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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GM-79의 삼국사기 이야기

그땐 그랬죠.. 본문

한국고대사이야기/고대사 잡설

그땐 그랬죠..

짐순 폰 데그레챠프 2012. 10. 17. 13:01

평소에 수업을 할 때마다 마지막에 질문은 없냐고 묻고는 없으면

아주 바람직하신 학생들이라고 말하곤 합니다.

덕분에 정말 질문이 다음 시간에도 안나오는데 실은 질문에 답변 잘해줍니다.

여기서도 질문이 적당히 나와주면 글 쓰기 귀찮은 날 잘 넘어갈 수 있을텐데 -_-;;;


모처럼 생각해볼만한 질문이 하나 올라왔습니다.


이분의 따님과 아드님은 미남미녀입니다. 저, 예약도 가능할까요..라고 물었다간 생명보장은 안될껍니다.


과연 그 당시의 인식의 공유가 있었을 것이냐는 것이죠. 요약하자면요.

우선 앞부분부터 답변하자면 이집트의 피라미드 건축이나

고구려와 부여, 삼한의 동맹, 영고 등의 축제가 바로 그 역할을 합니다.


아시다시피 이집트의 피라미드는 나일강의 범람으로 집과 농지를 잃은 백성들에게

물이 빠질 때까지 생계를 보장해주는 일종의 복지대책으로 쓰였죠.

노예로 부려먹은 게 아니라 제대로 급료도 지급하고

아픈 사람, 부상당한 사람들 치료도 해줍니다.

거기에 또한 하나의 이집트 국민으로서의 정체성 교육도 은근슬쩍 이루어집니다.

이집트야 나일강 상류와 하류가 각각 다른 나라였거든요.

메네스가 그걸 통일 했지만 여전히 갈라진 양 지역의 교류를 통해

지역감정(?)을 완하시키고 파라오와 신들의 사랑을 받는 가족이란 인식을 주는거죠.

상이집트(남쪽입니다. 나일강은 남에서 북으로 흐르니)인이 보기에

하이집트 놈들은 늑대같은 짐승이라고 생각했는데

만나보니 걔들도 나랑 같은 인간이더라.

파라오님께서 보고계셔(파라미테?) 그러니 우린 행복해.. 이런 것을 전파하는거죠.


고구려나 부여의 동맹, 영고도 분권화된 사회가 정기적으로 모여

윗분들은 국내 현안에 대해 토의하고 재판을 진행하느라 바쁘지만

아랫것들에게도 중요합니다.

윗분들이 부여의 동명이나 고구려의 주몽(추모) 같은 신성왕의 신화에 조율한 현실을

축제의 장에서 재인식하고 돌아가는 것이지요.

가끔 ㅎㅇㅎㅇ하는 광란의 만리장성 건축도 행해질 수도 있지만

기록이 없어! 기록이!!

(그렇다고 그 시대로 돌아가겠다는 암울한 청춘은 없길 바람. 거긴 아청법 대상 자체가 없음!!)


아래것들이야 순진하니까 그렇다 쳐도

저걸 뻥친 윗분들이 이걸 믿었느냐의 문제인데

속이는 건 남만 가능한 게 아니죠.

저것이 세계의 질서라는 인식이 생기면 자신도 정성스레 믿게 되는거죠.

특히 후손들의 경우는 정말 우리 할아버지가 알에서 태어났는지

퍼도퍼도 줄지 않는 솥을 가졌는지,

날개가 달린 신인이었는지 확인할 수도 없습니다.

이른바 밥상머리 교육 받고 나면 그만인걸요~

그리고 저것의 신성성이 유지되는 동안 자신의 지위도 유지될 것이니

그것이 알고 싶다고 나설 필요도 없습니다.


그땐 그랬다.. 이게 정답일 수도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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