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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GM-79의 삼국사기 이야기

동아시아 문화의 흐름은 자기주도적으로 이루어졌다.. 본문

한국고대사이야기/한국고대사강좌

동아시아 문화의 흐름은 자기주도적으로 이루어졌다..

짐순 폰 데그레챠프 2013. 6. 8. 10:09

80년대까지만해도 한일관계사를 바라보는 중심 시각은

선진적인 한반도의 고대국가가 후진 일본에 문화를 전달해주었다는 겁니다.

아니 일본이 우리보다 몇 수 아래에 있었던 상태라는 게 더 정확하겠군요.

뭐, 재야사학에 이르러서는 아예 우리가 그들을 지배했다는,

적어도 매우 강한 영향력 아래 있었다고 봅니다.

그냥 왕인과 같은 이의 활약이 있었다고 보는 온건한 주장부터

아예 식민지를 두고 지배했다는 (북한학자 김석형의) 극단론까지

다양한 시각이 횡행했던 시댑니다.


또, 일본은 오래전부터 한반도로부터의 영향력을 강하게 부정하고 있었습니다.

적어도 일본인의 국가의식이 성장하는 메이지시대 이후

지배의 상태에 놓인 한반도가 역사적으로 우위에 있었다는 사실은

지배의 정당성을 역사에서도 찾으려는 것과 충동했었으니까요.

역사적으로 한반도에서 건너간 사람들도 당인唐人, 오인吳人,

즉 중국에서 건너왔다고 부르기도 하고요.

아예 일본열도와 중국대륙사이의 직항로가 개설되어

한반도를 거치지 않고 '순수한' 중국문명을 그대로 전수받았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이처럼 1980년대의 한일관계사를 보는 관점은

어느 정도 식민지 지배의 잔영이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는 거지요.


또, 한반도에서 건너간 것을 강하게 주장하면

그러면 너희 문화는 독자적인 것이냐, 다 중국에서 유입된 것이지라는

반론도 터져나왔습니다.

그런데 재미난 것은 중국 대륙의 국가들이 한반도의 국가를 바라보던 시각이

그대로 한일관계의 기본시각으로 발전하기도 했다는 겁니다.

중국은 중국대로 기자가 건너가고 한군현이 설치되며

미개한 동이족 사회가 그럭저럭 사람다운 모양을 갖추게 되었다고 보고

끊임없이 침략하는 기본원리로 삼았습니다.

사실 누가 더하고 덜했느냐, 누가 덤Dumb이고 더머Dumber냐의 차이지

다들 역사를 정치적 관점으로 이리저리 왜곡했어요.

(다만 우리가 피해자였던 적이 많은 편이죠)


동아시아사 교과서(천재교육) 54쪽


자, 이 지도를 봅시다.

그냥저냥보면 21세기에 나온 이 역사교과서도 80년대 식 논리의 반복같지요.

그러나 한국의 연구가 심화되면서, 좀 더 폭이 넓어지면서

일본의 식민지배에 대한 피해의식도 엷어지고

(이 말은 반드시 극복해야한다는 강박관념이 사라진 것을 말합니다.

80년대 초까지는 어떻게든 이겨야한다는 것이 학계의 기본인식이었으니까요)

문화의 속성이란 것에 눈을 뜨게 되면서 좀 다른 시각을 갖기 시작합니다.

(다행히 이 교과서는 과거의 시각으로부터 한발짝 앞서나가기 시작했습니다)


기존이 중국이 기자와 한군현을 내세우고

한국이 다양한 형태의 문화전수와 식민지배같은 논리를 내세운데는

'전파론'적인 입장이 강했습니다.

그냥 쉽게 이야기해 

선진이 후진에게 문화를 전파해주어 사람만들었다는 이야기죠.

받는 사람의 입장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상태에서

주는 사람이 강제로 입벌리고 수저를 들이밀며 '먹어'하면 먹어야 하는

그런 형태의 문화전달이 잇었다고 본겁니다.

중국은 이미 기원전부터 그런 이야기를 했는데

서구에서는 식민지를 지배하며 저열한 문화권에 

신의 이름으로 문명을 전달하려니 이것들이 알아먹지 못해 

강제로 전파한다는 논리를 내세웠지요.

(하하.. 泥美..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뭔가를 하사하노니 입다물고 감사히 받아들여라..

무슨 지배-피지배의 이론을보는 기분입니다. 

아니 실제 그런 이론이었지요.


그러면 현재는 어떻게 보아야 하나를 고민하다 나온 것이

바로 수용론입니다.

물론 전파론처럼 선진이라던가 후진이라는 기본 개념은 있어요.

물론 문화의 속성이 물처럼 흘러가는 것이라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는 건 

전파론의 서두랑 똑같습니다.

다만 여기서부터가 틀려집니다.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는 동인動因은 물에겐 중력이 될 것이요,

전파론에서는 강한 자의 '미덕'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 수용론에서는 받아들이는 자의 의지와 선택이 

그 자리를 차지할 겁니다.

평양감사도 저 싫으면 그만이라는 말처럼

아무리 좋은 것도 자기가 귀찮거나 버겁거나 무서우면 거부합니다.

그리고 자기에게 딱 맞는 것만 받아들입니다.

대륙에서 한반도로, 그리고 열도로 이어지는 문화의 흐름은

누가 '하사'하는 것이 아니라 주도적으로 찾아 흡수하는 과정으로 설명됩니다.


우리가 중국으로부터 한자문화를 받아들이고

율령이나 불교같은 요소들을 받아들인 것도

우리가 필요하니까 받아들인 겁니다.

또 일본 역시 자기들이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것이 나타나니 

적극적으로 받아들입니다.

물론 정치적 수사로 가득한 역사기록에서야

당연히 전파론적인 입장이 강합니다.

(그래서 '사료암기'만 하는 분들이 보기엔 참 편한 답이 나올 수 밖에요)

그것을 넘어서 그 속에 숨겨진 다른 것을 발견해야 하는 거죠.


이제는 일방적인 문화교류를 주장하는 분은 많이 줄었습니다.

점점 전파론과는 전혀다른 문화현상이 현실에서도 벌어지기도 하죠.

또 언젠가는 수용론보다 더 합리적인 이론이

이 현실을 어떻게 해석해줄까하는 기대도 품어볼만합니다.

그러나 그때까지는 이 수용론도 한발 나아간 인간의 생각의 증거가 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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