고 큰 싸움을 벌이지 않고도 북경을 포위합니다.

아무리 방어벽을 쌓아도 결국은 다 막을 수 없다는 중요한 예가 될 것입니다.


생각해보면 차라리 로마 초기 제정의 기동방어가 더 나았습니다.

한에 못지않은 대 영토를 차지하면서도 이를 방어하는 병력은 30만을 겨우 넘겼습니다.

그렇다고 주변이 만만한 것이 아니라 북쪽에는 게르만족이 있었고

동쪽에는 파르티아가 있었는데도 말입니다.

그들이 택한 방법은 전방에 GP, GOP같은 소규모 전초기지를 두고

그 뒤에 군단병력이 대기하는 시스템입니다.

도로망을 잘 닦아놓고 위급한 상황 발생시 후방의 군단이 위급지로 출동하는 것이죠.

관할 군단으로도 힘들면 인근 군단이 증원으로 갈 수 있기도 합니다.

물론 초기를 지나며 군대는 비대화 되지만 그래도 처음부터 군사비 지출에 허덕이진 않았습니다.

효율적으로 국가를 방어하는 것이었지요.

어디로 쳐들어올지 모를 적에 대비해서 모든 곳에 군대를 배치하는 것은 비효율적이고

당시의 후방지원시스템이 그를 감당해내지도 못합니다.

그래서 장성은 국가방어를 위한 정교한 시스템이라기 보다는 

공포에 질린 황제와 관료들의 공포가 만들어낸 허상의 건축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요.

여호규,『고구려성』1, 국방군사연구소, 1998, 40쪽에서 인용


강을 통한 교통로만 성을 쌓아 틀어막은 고구려의 방어시스템은 합리적입니다.

어차피 적이 쳐들어오는 통로는 제한적이니 거기만 잘 막으면 됩니다.

물론 그게 잘 안되었을 때는 수도가 털리는 화를 입기도 합니다.

(342년, 고국원왕 12년에 전연의 모용황에게 당한 게 이겁니다. 

어느 길로 올지를 잘못 짚어 뒤통수를 맞지요. 아마 다음 삼국사기 기사는 이걸로 나갈 겁니다)


한참 중국이 다민족통일국가론에 입각한 역사공정들을 잇달아 내보이자

그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어차피 장성이북은 니들이 포기한 땅이 아니냐

왜 이제 와서 늬들땅이라 하느냐란 논리로 공격했습니다.

거기에 대해 중국이 어떻게 대응을 할 지 궁금했는데

장성을 이렇게 늘려버리는 것으로 대응할 줄은 전혀 예상치 못했습니다.

(역시 판타지대국 듕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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