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GM-79의 삼국사기 이야기
울진 봉평리 신라비 전시관에 다녀온 후기.. 본문
꼭 찍지 말라는 거 찍는 나쁜 애들이 있어요. 그게 짐순이여요..
얼마 전에 다녀온 것 같은데 어느새 한 달이 흘렀습니다.
동서울에서 울진으로 가는 버스를 탈 때마다 여길 지나곤 했었는데
다른 일정이 겹치니 사사로이 들러 자기 시간을 보낼 수 없다는
꼬장고장한 10대의 어설픈 고집 때문에 가보지 못하였습니다.
버스 외에도 여기저기 돌아다닐 때마다
이곳을 지나곤 했기에 더 가보고 싶었거든요.
한 달 전 서울 올라가기 전에 시간이 남아 들러볼 수 있었습니다.
9만원짜리도 파노라마가 된다구!!!
울진에서 가장 활발한 항구를 꼽자면
북쪽의 죽변항과 함께 남쪽의 후포항을 꼽을 수 있지요.
그 죽변항을 가기 전 국도를 타기 위해 한 번 꺾어야 하는데
바로 그 곳에 봉평비가 서있던 자리에 전시관을 세워놓았습니다.
거기로 들어가기 전 주변의 바다를 찍어봤는데
연방의 양산기에 실린 광학장치가 좋을 리 없잖아요?
걍 이거보다 더 실물은 낫다고 생각해주세요.
올라가는 길에서 찍은 전시관 원경
요 앞의 트랙은 인라인경기를 위한 것..
조금 더 가까이 가보면 이렇습니다.
솔직히 입구에 들어서기 전엔 지자체의 흔한 돈지랄로 봤습니다.
물론 비는 국보이긴 하지만 그걸 저렇게 큰 건물로 감쌀 필요가 있을까?
그런 돈발광을 여기저기서 본 상태라 그닥 호의적이진 않았습니다.
입구에 들어가는 순간까지 그런 생각이 이스트 듬뿍 먹인 반죽처럼 커졌습니다.
제1전시실로 가는 순간에는 뭘 많이 깔아서 3실이나 맹글었나..
이러니까 지자체들이 재정 말아먹는거야..
이렇게 툴툴대던 짐순이를 가장 먼저 반겨준 것은 이 비석이었습니다.
(사실은 화장실을 먼저 갔어여.. 소녀의 비밀~♡ -_-;;)
그리고 좀 더 돌아다니면서
왜 이런 규모의 건물이 필요한지 이해를 하게 되었습니다.
눼, 한국고대사연구에 큰 영향을 미친 그 비석입니다.`
이제 이 놈을 봤으니 이제 집에 가면 되나?
그랬다면 이 글을 지난번에 슬쩍 올린 사진으로 끝났을 겁니다.
비석 뒤에도 뭔가 있었어요.
아무리 쳐다봐도 한자로 가득한 비석은 읽기가 힘들고
더욱이 마치 글씨 못쓰는 초2 학생이 쓴 것 같은
중고기 신라 금석문을 비석 표면만 보고 해독해낼 굇수는 없지요.
이 비석의 탁본이 걸려있기도 하고
이 비석의 내용과 이 비석의 시대에 대한 설명이 잘 정리된 패널들이 있었습니다.
국보 242호인 이 비석을 보호하는 보호각 정도에 그치지 않고
이 비석이 왜 울진에 세워졌는가를 잘 설명해주는 장치들이죠.
초점이 안맞았다고 돌던지면 삐짐!
또 이것만 있다면 이렇게 큰 건물은 필요가 없습니다.
문화행사의 장으로 삼기엔 거주 인구수도 적고
(올해 초 통계로 울진 군 자체 인구가 5만명 겨우 넘깁니다.
이 비석이 세워진 죽변면도 고작 천단위의 인구 규모지요)
또 외부에서 오는 사람도 많지 않지요.
그렇다면 그 큰 건물에는 무엇이 있는가..
이 전시관은 한국고대의 금석문박물관을 표방하고 있었습니다.
제2전시관은 바로 익숙한 비석들의 복제품들이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임신서기석, 사택지적비, 영일 냉수리비, 포항중성리비..
신라중고기 연구의 핵심자료가 되는 비석들이 모여있었습니다.
그냥 복제품이라고 구색만 맞춘 건 아닙니다.
이 비석들을 전시해놓음으로서
봉평비가 가지는 역사적 의미를 복합적으로 살펴볼 수 있었거든요.
임신서기석, 무령왕릉 지석, 중원고구려비
사택지적비, 냉수리비, 영천 청제비, 중성리비(?)
제3전시관이 있었지만 차 시간도 있고,
또 이 전시관의 학예사님을 만나야 해서요..
마침 이 분이 춘천에 있는 학교에도 적을 두고 계시고
또 같이 일하던 분들 중에 아는 분이 있으니
이래저래 몇 다리 걸치면 아는 분이셨거든요.
그분과 대회하던 중에 이 전시관의 고민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하나 더...
본격적인 금석문 전시관으로써 중요한 의의를 가지는 곳입니다만
문제는 울진군이 가지는 태생적 한계,
그 놈의 교통이 문제지요.
현재 짐순이가 거주 중인 중부지역에서 가는 길은 매우 단순합니다.
동서울서 출발하는 경우 삼척과 동해를 거쳐 들어가는 루트
(짐순이는 보통 이쪽을 택합니다. 춘천에서 가나 서울에서 가나 시간이 같아요.. 차는 더 적고)
그리고 영주를 거쳐 들어가는 길이 있어요.(영주에서 울진 가는 길은.. 웩웩..)
그리고 서울 외 지역에서는 강릉을 거쳐 가는 길 밖에 없지요.
길은 길대로 불편하고 시간은 시간대로 걸립니다.
이렇게 좋은 전시관을 두어도 와서 볼 사람이 없다는 것이지요.
마침 여기를 담당하는 학예사님은 이 시대의 지역사를 전공했고
지금도 꾸준히 연구성과를 내는 분입니다.
(뭔가 설명을 부탁할 때 담당자가 이렇게 잘 맞아 들어가는 경우는 많지 않죠)
지금 영일 냉수리비와 중성리비가 자리한 포항에서도
이런 형태의 전시관을 준비 중이라는데 포항은 그래도 교통의 편의성이 있지요.
울진에 이런 좋은 전시관이 먼저 생겼다는 것은 전혀 알려지지 않은 상태에서
서서히 묻혀져 갈 것입니다.
요즘 보령에서 울진까지 동서를 관통하는 고속도로를 만든다고 난리인데
그게 완성될 때 쯤 모든 시설은 이미 낡아있을 것이니까
그게 무척 아쉽더군요.
하긴 영일 냉수리비야 지겹게 봤지만 봉평비를 본 건 이 날이 처음이었거든요.
(영일 냉수리비는 작년 봄까지도 거의 방치플레이에 가까웠는데..)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보니 시간이 많이 지나 자료도 받아서 나왔습니다.
나오면서 찍은 안내판..
그리고 마지막으로 찍은 전경.
말꼬리 -------------------------------
사실 쥐뿔도 모르는 주제에 아는 척하다 무식이 드러났음에도
너그럽게 자료를 주신 학예사님께 깊은 감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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