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GM-79의 삼국사기 이야기
서류의 속얼굴.. 본문
지금 울진입니다.
와이브로도 안터지고 테더링할 맛폰도 없어서 보통 낮에는 접속을 못하는데
지금은 약속이 있어서 군창 앞 커피점에서 놀고 있습니다.
오전에 두어분 만날 일이 있어서 돌아다녔는데
다시 한 번 뒤통수가 아픈 일이 있었습니다.
그냥 문서로만 모든 것을 판단해야 하는 사람들의 한계랄까요..
그런 이야깁니다.
원래 울진은 제2공화국까지는 강원도 소속이었습니다.
1963년에 울진이 동위도대 영주와 봉화와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경상북도로 편입되었죠.
덩달아 울진 소속이었다가 독립한 울릉도(+독도)도 경상도 소속이 되었죠.
그러나 문화적으로도 영주와 봉화와는 완전하 다르고
또 그 아래 지역과도 동질성은 그리 크지 않아요.
오히려 삼척과 더 가까웠지요.
그리고 일제시대 가장 좌익활동이 많았던
현재 동해시(원래 삼척시에서 분리 독립)의 운동 다음으로 활발했지요.
(머리 숫자야 그닥이래도-인구가 적어- 활도량에서만큼은
이 지역은 강원의 모스크바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어요.
물론 일제시대 좌익운동은 1945년 이후와는 달리 봐야합니다.
뭐, 대다수는 그 이전에 박살이 나서
자생적 좌익 중에서 냉전기 이후에도 활동한 사람이 없거든요)
행정구역의 역사를 봐도 울진은 적어도 삼국시대부터 강원도의 영역에 속했어요.
국토지리원제공 대한민국전도 중에서..
그런 사람들이 강원도에서 경상북도로 편입되었을 때 어떤 기분이었을까
그런 중요한 증언을 얻어들을 수 있었어요.
서류 상으로 보자면 경상도 편입은 좋은 일이었지요.
아무리 생각해도 강원도보다 경상도가 더 많은 것을 얻어낼 수 있었지요.
기록을 보지 않았으니 확언할 수 없지만
예산문제라던가 하는 문제에서도 나았을 겁니다.
솔직히 한두명을 빼고 5.16의 주역들이 경북에 깔렸거든요.
몇 해전 외가를 가는데 가는 길에 아버지가 그러시더군요.
요기는 누구 고향, 여기는 누구 동네..
그런데 이속 직전에 공무원이 되신 분 이야기를 들으니
(1년도 안되어 소속이 바뀌셨다고..)
또 그와는 다르더군요.
우선 공무원 일하는 것으로 한가지가 편했답니다.
공무로 춘천에 가자면 왕복 1주일이었는데
(일하는 데 며칠, 편도 하루씩)
대구가 되니 좀 시간이 줄더라구요.
현재 여기의 교통을 생각하면 대구 3시간, 춘천 4시간 넘게 걸립니다.
(대구는 시외버스, 춘천은 자가용 이용이라 편차는 있죠)
지금 사람이 그냥 들으면 별거 아니라 하겠지만
과거의 강원도 교통 사정을 생각하면 정말 대구가 편했을 것 같아요.
('오라방, 차 좀 세워봐.. #@$%~!'는 아무것도 아니었겠죠)
그러나 그 외에는 하나도 좋은 게 없었다는 겁니다.
울진의 군세를 생각하면 정말 미미한 변방군현인데
의외로 사람들의 활동력이 높거든요.
그래서 강원도시절에 고위 관리들을 많이 배출하고
강원도 내의 인맥이 매우 잘 구축되어 있었는데
그게 하루 아침에 날아갔다고 합니다.
그리고 경북 내에는 인맥이 전혀 구축되지 않아
한동안 겉돌았고, 일처리 하는데 힘들었다는군요.
지금도 서울 외지역은 지역, 학연의 입김이 강하다는 걸 생각하면
(사실 춘천같은 30만 도시도 시내에서 두어다리 거치면 다 압니다)
그 시절에는 갑자기 편입된 군현이 좀 어려웠겠지 싶군요.
거기에 고전적인 학맥도 다르죠.
(이건 당시 영남 문인들이 서울과는 따로 노는 경향이 있었죠)
공무원의 일 뿐만 아니라 울진군민이 경상북도에 잘 녹아들지 못했다 합니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니 머리가 아팠습니다.(물론 좋으면서.. 변태인가. 연방의 MS는..)
1963년의 군현이속이 어떤 결과를 가져왔을까에 대해서는
생각해보지 않았어요.
그냥 기계적으로 바뀌었구나.. 이러고 말았었죠.
아무리 인간의 얼굴을 가진 역사학을 추구한다고 해도
매우 딱딱한 문자들만 남은 시대를 공부하는 건 이리 머리가 아픕니다.
어쩌다 걸리는 짤막한 사람 이야기를 빼고는
거기에 사람의 향기가 깨끗하게 탈취되고 있어요.
(그래서 삼국사기의 열전과 삼국유사와 일부 금석문이 소중합니다)
며칠 전에 광개토왕 이야기가 나오던 게시판에서
그가 얼마다 위대한지를 떠드는 글에서 한 문장을 발견하고 웃었습니다.
(王의) 은택(恩澤)이 하늘까지 미쳤고 위무(威武)는 사해(四海)에 떨쳤다. (나쁜 무리를) 쓸어 없애니, 백성이 각기 그 생업에 힘쓰고 편안히 살게 되었다. 나라는 부강하고 백성은 유족해졌으며, 오곡이 풍성하게 익었다.
- 광개토왕릉비문, 역주 한국고대금석문에서..
이 문장을 들며 얼마나 정치를 잘했겠냐고요..
순간 어이가 허블딥필드까지 날아가벼렸는데
역사책을 끼고 산다고 말하는
짐순이도 본질적으로 이런 이야기들을 하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말꼬리 ---------------
군청 앞 서점도 나름 괴랄합니다.
기묘하게 예전에 리뷰쓴 책과 앞으로 해야할 책들로 뒤 덮인..
(라노베도 기기묘묘하게 꽃혀있고.. 패턴이 안읽혀)
잘 안볼만한 책을 지지난 주에 샀는데
오늘 보니 또 한 권 꽃혀있더군요.
이 서점 주인도 액시즈규모의 고집이 느껴집니다.
별 다섯개 중 세개 반은 받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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