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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GM-79의 삼국사기 이야기

사료를 다 믿으면 아니 읽는 것만 못하다.. 본문

한국고대사이야기/한국고대사강좌

사료를 다 믿으면 아니 읽는 것만 못하다..

짐순 폰 데그레챠프 2013. 4. 16. 14:43

이번에 새로 발견된 고구려비에 대한 기사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

(물론 역사학 분야에선 이 정도도 폭주다)

거기에 동참하자면 쓸 거리야 무궁무진 하겠지만

사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쓰는 것은 양심에 찔리는 문제이기도하고...

하나 다뤄보고 싶은 것이 고구려인들은 중국의 고이족이라는 주장이긴 한데

동이족에 대한 이야기부터 들어가야 하니 좀 엄두가 안난다.

(사실 쓸 거리가 무궁무진한 블로그이긴 하나

전문 포럼도 아니니 막상 쓸 수 있는 것이 많지도 않다.

특히나 오프라인에서의 짐순이는 매우 까탈스럽게 쳐낸다.

여기에 들어오는 대다수의 눈으로 설명할 수 있느냐가 항상 문제다)

다만 좀 짧게 이야기를 해본다면,

특히나 번역된 사료랑 인터넷 하나로

'나는 도를 깨달았다'라고 주장하고픈 얼간이들을 위해

욕대신 좀 뭔가 도움이 되는 이야기를 하자면

사료 한 줄도 쉽진 않다.

정말이다.


출처는 엔하위키.. 짐순이는 명왕성 언니가 조, 좋다!!!


예를 들어 세일러문에서 세일러 플루토가 여엿한 외행성전사로 나오는 게

후대의 애니학계의 논쟁이 되었다고 치자(나무도 아니고 ;;;)
23세기의 어떤 연구자가 21세기 이후 지구에선
명왕성을 태양계 행성에서 빼버렸으니 이 애니의 구성은 문제가 있다고

20세기 변신소녀 애니의 구성문제라는 논문을 발표했다고 치자.

뭔가 이상하지 않은가? 설득력이 없는 망할 비유라고 보이는가?

그렇다면 일단은 당신의 두뇌는 멀쩡하다는 반가운 징표겠지만

현실에선 실제 이런 말도 안되는 것도 되어버린다.

(말도 안된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그런 일들이 일어난다)

우선 세일러 플루토가 처음 등장한 미소녀전사 세일러문 2기 R이

처음 방영된 것은 1993년.

애시당초 이 애니를 만들기 전,

아니 원작자인 다케우치 나오코가 연재를 시작한 1991년에는

명왕성은 태양계의 9번째 행성이었다.

왜 갑자기 세일러문 이야기를 하느냐는

과거로 올라가면 갈수록 역사기록은 사실을 정확히 기록한 것 뿐만 아니라

그 기록을 하는 사람의 인식을 그대로 담는다는 것이다.

앞에서 이야기한 23세기의 시각에서 명왕성은 행성이 아니라

왜소행성, 또는 명왕성계에 속하니

이 만화/애니는 근본부터 잘못되었다고 한다는 건

그가 역사가로서 자질이 얼마나 빈약한가를 보여주는 증거가 될 거다.

중요한 건 다케우치 나오코의 시대에는 그게 사실이었거나,

혹은 그렇게 믿고 있었다는 것이 중요하다.


출처는 동일. 보라 20대의 원숙함!!! 19세는 도저히 따라갈 수가 없다. 엉엉엉


때로는 기록에서 동서남북이 바뀌어있거나

원근이 뒤바뀐 기록을 보게 된다.

이를테면 우리나라의 동으로는 #$, @&가 있고

서로는 *@, !%가 있다는 식의 개론적인 서술이다.

이런 문장은 그 나라의 개관을 설명할 때나(이를테면 동이전같은 외국기록)

또는 사신이 다른 나라의 정치가들과 만나 국제적 문제를 조율할 때

정세판단을 하는 대목에서 주로 나온다.

그런 기록을 가지고 당시의 국제관계를 설명하는 시도가 많은데

그 기록을 전적으로 신뢰하면,

아니 엄밀히 말해 오독하면 엉뚱한 결과를 도출하게 된다.

그들의 대화는 당장 자기들에게만 필요한 것만을 이야기한다.

매우 강력하지 않거나 외교관계에서 변수가 되지 못할 경우

그런 언급에서 빠지거나 중요도에서 밀리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미묘하게 균형에 집착하던 당시의 습관상

만약 동쪽에 3개 나라가 있고 서와 남쪽에 2개 나라 북쪽에 1개 나라가 있을 경우,

동쪽의 한 나라를 떼어 북쪽에 넣어 균형을 맞추는 경우도 있다.

한줄로 요약하자면 과거인들은 우리보다 더 관념적이라는 것이다.

이런 속성을 이해하지 못하고

단순히 사료의 긍정이나 부정이냐, 또는 수정론이냐를 논할 경우

그 사실이 말하는 진실과는 거리가 멀어지는 경우가 있다.


이를테면 백제인들이 자기와 인접한 세력들을 언급할 때,

북으로는 말갈, 동으로는 낙랑이라는 말을 한다.

현재 고대사학계의 연구성과들을 생각할 때

단순히 문헌만 가지고 생각한다면 이 기록은 잘못된 기록이다.

낙랑군은 적어도 한성백제의 북쪽에 위치하며

백제 초기기록의 말갈족은 동쪽에 위치한다.

그렇지만 낙랑의 흔적이 초기 백제의 동쪽인 가평에서도 발견되고

(현재 경춘선 가평 역사 자리에서 낙랑계 유적이 발견되었다)

말갈의 위치를 춘천을 중심으로 한 강원 영서로 보는 시각에서 벗어나

그들이 현재의 경춘선과 경춘가도를 교통로로 사용했다기 보다는

가평에서 포천을 거치는 루트를 사용했다면

(조선시대까지도 현재의 경춘가도는 교통로로 그리 좋진 않았다.

분단 덕에 쇠약해졌지만 경기 북부 교통로가 더 활성화되었었다)

한강유역의 입장에서는

어느 시점에 낙랑은 동쪽, 말갈은 북쪽이라고 볼 여지가 충분하다.


삼국사기 백제 멸망기사에 나오는 사론을 보다보면

최치원의 말을 인용하여 고구려는 고신씨의 후예,

신라는 소호금천씨의 후예다라는 대목이 나온다.

정말 그렇다면 삼국의 시조는 전부 중국에서 나왔다는 것일까?

그 문장을 절대적인 성서로 믿으면 그렇게 된다.

혹은 어느 특정한 국가의 정치적 의도에서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고,

그러나 이 기록의 실상은 마치 신라 중고기에

왕실이 자신들은 전생의 부처와 연결시켜

우리는 부처님과 동기동창이니 말 안들으면

부처님께 대드는 거와 마찬가지라고 주장하는 것과 같다.

자기의 권위를 높이기 위해 무언가에 연결시키는 거지.

이걸 문맥을 따지지 않고 믿어버리면,

또는 자신의 인식을 거기에 가두어버리면 

그 사실을 제대로 인지할 수 없는 것이다.


사료는 읽으면서 해체도 감행해야 한다.

그에 대한 평가는 현재의 입장에서 해야하는 것이지만

그 사실 자체를 이해하는데 있어선

결국 그 시대로 다이빙해야 한다.

가끔 그것을 잊었을 때, 그 사람의 글은 그야말로 개드립이 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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