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GM-79의 삼국사기 이야기
북한 역사학의 이해 2 본문
<..앞에서 이어서..>
이런 연구라하더라도 어느 정도 학문적 자율성이 주어진 상황에서 적당히 현실과 타협한 결과라면 최소한의 학문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지요. 그러나 북한은 여타 사회주의 국가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정치가 학문을 좌우하던 곳입니다. 다른 국가들이 당과 이론에 역사학을 맞추도록 강요하는 수준이었다면 부카니스탄은 아예 학설, 학문의 연구방향이 지도자에게 좌우되고, 거기에 맞지 않으면 숙청이라는 이름의 거세를 당하게 됩니다. 그냥 학계 구성원들의 동의를 얻지 못하여 학문적으로 잘 안팔리는 사람이 된다.. 정도가 아니라 정말 학계에서 추방, 또는 사회적으로 구축당한다는 겁니다. 사실 분단직후 남한보다 북한이 더 뛰어난 학자들을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많은 인재들이 북한으로 자진해서 흘러들어갔죠. 특히나 사회경제사의 업적을 내놓은 이들이 많았지요. 그 시대의 사상적 지형을 생각하면 이상한 일은 아닙니다만, 한흥수 같은 이는 전쟁기간 중에 간첩으로 몰렸고 이여성같은 이는 반동분자로 몰렸습니다. 이름만 대면 알만한 상당수의 사회경제사쪽 연구자들은 1958년부터 서서히 사라지기 시작하였습니다. 한반도에서 선사학의 기초를 닦은 도유호같은 사람들도 흔적도 없이 사라져갔지요.
근현대사는 철저하게 김일성과 그의 가계, 소위 말하는 백두혈통(정작 백두산에서 태어난 이는 없던 걸로..)의 영광을 밝히는 것으로 노역하기 시작했습니다. 근대의 시작과 현대의 시작을 김일성가계의 자각으로 열어간다고 본다던가, 일제 하 독립운동에서 김일성의 역할을 극대화한다던가 하는 식이지요. 한때 유행하던 현대사를 하나 또는 두어개의 가문에 압축하여 파란만장한 대하드라마 쓰는 걸 남한에서는 소설가나 방송작가들이 하는데, 윗동네에서는 역사학자들이 그 일을 하고 있었지요.(단 신화적 상상력에 기준을 둔다면 부카니스탄의 저작물은 생후 7일만에 활로 파리를 격추한 주몽신화와 동급입니다) 그런 영광을 위해 통일신라에서 조선후기까지 이르는 천 오백년의 가까운 시간은 그야말로 새벽이 오기 전의 짙은 암흑으로 설정될 수 밖에 없습니다. 남한의 연구자라면 익히 알고 있는 다양한 면모의 발전도 국지적인 것으로 격하되었지요.
그러면 고대사는 어떨까요? 아무래도 부카니스탄의 역사연금술사라도 수천년 전까지 백두혈통의 족보를 연장할 수 없지요. 맑스-엥겔스의 사회발전단계론에 입각한 설명의 틀만을 가져도 좋았겠지만, 고대사 역시 부카니스탄의 독특하고도 괴랄한 역사만들기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지요. 특히나 김일성을 중심에 놓는 주체사상이라는 것이 역사학에서 말하는 보편성을 추구하기 보다는 특수성에 무게를 둔 극단적인 민족주의 성향을 띄기에 고대사만 따로 떨어질 수가 없었지요. 남한과의 대결에서 역사적 우위를 주장하기 위해 1950년대까지 긍정하던 삼국통일 긍정론을 버리고 고조선-고구려-고려-조선-부카니스탄이라는 역사의 정통계보를 설정하고 고대사마저 정치에 부역하게 만들어버립니다. 조선전사의 발해편만 봐도 그냥 표현이 민족의 반역자, 제 이익만을 생각하는 봉건모리배지요. 신라야 저 구도라면 악의 축이지만 백제는 뭔 죄인지..
아예 더 나아가 고고학으로 올라가면 구석기시대부터 한반도에는 단일혈통의 역사가 이루어졌다던가(한반도의 인류는 현생인류가 아니라 네안데르탈도 아니고 호모 에렉투스나 호모 에기스터라는.. 아 ㅆㅂ. 우린 살아있는 화석인류..-_-;;) 나중에는 세계 4대문명과 동급의 대동강문명이 싹튼 곳이라는 주장도 나오게 됩니다.(이걸 보면 환빠도 귀여워보입니다. ㅎㅇㅎㅇ~)
21세기에 들어서 북한역사학에 대한 관심은 서서히 사라져 갑니다. 처음에는 같은 민족의 역사연구라던가, 그렇게 소망하던 금지된 엿보기가 허락된 흥분이랄까, 또는 갈 수 없는 곳에 대한 자료부족의 해소랄까.. 이래저래 다양한 관심거리가 있었는데, 너무 지나치게 국가통치, 아니 일 개인의 영광에 귀속된 역사학은 금새 매력이 사라지죠. 오덕의 세상에서나 츤데레가 열정욕정의 대상이지 실제 상황에서 지나치게 떽떽거리면 매력 없잖아요.(그래서 리얼 얀데레인 짐순이는 인기가 없구나!) 실제로 북한의 연구자들을 만나본 분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분명히 분단직후 구성원들은 부카니스탄이 우위를 점했음에도 잦은 숙청과 억압된 분위기 탓에 제대로 연구자 육성이 이루어지지 못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생각이 달라도 학문적 목소리가 살아있으면 모를까 죽어버린 목소리는 결코 오랜 기간의 관심을 끌기 어렵지요.
현재는 고고학쪽에서 보이는 관심외에는 많이 사그라든 상태입니다. 해석을 개판으로 한다 하더라도 발굴 사실만은 어찌할 수 없을 거라는 믿음이랄까.. 가뜩이나 저쪽의 경제사정이 바닥을 뚫고 맨틀층을 항해중이라 연구성과의 공개도 어려워지고, 정국의 정색과 함께 그나마 나오던 것들도 구하기 힘들어졌습니다.
앞으로의 북한 역사학은 어떻게 돌아갈까요? 미래를 알 수 있다면 그딴 거보다 이번주 당첨번호에 신경을 더 쓰겠지만, 하여간 점쟁이도 모를 것을 말할 수 없지만 하나는 확실하죠. 암담한 미래라는 겁니다. 계속 김일성의 가계가 성공적으로 살아남아 해먹는다면 극히 소수의 손바닥이 매끈해진 사람들만이 살아남을 겁니다. 만약 주체사상이라는 목줄이 목에서 풀어지면 좋을 것 같지만 사실, 북한이 독자적으로 생존할 가능성이 없으니 제대로된 연구활동은 더 힘들어질 겁니다. 설령 중국처럼 과두정의 개혁개방 노선을 타더라도 여전히 국가에 귀속된 연구이고, 그나마 대우해주던 것들이 많이 사라질 겁니다. 차라리 땅과 자원, 인구빨이라도 있는 듕궉과 달리 당장 돈안되는 일에 투자할 여력이 없으니까요. 통일이 될 경우, 독일의 예를 보자면 교육쪽의 경우 젊어서 재교육이 가능한 부류를 제외하곤 바로 실업자가 되어버렸습니다. 특히나 국가의 이념문제에 철저히 종사한 북한역사학자들의 설 곳이 없지요.(물론 극소수의 '꺼삐딴 리'는 살아남을 겁니다)
뭐, 한국에서 역사연구를 꿈꾸는 이들의 미래도 암울한 마당에 저쪽 걱정을 해줄 필요는 없지만 말입니다.(아주 냉혹히 이야기하자면 저들의 연구가 끊어지고 실업자가 되어야 여기 사람들이 일자리가 생깁니다.. 재수 없죠? 눼, 학문의 세계도 항문냄새나는 야생입니다)
말꼬리 -----------------
1. 단체로 월북한 것 같은 책들을 찾지 못하여, 결국 오늘 오후에 또 다시 사버렸다는 슬픈 이야기가.. T_T
2. 오늘 산 책(위)과 며칠 전에 산 책(아래). 북한역사학에 대해 관심을 가질 분들이 보시기에 권하는 바입니다. 그런데 시절이 하수상하니 버스나 지하철 안에서 읽고 있다간 어리고 연약한 몸, 어디 끌려가 두들겨 맞을지도 모른다는 걱정도 듭니다. 그냥 문장만 잘라서 보면 마치 빨간책 같거든요. 둘 다 나름 비판서인데 왜 자기검열 하지 않으면 안될 것 같은, 아니 공개된 장소에서 읽으면 경칠 것 같은 분위기. 뭐, 그래도 아오지에 끌려가진 않잖아! 우리가 똥맛 카레라면, 저긴 카레맛 똥이라는 게 약간은 위안이 되기도..(아아.. 우린 민주주의 공화정국가잖아!!)
3. 이번에 시도해보는 문단배열과 글자 크기는 어떠신가염?
오빠야~, 오늘 사진은 직찍인 거 알지?? ☆_☆
W4가 새로나온 소니 똑딱이를 사고픈 욕망을 죽여버렸습니다!!! 소빠의 최후가 이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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