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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GM-79의 삼국사기 이야기

차대왕 3년 - 무당의 좋았던 시대가 저물어간다.. 본문

삼국사기를 읽어보자!/고구려이야기

차대왕 3년 - 무당의 좋았던 시대가 저물어간다..

짐순 폰 데그레챠프 2012. 11. 6. 19:34

원문

三年秋七月 王田于平儒原 白狐隨而鳴 王射之不中 問於師巫 曰 "狐者妖獸非吉祥 况白其色 尤可怪也 然天不能諄諄其言 故示以妖怪者 欲令人君恐懼修省 以自新也 君若修德 則可以轉禍爲福" 王曰 "凶則爲凶 吉則爲吉 爾旣以爲妖 又以爲福 何其誣耶" 遂殺之


해석

가을 7월 왕이 평유원에서 사냥을 할 적에 흰 여우가 따라오며 울었다. 왕이 그것을 활로 쏘았으나 맞추지 못하였다. 무당에게 물었더니 답하기를 "여우란 것은 요망한 동물로 상서롭지 못한 것입니다. 하물며 흰 색이라면 더욱 괴이할 따름입니다. 그런즉 하늘이 능히 고운 말로 타이를 수 없기에 요괴란 것으로 보이고자 하는 바는 임금님으로 하여금 두렵게 하여 (자신을) 성찰코저 하는 것이니 스스로 새로워지란 뜻입니다. 임금님이 만약 덕을 쌓으시면 즉 가히 화가 복으로 바뀌는 것입니다"하였다. 왕이 말하기를 "흉이라면 곧 흉한 것이 되고 길이라 하면 곧 길한 것인데 너는 어찌 요사스럽다고 하다, 또 복이 된다고 하니 어찌 그런 터무니 없는 말을 하느냐"라며 그를 죽였다.


- 삼국사기 권15, 고구려본기 3, 차대왕 3년조


귀찮아서 노모로 감상합니다.

어제 글에서 무당얘기가 나와 그들이 국가 체제 속에서 어떻게 바뀌어가는가를 한 번 이야기해볼까해서 예정과 달리 한참 전인 차대왕 때까지 올라갑니다.


차대왕은 태조왕의 동생으로 기록되나 태조왕의 수명이나 그의 수명을 고려해볼 때, 현재의 사료를 해체하지 않는 한 아들로 보는 것이 합리적일 것 같습니다. 아니면 태조왕과 차대왕은 계보가 다른 사람인데 기록이 전승되며 형제처럼 그려졌다고 보거나요.(물론 장수왕처럼 오래 살았을 수도 있지만 이 형제는 무려 3형젭니다..) 


차대왕은 형인 태조왕에게 엄연히 두 아들이 있음에도 왕이 되었죠. 태조왕 후반부는 차대왕 수성의 활약이 두드러진데 거기서도 그는 강성으로 나타납니다. 그를 견제할 것을 주정한 대신을 죽이고 이 기사 앞에서는 태조왕의 첫째 아들을 죽이니 둘째는 자결합니다. 사실 고구려의 왕자들의 삶은 그리 평온하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이들은 그 중 하나일 뿐입니다.


결국 그는 명립답부의 손에 죽임을 당합니다. 왜 그런지 이 사람을 볼 때마다 조선 세조가 떠오르는데 이 사람이 하는 행동은 일본의 웅략천황입니다. 눈에 거슬리는 건 다 죽여! 어쩌면 이 왕의 치세를 한 줄로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건 차대왕이 아니라 이 때 등장하는 무당입니다. 그는 아마 왕에게 직속된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모든 것이 신령한 힘을 갖추었고, 하늘이나 신의 뜻이 나타난다고 믿던 시대에 이른바 통신병이기도 하고 암호해독관이기도 합니다. 한편으로는 위안을 주는 군종의 역할도 수행합니다. 


사냥을 갔다가 흰여우가 나타나서 따라오며 웁니다. 

기분이 찝찝해서 활로 쏘아도 맞지 않습니다.

왕은 뭔가 마음에 걸리는 게 있어서 무당을 불러 이러한 사건을 해석하게 합니다.

무당은 원래 불길한 일인 것은 맞는데 아직 경고단계니까

지금부터라도 잘하면 좋은 일이 될꺼라고 이야기 합니다.

원래 점은 두리뭉실합니다.

지나치게 세세할 경우 나중에 칼날이 되기도 하거든요.

뭐 실은 신전 내의 유황가스로 무녀들이 정줄을 놓아서 그런거지만

델피의 아폴론 신전의 점괘가 그렇게 애매하기로 유명하지요.

정말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가 되기도 합니다.

하여간 앞으로 잘하면 된다는 말만 들으면 됩니다.

희망이 있잖아요.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그 무당이 죽는다는 겁니다.

하늘과의 소통할 수 있는 힘을 가진 자,

그런 자를 하늘이 죽이는 겁니다.

혹여 하늘이 자기의 입이자 소통창구를 건드렸다고 벌벌 떨지나 않을까?

처음 하늘에서 시조가 내려왔다고 선언한 이래

그의 후손들은 한동안 사제왕priest king을 칭했습니다.

멀리 올라간다면 삼한 때는 아예 통치자도 못 건드는 사제들의 영역, 소도가 있었지요.


아무리 차대왕이 특이한 즉위과정을 거친 왕이라지만

무당을 죽여도 되는, 아니 아무 두려움을 느끼지 못하는 시대가 되었다는 겁니다.

그저 공무원처럼 정치권력에 예속된 무당들의 황혼을 보는 것 같습니다.

계속 이야기할 산상왕-동천왕의 시대가 격변의 시대였다지만

그 갈등과 고통의 싹은 이미 있었던 것은 아닐까요?


말꼬리 :

어디선가 자학사관(아놔 열여덟, 이것도 일본용어다. 이 볍진아)한다는 욕을 들었는데

그 비교 대상이 누구...??

차라리 글이 개판이라 했으면 수긍할 문젭니다.

아무리 삼국사기에 모자이크 입혀놓고 ㅎㅇㅎㅇ거리는 뵨태지만

역사를 가지고 맛스타베이션하는 IQ 1자리수 짓꺼린 안합니다.

역사책 펴놓고 컴퓨터 앞에서 자위행위하면 

옷에 묻고 손에 묻고 컴퓨터와 책이 더러워집니다.

일본과 중국이 하면 큐베 개객기고 우리가 하면 자주?

딱, 츠치 마사노부, 무다구치 렌야같은 놈이라 불러드립니다. 에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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