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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GM-79의 삼국사기 이야기

설씨네 아가씨 05 - 오로지 내 새끼 사정만 눈에 밟혀서.. 본문

삼국사기를 읽어보자!/신라이야기

설씨네 아가씨 05 - 오로지 내 새끼 사정만 눈에 밟혀서..

짐순 폰 데그레챠프 2013. 10. 15. 00:30

원문

會國有故 不使人交代 淹六年未還 父謂女曰 "始以三年爲期 今旣踰矣 可歸于他族矣" 薛氏曰 "向以安親 故强與嘉實約 嘉實信之 故從軍累年 飢寒辛苦 況迫賊境 手不釋兵 如近虎口 恒恐見咥 而棄信食言 豈人情乎 終不敢從父之命 請無復言" 其父老且耄 以其女壯而無伉儷 欲强嫁之 潛約婚於里人


해석

마침 나라에 위급한 일이 생겨서 사람을 교대할 수 없었기에 6년을 머물게 되어 돌아오지 못하였다. (설씨녀의) 아버지가 그녀에게 말하기를 "처음 3년을 약속하였는데 지금 이미 한참을 지났구나. 이젠 다른 집안에 시집을 가야겠다"라 하였다. 설씨녀가 답하기를 "아버지를 편케 하기 위해 가실과 더불어 굳은 약속을 맺었는데, 가실은 그것을 믿고 몇년째 종군하고 있어요. 춥고 배고픈 고생을 하고 더구나 최전방에 있어 병장기도 못풀고(쉬지 못하고) 있는데 마치 호랑이 입 앞에 있는 것과 같아 항상 두려움에 떨고 있을 거예요. 그런데 신뢰를 버리고 말을 바꾸는 것이 어찌 사람의 도리인가요? (아버지) 소녀는 죽어도 그 말씀 따를 수가 없어요. 그 말씀 안들은 것으로 할께요"라 하였다. (그럼에도) 그 애비는 늙고 또 늙어 그 딸이 컸는데 배필이 없음에 억지로 시집을 보내려 하여 몰래 마을 사람과 혼약을 맺었다.


간만에 모자이크를 보니 힘이 납니다. 역시 유모가 짱!

무려 한 달 만의 글입니다. 어디까지 끊어야 하나.. 이게 한달을 쉬게 했어요. 참 어이 없죠? 눼, 짐순이는 그런 년이어요. 물론 무려 4개 광역자치단체를 매주 순회하는 강행군 덕에(강원-서울-경기-경북) 다른 건 손에 안잡힐 정도였지만(10월 신작도 본 게 달랑 4편? 시작한지 보름인뎁..) 그래도 오래 끌기도 했습니다. 자, 어디서 끊어야 했는지 이제 확인해볼까요?


지난 글에서 설씨네 아가씨의 속내를 모르겠다고 했지요. 이 뇬이 재는 건지 아닌지.. 두고 보자고요. 지금은 그녀의 아버지에게 욕이 나오고 있어요. 일상생활에서 종종 발견하고, 집에 들어오면 항상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그런 짜증나는 등장인물 같은..(그래서 야구밖에 안보지만요)


네, 이해는 갑니다. 지금처럼 혼자 살아도 그럭저럭 살 수 있는 세상이 아닙니다. 경제적 자립은 커녕 사회적 존립조차 보장받지 않는 시대에 딸아이의 미래가 걱정되겠죠. 그리고 3년만 지나 온다던 사람은 돌아오지 않고요. 뭔가 흉흉한 소리만 들려옵니다. 그리고 한국의 군대, 그것도 과거의 군대라면 더더욱 병사들의 목숨 값은 바닥에 떨어진 모래알과도 같습니다. 뭐 듣자니 병사들의 목숨값은 군견보다 싸다면서요. 보급서열인가 뭔가 그렇다메.. 그리고 지난 정권에서 어느 국방장관인가 참모총장인가가 국방예산 깎지 말라는 편지를 썼는데 거기에 병사들에게 들어가는 돈을 얼마든 줄여도 된다 그랬던가요? 아놔.. 신세기 국민방위군 찍나. 하여간 그나마 인권이란 개념이 들어간 이후와 그 이전은 비교조차 거부합니다. 그리고 전사자 비율이 지금보다 더 낮지는 않았을 겁니다.


그러나 인간적으로 짜증나는 건 

이 아버지 눈에는 정말 자기 것만 눈에 보인다는 거죠. 

자기 군역 대신해준다고 할 때는 언제고.. 

물론 딸이 생과부되는 거야 싫겠지만 

그냥 자기 목소리 빽빽지르는 드라마 속 사람들이나, 

정말 종종 마주하는 개념상실한 '내새끼는 무오류'설 추종자부모들 같달까나.. 

(그러나 자기 부모도 있을 것인데 남의 부모 사정 챙기고, 

중요 재산까지 넘겨주는 남자도 스스로 호구인증이니)


그런데 뭔가 주판알을 굴리고 있을 것 같았던 이 아가씨의 답이 걸작입니다. 

그 사람 우리를 위해 자기를 희생하여 지금 개고생을 하고 있어요. 

아버지, 우리 사람으로서 그런 말 하지 말죠. 

아가씨의 말은 단호합니다. 

그러나 그 아버지 딸이 처녀로 늙어간다는 사실만 눈에 들어오니 

결국 사고를 치네요.


원래 직역이 원칙이지만 대화에는 좀 의역을 했습니다. 

그동안의 삼국사기 읽기 중에서 가장 의역이 많이 들어간 편이랄까. 

그리고 뭔가 역사 이야기를 해야하는데 

현실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을 또 역사책에서 만나자니 또 감정적이 됩니다. 

사실 과거를 말하는 사람들은 

흔히들 옛날에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 믿음이 있었다고들 합니다. 

자신의 과거에서 싫은 부분 다 도려내고 나니 좋은 것만 남았더라..이겠죠. 

하지만 우리가 황금시대-은시대-구리시대를 지나 

철의 시대에 산다고 믿던 고대 그리스인도 아니고 

어떻게 과거만이 그렇게 순수할 수 있을까요? 

과거에 좋은 사람들이 있었다면 

그 몇 배 이상의 그저 그렇거나 나쁜 사람들이 살았는 걸요.


공자가 살았던 노나라에 정직하기로 유명한 사람이 살았습니다. 

누군가와 다리 밑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했는데(싱하횽?) 

갑자기 홍수가 나서 물이 불어오는데 

그래도 약속은 지켜야 한다며 

기둥을 끌어안고 버텼다가 죽었다고 하지요. 

그러나 논어에는 다른 이야기도 나옵니다. 

공자가 말합니다. 

누가 그를 정직한 사람이라 칭송하는 가. 

누가 그의 집에 장을 빌려달라 찾아오면 옆집에서 빌려다 주었다고요. 

그때나 지금이나 사람은 숭고하기도 하고 추잡하기도 합니다.


한달 전부터 담고 싶어 했던 시 한 수를 적어놓지요. 

원래 끊어읽는 문제와 함게 이 시를 언제 푸느냐도 고민거리였는데 

이렇게 맨 뒤에 붙이게 되었습니다. 

적어도 이 시의 새색시보단 설씨네 아가씨가 낫군요.


閨怨 규방의 설움 - 왕창령


閨中少婦不曾愁 안방의 새악씨 근심이란 것을 몰랐다.

春日凝妝上翠樓 봄날에 화창한 차림으로 단청한 이층 누에 올랐다.

忽見陌頭楊柳色 무심코 거리의 버들빛을 보고는,

悔敎夫婿覓封侯 남편에게 출세하라고 권했던 것을 후회한다.


(임창순, 당시정해, 소나무, 1999, 12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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