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 메뉴

RGM-79의 삼국사기 이야기

과거를 잊는 것만이 미래를 여는 길인가.. 본문

역사이야기/역사잡설

과거를 잊는 것만이 미래를 여는 길인가..

짐순 폰 데그레챠프 2012. 9. 7. 17:32

언젠가 역사의 치욕에 대해 이야기 한적이 있다.

치욕을 긍정하자. 그것도 역사다..

그때나 지금이나 생각은 잘 변하지 않는다.


생각해보면 최근 일어나는 과거사 논쟁이 내심 불쾌할 정도로 불편한 것이

다 과거를 항상 곱씹고 디스할 거 디스하는 게 본연의 업이라서 그렇다.

과거는 그저 과거일뿐 미래를 보고 앞으로 나가자는 말은 화가 난다.

역사라는 것이 대하드라마처럼 거창하기만한 건 아니다.

누구는 은수저를 물고 태어나고 누구는 쪼들리며 살아가는 일반 대중들의 삶의 모습도

다 각자 개인의 역사적 위치에서 비롯된다.

부잣집에 태어나면 여유로운 거고 가난뱅이 집에 태어나면 배고픈 거고..

하물며 개인의 삶도 이렇게 달라지는데 한 집단의 과거가 중요하지 않다니

그게 말인지 소인지 아니면 염소인지 모르겠다. 

아, 이산화가스인가..


지금 남과 북이 갈라져 세계 제일의 화력밀집지대에 살아가는 한반도인의 인생도

과거 종전 후 일본이 4등분 되는 대신 한반도가 2등분 되는 역사의 진행방향으로 얻어진 것이다.

물론 결정은 과거의 망령이 아니라 현재의 생존자들이 하는 것이지만

그들의 선택의 기저에 깔린 프로그램 코딩 언어는 다 현재의 것이 아니다.

좋든 싫든 그 영향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역사를 딧고 새로운 미래를 열러가자는 말은 좋다.

그런 말을 정상적인 사람들이 하면 가슴이 설렌다.

그러나 그것이 무의미한 수사가 될 때는 5공의 정의사회 구현이나 

노태우 정권 때의 보통사람들의 시대만큼이나,

4공 때의 만주군의 구호에서 따온 웅비사학의 논리구조만큼이나

모래 위의 63빌딩과도 같다.

대체 그런 수사가 우리에게 무엇을 의미하는가.


보통 역사 속의 앙금은 분노를 억누를 만큼의 절실한 필요성

(이를테면 후금의 압박으로 인한 광해군대의 대일외교 정상화라던가)

그리고 가해자와 피해자와의 눈물어린 역사청산으로 해소된다.

무릎을 꿇는 문화조차 없는 독일에서 빌리 브란트가 희생자의 앞에서 무릎을 꿇는 것처럼 말이다.


우리는 과연 역사를 청산한 적이 있는가?

서로 부둥켜 안고 과거의 회한을 푼 적이 있는가?

하지도 않고 이제는 지겨우니 덮고 가자는 말에 입닥쳐라고 소리쳐본 적이 있는가?

아직도 잠들지 못하는 사람들을 안아주며 다독여줘 본 적이 있는가?

다 잊고 미래로 가자고?

그딴 대대로 저주받을 자들의 앞에 펼쳐진 미래는 똑같은 핏빛으로 가득할 뿐이지.


트로츠키가 했다는 무서운 말.

당신은 전쟁에 관심 없겠지만, 전쟁은 당신에게 관심이 대단히 많아..

여기서 전쟁을 역사라는 단어로 바꾸어도 무서운 말이 된다.


차라리 이분들 말씀에서 진실이 느껴진다.


어젠 예술의 전당 루브르박물관전도 봤고, 삼국사기 읽기 쓸 것도 두 편이나 있는데

어제 모 납량특집을 듣고난 후 뭐 하나 쓸 수가 없다.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