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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GM-79의 삼국사기 이야기
듕궉여행 후기 4 : 8월 24일 둘째 날3 본문
할 이야기는 다 한 관계로 오늘은 사진 몇 장 올리고 몇몇 이야기나 하는 것으로 넘어갑니다.
주말엔 쉬고 싶습니다.
(사실 못쉬었습니다. 일하느라)
환도성을 내려오는 길,
너무 아쉬운 게 많아선지 아님 환인호를 보고 마음의 긴장이 풀린 것인지
촛점이 잡히지 않네요.
너무너무 떨고 있었습니다.
뭐, 내려가는 길만 봐도 성곽고고학 전공을 선택하지 않은 자신이 사랑스러워졌습니다.
(나르시즘? 아놔 -_-;;;)
어쩌다 마주친 그대..도 아니고 계속 만나는 주거지.
그래도 ㄱ자형이 잘 남아있어서 또 담아보았습니다.
원래 온달 전공이래서 온돌 사진에 광분하는 것은 아닙니다.
자, 성을 내려가기 전에 만난 오녀산성의 동문,
성문이라 해서 숭례문이나 흥인문 같은 반짝반짝하는 성문만을 생각사시는 여러분께
락커 문군이 말합니다.
"2천년 전 건물이라고.. 스꾸임~!!!!"
오녀산성을 소개하는 책이라면 반드시 나오는 이 성문을 제대로 찍지 못했습니다. 오호 통재라~!!
오자서의 앞 길처럼 바쁜 일정에 역광, 손떨림 죄다 무시하고 마구마구 찍다보니
가뜩이나 좋지 않은 사진이라 손가락 하셨을 분들께
바닥을 치다못해 뚫어버린 새로운 경지를 선보입니다.
벽돌이나 각목을 들고 오시는 분들께 원로가수 박은경씨가 부릅니다.
당신 생각에 부풀은 이 가슴 살짜기 살짜기 살짜기 옵서예
달 밝은 밤에도 어두운 밤에도 살짜기 살짜기 살짜기 옵서예
(그런데 RGM-79는 이 노래를 혜은이씨 노래로 알고 있었을까요??)
달 밝은 밤에도 어두운 밤에도 살짜기 살짜기 살짜기 옵서예
(그런데 RGM-79는 이 노래를 혜은이씨 노래로 알고 있었을까요??)
이제 밤 길 조심해야 하나요?
다시 한 번 가야하나요?
평소에 사진은 잘찍논 놈에게만 맡기고 혼자 볼 사진만 찍으면 된다는 생각이었는데,
이 성벽은, 이 사진은 RGM-79에게 통곡의 벽이 되고 맙니다.
언젠가 기회가 되면 이 성벽앞에서 하염없이 서있고만 싶습니다.
둥글게 마감한 성문의 테두리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높으신 분들은 그것이 장식인 줄도 모르고
사병들이, 인부들이 얼마나 힘들던가 생각 안하십니다.
동북아 역사재단에서 펴낸 "고구려를 찾아서"에 나오는 사진은 멋진데
왜 이 사진은 이리도 막장일까요?
아직도 생각하시면 지는 겁니다.
이 동문은 성벽이 엇갈리게 설계되어 있습니다.
성문이 一자형으로 가지런한 형태만 있다고 생각하시겠지만
이러한 형태의 변형적인 성벽도 꽤나 존재합니다.
먼저 그림 상단에 있는 일반적인 성벽은 모양은 번듯해 보이나
실제로 적이 성문만을 공격할 때 성벽 위엔 당연히 수비병이 있겠지만
길게 늘어져 있고, 성문에서 멀 수록 성문 공격 중인 적을 공격할 때 시야가 가리게 됩니다.
성벽 앞으로 몸을 빼어 활이라도 쏘려 했다간 다른 적에게 당하겠지요.
아래 오녀산성의 성문은 남아도는 수비력을 최대한 활용하는 용도로 설계되었습니다.
먼저 튀어나온 성벽의 수비병은 다가오는 적을 향해 화망을 펴서 선제공격을 가하고
뒤 이은 추가 병력의 투입을 봉쇄합니다.
그리고 들어간 쪽의 성벽의 수비병은 성문을 공격하는 적의 측면을 효과적으로 공격합니다.
적은 튀어나온 쪽의 선제 공격을 이겨내야 하고
겨우 화망을 돌파한 다음 성벽을 뚫어야 하는데 직진이 아니고 우회를 해야 하므로
어느새 들어간 쪽 성벽 쪽으로 옆을 노출당하여 공략당하게 됩니다.
이러한 형태의 성문구조는 상대적으로 방어력이 취약하며
전술적인 중요도에 있어서 그 어느 곳보다 큰 성문을 지키고
적은 병력으로 적을 효율적으로 공격하기 위한 고민 끝에 나온 것입니다.
되도록이면 사각을 줄이고 입체적인 방어가 가능한 구조인데
이것이 나중에 성벽에서도 갑자기툭하고튀어나오는 치(듕궉에선 마면, 말대가리)의 개념을 창안하고
남한의 낙안읍성과 화성 팔달문, 북한의 태천 농오리 산성같은 옹성을 만들어냅니다.
일찌감치 전쟁과학에 눈을 뜬 고구려인이라고 하겠죠.
서양에선 르네상스 이후가 되어서야 이런 구조의 방어시설을 사용하게 됩니다.
돌아오는 길의 성벽내부.
이 때도 아쉬움이 많았습니다.
갑자기 마차를 타고 가게 되어 원형이 더 잘 남아있는 남문을 찍지 못했습니다.
나중에 마차에서 뛰어내려 또 뭔가 나오길 기대했으나
이 역시 안타까움으로 남았습니다.
뭐, 이 아쉬움은 며칠 뒤 다른 곳에서 보상받게 됩니다.
강택민도 울고간 통곡의 산에서 말이지요.
다 내려와 멀리사 바라본 오녀산성.
언젠가 아나벨 가토처럼 '
(그럼 아토믹 바주카도 갖고 저 산을 올라야 할까나? 까나?)
이 날은 오직 오녀산성을 하나 보기 위해 종일 버스를 타야 했습니다.
뭐, 서울과 구리시 정도로 가까운 곳이 고속도로로 5시간 거리니 참말 너른 나라입니다.;;;
쇼바가 나갔는지 고속도로에서 강원도 정선 산길의 버스보다 더 흔들리는 버스를 타고요.
중간에 쉬었을 때 마을의 낡은 집이 눈에 들어와서 찍었습니다.
여행을 떠나기 전 홍천 산골의 독립유적 조사를 다녀와선지
(거기서 70년대식의 전빵도 보았지요)
이 곳의 풍광이 그리 낯설지 않았습니다.
듕궉인과 조선/한국인의 미적 감각의 미묘한 차이, 지역색이 있을 뿐
다른 것을 기대하고 갔다가 닮은 게 너무 많아 오히려 놀랬달까요.
미묘하게 다른 집의 모습과 요령성 넘버(트럭 뒷 면에 번호를 저리 크게 적더군요)만 아니면
그냥 우리나라 사진이라 여기겠지요.
아까와 이어진 사진입니다.
집안에 들어오니 이미 깊은 밤.
식당을 찾아가니 예약한 우리 일행 덕분에 문도 못닫았습니다.
뭐, 이건 우리 선생님과 가는 답사에서 항상 겪는 일이라 RGM-79는 개의치 않았으나
다른 사람들, 특히나 식당 주인과 종업원은 죽을 맛이었겠지요.
아주 맛있는 고기가 나왔으나 마지막 조각을 집으려는 순간
훽~하고 가져가버린 것으로 보아 이것은 그 복수인 것 같습니다.
여기서 만보산 사건을 재현할 순 없고 걍 한중 외교관계를 생각하여 참았습니다.
(이닝의 마당식구들은 RGM-79가 얼마만큼의 인내를 보였는지 아실듯)
홍천 갔을 때 먹은 양지말 화로구이를 생각나게 하는 밤이었습니다.
(겨우 한다는 고향생각이 고기라니! 고기라니!)
밤 깊은 마포종점, 갈 속 없는 밤 종점~
그러나 여기는 마포가 아닌 집안이고 RGM-79는 잘 곳이 있습니다.
마치 1년 전쟁이 끝나고 안문호군이 '나에게는 돌아갈 곳이 있어'하듯.
그나저나 밤거리 그냥 걸어보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저 집안은 내 집안처럼 아늑하지도 안전하지도 않고
종일 공사중이어서 그럴 수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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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다음 카페 신나는 점프점프(http://cafe.daum.net/jump0080)에 올라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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