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GM-79의 삼국사기 이야기
시대구분은 왜 필요한가.. 본문
며칠 전에 읽던 책의 서문에서 시대구분에 집착하느라..
그러니까 시대구분 담론 놀이하다 정작 중요한 걸 빼먹었다는 식의
문장을 읽게되었습니다.
좀전까진 고고학 책이었나 싶어 뒤졌는데
지금 이 문장을 적다보니 중국사 책이었던 것 같네요.
사실 가장 중요한 것에 대한 이야기가 매우 소홀하게 다뤄지는 것 같아
언젠가는 해야지 싶었는데
마침 그 쪽 책을 전부(!) 읽어야할 일이 있어서 이 참에 생각을 정리하게 됩니다.
주의 : 보통은 일부만 재미 있는 글이지만 오늘 것은 그 일부에게도 재미없는 이야깁니다.
짐순이만의 짧은 생각일런지는 모르겠지만
역사공부의 시작과 끝은 시대구분이어야 한다고 믿고 있습니다.
각 혁사적 흐름의 전환과 이어지는 국면을 파악하고
또, 각각 구별되는 그 시대만의 특성을 찾아내는 것.
그런 것에 대한 이해로부터 역사를 공부하기 시작하고
결국 평생 걸릴 자기의 공부 역시 그 시대의 얼굴을 찾아내는 것으로
결론지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에 가장 충실한 것은 일본의 동양사연구자들이었습니다.
동경대가 맑시즘과 사회과학의 관점에서 중국사를 해석하려 했다면
경도대는 동대보다는 인문학으로서의 특성에 집중했지요.
이들의 연구는 반세기를 넘어 이젠 한 세기를 바라보는 긴 연구과정을 거칩니다.
짐순이가 가장 좋아하는 역사책 중 하나인
미야자키 이찌사다의 중국중세사(원제 : 대당제국)는
그냥 보면 쉽게 읽을 수 있는 이야기책이지만
일본 동양사 연구의 흐름을 알고보면
경도대 동양사학파의 반세기 연구결과의 결실이기도 합니다.
왜 위진남북조시대가 중세인가,
왜 당이야기는 막판에 짧게 나오는데 제목이 대당제국인가..
그걸 전율하며 읽게 됩니다.
(덕분에 짐순이는 이야기 역사글을 쉬이 쓰지 못하는 체질이 됩니다;;)
어쩌면 짐순이의 의식 형성과정 중에 이런 흐름을 읽은 것이
유달리 시대구분에 집착하는 결과를 낳았는지도 모르지만
덕분에 시대구분을 다룬 연구성과물은 다 가지고 있게 되었네요.
물론 한국의 역사학자들은 그렇게 의식을 하고 접근하지는 않는 경향을 보입니다.
(정작 본토 중국학자들만 봐도 일본애들이 특이한 것일 수도..)
그러나 사실 그 모든 연구들이 시대구분으로 귀결됩니다.
만약 어느 학자가 통일신라 관제조직에서 짙은 율령의 향기를 맡고
율령제시스템의 운영을 주장한다면
그 분은 의식하지 않던, 의식하던 간에 통일신라를 중세로 보는 입장에 발을 담궜습니다.
짐순이는 통일신라 관제 및 사회 운영시스템에서
율령제보다는 신라 원초적인 운영원리를 따랐다고 보기에
전통적인 나말여초가 고대와 중세의 분기라는 전통 설을 고수하는 겁니다.
저 위의 부카니스탄에선 60년대 말에
시대구분에 대한 그야말로 목숨을 건 혈투를 거치며(지면 숙청?)
삼국 초반에 완전한 중앙집권화를 이룩했다고 보고 있으므로
그런 논지를 력사과학에 피력하는 학자들은
고조선-진국을 고대 노예제로 보고
삼국시대 초부터 중세봉건제국가로 시작
2천년을 중세 암흑기에 살았다는 국가학설에 힘을 보태는 겁니다.
(그쪽 창세신화에 의하면 1대 술탄의 증조부인가가
제네럴셔먼호를 향해 불덩이를 던지며 근대가 시작된다고 합니다..-_-;;)
고대사던 고려사던 조선시대사던 결국 연구자들은
자신도 모르게 불붙지 않는 시대구분논쟁에 참여하는 것이지요.
그러다 가끔 터지는 불화산이
1980년대부터 90년대까지 고려사연구자들 사이에 붙었던
귀족제-관료제 논쟁입니다.
아예 이 연구사에 대한 책이 나올 정도였죠.
그런데 딱히 시대구분이라는 거창한 깃발,
일종의 거대담론을 내건 논쟁이 아닌 이상 때로는 방향을 잃기도 합니다.
한국사연구자들 사이에 암묵적으로 왕조에 따른 시대구분을 부담스러워 합니다.
다만 너무 긴 생존주기를 가지고 있기에
(이븐 할둔만 해도 왕조의 생명은 4대 120년이라 한 것 같은데요..
뼈빠지게 건국하고, 보강하고, 방치하고, 말아먹고..의 순환)
어쩔 수 없이 쓴다는 인상도 받아요.
문화와 관련된 분류사에선 종종 왕조적 시대구분과 차별된 인식을 내세우기도 하죠.
과거의 몇몇 시대구분론에 대한 연구프로젝트를 보면
아예 왕조적 구분을 지향해야 한다는 강박관념도 읽혔었습니다.
적어도 한국에서는 왕조가 기준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조선문학의 대표적 장르 중 하나인 시조도 시작은 고려말이지요.
이인임의 조부인 이백년의 다정가가 원조지요.
또 조선 후기의 사설 시조에서는
그 어떤 래퍼의 찐한 발언보다도 더 끝내주는 말의 향연이 벌어지죠.
(노터리우스 b.i.g는 귀여울 정도..-_-;;;)
복식의 경우도 조선 초에는 여전히 고려말의 복식이 유지된다고 합니다.
조선이, 대한제국이 일본에 넘어가서도 한동안은 갓쓰고, 한복 치마입었죠.
아니 남아선호사상이 대세에서 물러난 것도 불과 십여년 전의 일입니다.
그런 하나하나의 예로
전반적인 흐름과 다른 이야기를 이야기하는 경우가 종종 나옵니다.
청동기시대 이래 꾸준하게 이어진 평민들의 토광묘는 사라지고
이제 슬슬 화장이 대세를 점하니
우리는 이제야 청동기 시대가 끝난 걸까요?
물론 극단적인 설로 1970년에 와서야
아프리카나 태평양 연안의 원시부족들이 문명화의 영향을 받으니
이제야 인류의 선사시대가 끝났다는 서구학자도 있습니다.
만약 80년대에 운동권이셨다면 한 번은 들었을
사구체론이나 아시아적 생산양식론 같은 이야기는 어떤가요?
특히 헤겔로 거슬러 올라가는 맑시즘의 시대구분론에서 비롯되는 이야기들이었죠.
15세기 이전에 정말 세계사에서 대세였던 적이 없던
서유럽 일부의 경제적 발전 도식이 어느새 세계의 공식이 되어
오히려 대세였던 아시아의 사회발전은 아시아적 생산양식으로
격하당하는 수모를 겪었지요.
(물론 산업혁명 이전부터 말아먹은 건 인정! 하지만 이 부분에 한정하면 헤겔은 개객기)
자신의 연구로 시대의 특성을 밝히는 것은 중요하지만
보다 근본적인 흐름을 이해하지 못해서 더 큰 연구로 승화시키지 못한
한계를 지니고 있습니다.
미시에 집착하다 못해 그게 거시의 기본원칙이 되었달까.
어쩌면 이런 복잡하고 거대한 사정을 다 파악하고
또 그걸 아우르려는 시도를 해야한다는 것이
시대를 연구하면서 그 시대를 말하지 못하는 억압장치가 되는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역시 구속구를 헤체하고 사도를 물어뜯어 영구기관을 획득해야 하나.. 쩝)
아마 내일 쓰게될 글의 주인공 책이지 싶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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