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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GM-79의 삼국사기 이야기

약간 사료가 될 사진들 4. 사라진 탑.. 본문

역사이야기/역사잡설

약간 사료가 될 사진들 4. 사라진 탑..

짐순 폰 데그레챠프 2013. 3. 18. 19:45

언젠가 익산의 미륵사지를 찾은 적이 있었어요.

비가 줄창오는 8월 한 여름 아침에 온 몸이 젖고 방전직전의 상태였는데

안개 속에 서 있는 미륵사 석탑은 참으로 아름다웠어요.

그러나 오래지 않아 그 날 사진기를 가지고 가지 않은 것을 땅을 치며 후회하게 됩니다.

(인정할 수 없군. 나 자신의 어림으로 인한 과오라는 것을

이딴 어린이 수정해주겠어!!

아~ 이것이 어른인가~~... 고마해!!)


그 후로도 여러 번 익산에 가게 되는데 

왜그런지 미륵사지는 그다지 가고싶지 않은 곳으로 변합니다.

그 탑이 없는 미륵사는 동남리나 군수리사지 이상의 가치가 없다는 게

석탑 덕후뇬의 쓰잘떼기 없는 감상입니다.


탑을 다 걷어낸 시점의 사진이죠.

한 번 보고~ 두 번 보고~ 자꾸만 보고 싶진 않네.. 두둥두둥둥둥~ 띵가띵가띵띵리딩가~

조오기 한가운데 표지판이 있는 곳이 그 금동판 나온 곳.

주변에는 거기서 분해한 부품들을 전시합니다..


위가 분해한 원래 미륵사지 서편 석탑의 전시실입니다.

이 시점보다 더 올라가면 한참 분해중인 석탑을 구경할 수 있었고,

석탑 축조의 과정을 유추할 수 있는 부분도 볼 수 있었습니다.


요 앞의 터는 가운데 목탑이 서있던 자리..


2층에서 바라보니 90년대 초반에 지었다는 동탑을 볼 수 있습니다.

다만 연구자들에 따라서는 저 크기, 높이가 아니라고 보기도 합니다.

하나 확실한 건 짝수층은 아닐 거라는 거죠.


한참 지방자치제의 실시에 따라 각 지역의 문화선양사업이 줄을 이었습니다.

가장 많았던 것이 이러한 유적, 유물의 복원 사업이기도 했죠.

(이것에 대해 열흘동안 떠들 이야기도 있지만

그 동네분들과 싸우기는 싫으므로 그닥 열의가 생기진 않아요.

특히 충주, 단양권분들과는 무척 싸워야할 것 같아서. 통과!!)

특히 성곽이 많은 충청지역을 중심으로 산성복원 사업이 줄을 이었는데

오히려 천년을 넘긴 유적보다 새로 지은 것이 무너지기도 했습니다.

(그렇다고 딴 지역이 안그런 것은 아닙니다. 이런 시베리아!!)

정말 시멘트 광화문은 양반이었습니다.(아 이런 싸이비리아~~)


짐순이는 1990년대 한국의 학술/문화계가 저지른 최대 실수를

조선총독부 철거와 미륵사지 석탑 분해결정이라고 봅니다.

(뭐, 어르신들이 보시면 어린 것은 맴매맞을 지도 모르지만 맷집을 믿어봅니다)

사실 많은 언론에서 일제의 시멘트 복구를 최악이라고 부르긴 했지만

당시에는 이게 최선이기도 했습니다.

(니뽄진들은 지네 나라 유적 복원에도 썼어요)

또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지금 저 복원탑을 만들 용기도 못냈을 겁니다.

자료도 없었을 것이고요.

언젠가는 부숴버리던가(총독부), 좀 더 확실한 기술이 나오거나나(이 석탑)

좀 기다릴 줄 알았어야 했는데

그 당시의 어른들은 좀 많이 성급한 것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어린 것이 뭘 알아..라고 하시기 전에 어린 것도 납득할 수 있는 얘길 하셔야죠.


한동안 분해는 했지만 다시 조립이 가능할지 모르겠다는 소리가 나오던

이 석탑을 어떻게 다시 볼 수 있을런지.

짐순이는 사진을 찍지 못한 어림, 어리석음을 탓하고 있습니다.


보너스로 그나마 '둏았던' 사진.

미륵사지 전시관의 화장실 안내판.

얼마전에 갔더니 이거 치워진 것 같기도 하고...


조, 좋은 그림이다!



말꼬리 -----------------

간만에 애니블로그 글 하나 올렸습니다.

http://daznyang.tistory.com/60

간다무책을 좋아하시는 분들은 좋아하실지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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