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GM-79의 삼국사기 이야기
해석 없는 팩트만이 날아다니는 세상.. 본문
아마 DC시절, 아니 PC통신 시절까지 거슬러올라갈지 모르겠습니다만
웹에서의 좀 전문적이다 싶은 대화는
전부 누가 더 팩트를 많이 알고 있는가에 국한되었습니다.
언제부턴가는 네이뇬, 엔하위키, 구글창을 띄워놓고
상대방과 대화를 하는 것이 구래의 전통, 미풍양속이 되었달까..
조금만 모르는 것이 나오면 하수로 찍어누르는 경우를 많이 봤어요.
조선 후기사 하는 분께 서양사인가 동양사로 대들며
내가 저 전문가보다 잘났다라는 정신승리를 하는 것도 보았지요.
(아 ㅆㅂ, 그야말로 박찬호에게 축구 드리블 왜 못하냐고 묻는 꼴)
특히 팩트라는 말이 어느 시점에서 유행하게 되며
그 팩트가 들어가는 대화는 끼어들기가 싫어졌어요.
한국고대사에 국한시켜 말해보자면
한국의 고대국가 초기의 상황을 해석하는 논의로
초장부터 중앙집권체제로 빠방하게 갔다는 쪽과
부체제나 연맹왕국단계를 거쳐 중앙집권적 귀족국가로 갔다는 쪽이 있지요.
아예 삼국사기에 초점을 맞추어서
삼국사기의 모든 기록을 적극적으로 신뢰하자는 쪽과
그 기록에 대해 면밀히 검토한 후 재해석하자는 수정론이 나뉘죠.
물론 이런 입장의 차이는 치열하게 격돌합니다.
때론 드넓은 평원에서 회전이 벌어지기도 하고
경우에 따라선 그야말로 17:1 혈투가 벌어지기도 합니다.
(나름 어린 나이에 어른들 손에 이끌려 그걸 직관했음은 객기쩌는 자랑~)
그래도요, 적어도 순간 격하면 뭔 말을 할지는 몰라도
근본적으로 진짜 전문가들은 그래도 상대를 대화가능한 대상으로 봅니다.
물론 그놈의 사실관계를 가지고 경쟁을 하지만
누가 더 얼마나 알고 있느냐보다는
누가 더 그걸 설득력있게 상대를 설득하느냐가 더 중요하지요.
가끔 저마다 전문가라고 싸움박질하는 걸 종종 보는데
이 어린(young & foolish) 것의 눈으로 봐도
과연 그들이 정말 그 문제를 진짜 이해하고 이야기하는 것일까?
아님 외장 메모리를 순간순간 검색하며 이야기하는
공각기동대 코스프레를 하고 있는 것인가 의문이 듭니다.
맨날 읽어도 정말 모르겠던데,
언제는 또 지금 알고 있는 게 맞나 싶기까지 한데..
공부의 핵심은 암기가 아니라 회의가 동반된 해석이라는 것을
학교에서 배우지 못했나 봅니다.
지금도 영화 내츄럴시티의 메인테마를 들으며
과연 짐순이는 한국고대국가 형성이론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가란 의문이 듭니다.
이러다 아줌마 나이가 되어도, 머리가 하얗게 새고 허리가 굽어도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것 같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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