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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GM-79의 삼국사기 이야기

고구려사의 간단한 정리 2 - 고구려의 국호에 대하여.. 본문

한국고대사이야기/한국고대사강좌

고구려사의 간단한 정리 2 - 고구려의 국호에 대하여..

짐순 폰 데그레챠프 2012. 11. 1. 13:05

고구려, 고려.

처음에는 고구려高句麗라고 불리고, 

대개의 경우 초기 문헌에서는 麗자에 부수 마馬가 더 붙은 高句驪로 불립니다.

요건 한때 삐친 츤데레 왕망이 하구려라고 부른 것과 유사하게

일부러 국호의 일부를 짐승이름 글자로 바꾸어 부르던 호칭입니다. 

장수왕 대로 내려가면 가운데 구자가 사라진 고려高麗라는 이름으로 정착됩니다.

네, 왕건이 건국한 그 고려라는 이름의 원전이기도 하죠.

(그래서 고려사 전공 후배들을 지들 이름도 못지어 다른 나라 이름 배껴먹고

그거 은폐하는 놈들이라고 갈굽니다. -_-;;;)


이 이름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붙었는가에 대해서 명확하게 밝혀진 것은 없습니다.

다만 B.C.E.107년에 현도군이 만들어지던 당시 

지금의 집안 일대에 고구려현이 설치되었다는 것이죠.

고조선의 멸망 이후 설치된 한군현이 지배지역을 거점 통제하며

중국인과 토착민과의 융합(실은 단계적 동화)을 추구했고

경우에 따라 해당지역의 고유명사를 군현명으로 차용했다는 사실을 돌아보면

고구려현이라는 이름 자체가 고구려라는 집단을 염두에 두고 지어졌다고 봐야겠죠.

보통 두 글자로 지어지는 이름이 중국적이지 않은 세글자의 고유명사라는 것은

이러한 생각이 그리 허황된 이야기는 아닐꺼란 겁니다.

뭔가 지배해야할 놈들이 있기 때문에 현을 설치했고

또 거기에 고구려라는 이름을 쓰는 놈들이 있었기에 그 이름을 지었다.

이게 현시점에서 당시 한제국의 행동을 해석할 수 있는 최적의 답일 것입니다.

물론 다른 자료들이 나온다면 얼마든지 수정되어야할 것이고요.


나는 현시점에선 가장 중요한 일개 학설이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서 말이지.

이빨 꽉 물어! 너같은 학설 수정해 주겠어!

아. 이것이 진실인가..


아~ 이분 그러나 20대임.. 하긴 19세 아해보단 늙었으니까! 키랏~!


뭐 이런 것이 현시점에서 할 수 있는 말일 겁니다.

인정하고 싶지 않군. 나 자신의 '어림' 때문에 일어난 잘못이란 것을.. 

이런 말도 통하지 않아요.

오늘 글의 기조랄까. 저는 제 말을 믿어야 하지만 여러분이 그래야할 의무는 없습니다.


이병도의 「고구려국호고」(『한국고대사연구』, 박영사, 1976에 재수록, 원 논문은 1공때;;)

이 논문이 고구려의 국호 유래에 대한 접근을 하고 있습니다.

사실 이 논문 이후로 그리 많은 이야기가 나오진 않는데

지금 고구려 국호에 대한 기본적인 이야기는 다 나왔지만

워낙 오래된 논문이라 읽어도 말이 사맛디 아니한 느낌이 들어

제 자신이 어여삐 여겨지더군요. -_-;;;

후반부는 거의 빠지고 전반부의 이야기만 현재까지 이어지는데

대충 요약하면 다음가 같습니다.

고구려란 국호에서 앞에 위치한 '고高'는 형용사 입니다.

그러니까 핵심은 '구려句麗'라는 것이지요.

간혹 구려로 표기되는 경우도 종종 보이는데

앞에서 이야기했듯 왕망한테 반항했다가 이름이 고자에서 하자로 바뀌는 거보면

당시 중국도 구려가 핵심어라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왕망이 멸망하고 후한이 들어서자 광무제가 다시 고구려로 고쳐 불러주지요.


이에 [현도군의] 동쪽 경계상에 작은 城을 쌓고서 朝服과 衣幘을 그곳에 두어, 해마다 [고구려]인이 그 성에 와서 그것을 가져가게 하였다. 지금도 오랑캐들은 이 성을 幘溝漊라 부른다. 溝漊란 [고]구려 사람들이 城을 부르는 말이다.

- 국사편찬위원회,『중국정사조선전』, 삼국지 위서 동이전 고구려조 해당기사 번역


『삼국지』위서 동이전에 실린 이 기사를 통해서 하나를 유추할 수 있습니다.

어쩌면 고구려의 구려는 이 구루라는 이름에서 유래한 것은 아닐까요?


'구려'는 고구려어로 성城ㆍ읍ㆍ골 등을 의미하는 

'홀(忽ㆍKhor)'ㆍ'골(Kor)'ㆍ'구루(溝漊ㆍKuru)' 등의 음을 표기한 것으로 여겨진다.

-『민족문화대백과사전』고구려 항목(노태돈 집필)


유달리 고구려에서는 땅과 관련된 글자를 많이 씁니다.

위에 인용한 홀,골,구루 외에도 

'내內'ㆍ'노奴', '천川', '양壤, 讓, 襄'이런 글자들이 같이 쓰입니다.

그래서 구루라는 지명을 가리키는 명사가 중요하게 쓰였을 가능성이 큽니다.

이 단계의 정치체의 경우 이름 정하는데 요란하게 공모전을 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저 자기들을 가리키던 표현이 자타공인으로 굳어지는 경우가 많죠.

자기가 그렇게 불렀을 수도, 남이 그렇게 불러줘서 고정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뭐 휘황찬란한 기념식이 있는 게 아닙니다.

그저 네가 이름을 불러주니 꽃이 되었더라..식입니다.


바로 아래서, 그러니까 로우 앵글로 찍은 오녀산성. 그런데 모에하진 않더군요.


마침 떠오르는 기억이 있네요.

09년에 찾아간 오녀산성에서 저 고구려라는 이름의 의미를 깨달았습니다.

그야말로 높은 성, 그런 곳에 사는 놈들이라는 타인의 지칭이었을 가능성이 높겠더군요.

城과 性도 혼동하는 바보라 그런지 성곽에 관심이 많아

산성고고학을 해보려다 포기했는데

(평지에서도 못뜨는 삽, 산에 간다고 되겠냐~~는 비명이 들렸다지요)

원래 산을 잘 못타는데 이 산은 더 죽겠더군요.

오로지 길은 달랑 두 개, 그나마도 딱 기관총 놓는 자립니다.

어쩌면 높은 성에서 웅거하던 집단들을 부르는 명칭이 아니었을까요?

뭔가 하다 말고 끊게 되는데 요건 다음주에 이야기할 자연환경 이야기를 해야 

좀 이해가 되실껍니다.

(지난주에 요 이야기를 한 줄 알았는데 안해서 다음 글을 써야겠군요.

지금 밥먹고 싶습니다..)


그 힘든 와중에 아즈망가 대왕을 떠올림. 아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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