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GM-79의 삼국사기 이야기
고구려사의 간단한 정리 1 - 건국의 배경 본문
멀리서 바라본 오녀산성. 출처는 09년 직찍
고구려는 시기적으로 기원전 37년에 혼강유역의 환인지방에서 건국했습니다.
북한에서는 광개토왕비에 적힌 왕대수와 삼국사기의 기록에 차이에 주목하며
200년 앞서서 건국했다는 것이 공식 견해입니다.
또 중국기록에 고구려는 900년 된 나라라는 이야기도 나오지요.
일부에서는 남한 학계는 식민사학 나부랭이라서 그딴 거 안믿는다고도 하지만
(그에 대한 제 답변은 趙家之馬!입니다. 이놈의 19세는 욕도 잘해요~! 키랏!)
아직 확실한 근거가 나오지 않은 상태라서 북한처럼 단정짓지는 않습니다.
다만 북한처럼 완전한 고구려의 형태냐 원초적인 고구려적인 상태냐에 대해 조심스러울 뿐입니다.
기원전 75년에 이 지역에 머물던 현도군이 만주로 이동하는데
이를 고구려 국가형성의 중요한 분기로 보는 것이 공통된 견해입니다.
우선 본격적인 건국을 이야기하기 전에 환경을 이야기하자면
적어도 남한의 학계에서는 앞에서 말한 것처럼 신중하게 접근합니다.
환인과 집안은 산지가 많은 계곡 사이에 약간의 평야가 존재하는 지리적 환경을 갖고 있어
그 곳에 여러 집단들이 생성되었으나 차차 하나의 중심으로 통합하였다고 보고 있습니다.
고조선 멸망 후 이 지역에는 한의 현도군이 들어섰는데
집안에 고구려현이 있었던 것과 기원전 75년에 현도군을 축출한 것으로 보아
이미 전부터 고구려의 원초적 형태는 존재한 것으로 이해하지요.
아주 강하게 이야기 하지 않았으나 이기백 선생님같은 경우
삼국사기에 나오는 건국기원인 BCE. 57년,
또는 현도군 축출 이전에 이미 성립하였을 가능성이 크다고 봅니다.
고구려 현이라는 말 자체가 고구려사람들(종족이냐 국가냐 지역이냐는 차치하고)의 존재와
이들을 특정지어 지배하려는 한의 생각을 보여준다는 것이죠.
그러나 그 실상이 어떠하였는지 섣불리 단언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인근의 독로강이나 여타 지역에서 나오는 고고학자료,
즉 초기 적석총을 본다면 뭔가 있기는 있었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다만 신중하자는 거죠.
제철유적인데 토기만 있음;;;. 한국고고학회, "한국고고학강의" 개정판, 사회평론, 2010, 158쪽.
결국 고구려의 건국은 최소한 현도군을 몰아낸 후,
각각의 집단들이 융합작용을 통해 이루어진 것으로 봐야죠.
물론 더 올라가는 자료가 나온다면 검증을 거쳐 우리의 이해가 확장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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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글은 고구려란 국호의 어원.
물론 이게 맞는다던가 후속이 될지는 믿거나 말거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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