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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GM-79의 삼국사기 이야기

김양 02 - 내친구의 집안은 어떠한가? 본문

삼국사기를 읽어보자!/신라이야기

김양 02 - 내친구의 집안은 어떠한가?

짐순 폰 데그레챠프 2014. 6. 24. 13:40

원문

金陽 字魏昕 太宗大王九世孫也 曾祖周元伊飡 祖宗基蘇判 考貞茹波珍飡 皆以世家爲將相 陽生而英傑


해석

김양의 자는 위흔으로 태종대왕의 9세손이었다. 증조부는 이찬 주원이고 조부는 잡찬 종기, 부는 파진찬 정여였다. 모두 대대로 명가로서 장상이 되었다. 양은 태어나면서 빼어나기 이를데 없었다.


역시 이 블로그에서 모자이크는 으리!!! 으리으리! 짐순으리!

먼저 인물에 대한 접근을 할 때, 특히나 역사적 접근을 할 때는 이른바 족보에 대한 접근을 해야 합니다. 어린왕자에 보면 이런 식으로 말하지요. 코끼리를 삼킨 보아구렁이를 모자로 보는 어른들은 자식들의 친구에 대해 그 집에 어떤 꽃이 피었는가를 묻지 않고 아빠는 뭐하시니, 집은 얼마나 좋냐, 돈은 얼마나 버느냐를 물어본다고요. 그런데 그걸 알아야 하는 분야도 있습니다. 바로 역사학이 그렇습니다.


김양의 집에 어떤 꽃을 피우고 살았는지 중요할 수 있습니다. 어떤 면에서는 그의 망딸리떼mentalité를 이해할 수 있을 수도 있거든요. 그러나 우리에게 주어진 것은 불과 몇 십 글자가 적힌 역사책 뿐이고 김양의 집터를 알 수 없는 바에야 그 곳의 흙을 파서 꽃가루 분석이라도 하지 않는 한, 피워낸 꽃을 알 수 없는 우리는 당연히 보아구렁이를 모자로 봐야 합니다.(물론 그 꽃가루가 담긴 흙이 그 시대의 것이라는 것부터 확인해야겠죠. 게다가 그게 김양의 다른 가족이 했는지도 모르고… 결론은 과학적으로 불가능하다는 타임머신뿐!!)


보통 이 시대의 역사는 원성왕계 왕족, 그 다음으로 장보고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뭐, 학위논문과 학술지 수록 논문이나 단행본도 많고, 종종 세미나도 열리는 주제지요. 그러나 또 한 편에서 활약한 김양의 일족에 대한 연구는 극히 적습니다. 김양과 그의 일족에 대한 것을 합쳐야(그나마 대규모 반란을 일으키는 김헌창을 제외하면) 다섯 편 정도 나옵니다.


그래도 김양의 열전에 대한 저 기록은 참 많은 것을 담아냅니다. 일단 확실하게 알 수 있는 것은 김양은 태종무열왕의 9세손이라는 것입니다. 왕족이죠? 그의 선조는 무열왕의 둘째 아들인 김인문이라는 설도 있고, 셋째 아들인 문왕이라는 설도 있습니다. 무열왕의 장자인 법민이 문무왕이 되고, 인문과 문왕 역시 당을 오가며 외교업무에 종사하였습니다. 법민의 후손은 아니지만 그래도 나중에 혜공왕을 죽이고 왕이 되는 선덕왕보다는 왕족의 ‘코어’에 가깝습니다. 선덕왕이 외손으로 피를 이어받았다면, 그래도 김양의 집안은 방계 중에선 무시할 수 없는 가계입니다. 


귀족사회가 발전할수록 가문이라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가문은 여러 계系의 가지로 갈라져 나갑니다. 점점 ‘코어’에서 멀어질수록 신분은 아래로 밀려나지요. 그런데 김양의 집안은 무열왕의 장자 계열이 계속 왕위를 이어가며 촌수를 벌려가는 와중에도 계속 높은 지위를 유지합니다. 가계의 격만큼이나 그 가계 구성원 내부의 피눈물나는 노력이 있었다는 것이죠. 결혼을 통해 신분의 질을 유지하고, 그 신분에 걸맞는 노력, 좋게 표현하자면 실무와 정무 둘 다 치열하게 수행했다는 것이죠.(겐지모노가따리는 이런 점을 이해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자료가 되기도 합니다)


일단 이 시대의 김양의 가족들을 김주원계라고 하니 가계의 중시조격인 김주원의 아버지 유정惟靖도 각간, 그러니까 신라의 17관등 중 1위인 이벌찬에 올랐습니다. 각간은 이벌찬의 별칭입니다. 김주원은 혜공왕 말년에 집사부의 책임자 시중직에 오릅니다. 이기백의 고전적인 논문 이래 주목을 받았는데 때로는 이 집사부라는 관청이 신라의 중앙부서를 총괄하는 것이라고 보기도 하지만 사실 그런 관계는 보이질 않지만 그래도 왕권과 결합된 매우 중요한 부서입니다. 이 부서의 책임자라면 왕과도 밀접한 관계, 그러니까 정치적 파트너, 아니 런닝메이트에 가까운 면을 보입니다. 다만 혜공왕 말년은 왕의 힘이 꺾이고 귀족들의 힘이 더 강했을 때니 반혜공왕 진영의 핵심인물로 보입니다. 780년 혜공왕이 죽고 무열왕계의 먼 방계인 선덕왕이 즉위할 적에 그는 왕위 계승권을 가진 인물의 하나로 부각되지요. 그러나 선덕왕이 785년에 후사를 남기지 않고 죽자 원성왕과 경쟁을 하였지만 결국 밀려나고 자신의 영지가 잇던 강릉으로 은퇴를 합니다. 지금 강릉 김씨의 시조되는 분이지요. 비록 왕위계승에는 실패했지만 강릉을 중심으로한 명주의 실권을 장악하니 이를 두고 김주원이 다음 세대의 주역이 된 호족의 시조라고 보는 이들도 많습니다.


오늘 글쓰기와 함께 경부선 KTX에서 한 짓. 참, 장여랑 정여랑 누가 형이지??


그런데 현대의 우리가 보기엔 그 다음 세대에 재미난 일이 벌어집니다. 아버지가 그렇게 밀려났는데 아들들은 또 중앙 정계 활동을 합니다. 승리자도 또 그것을 받아들여요. 뭐 요즘도 이런 일이 벌어지기도 합니다만.. 이때의 정치는 대놓고 반역을 저지르지 않는다면 굳이 죽이지도 않아요. 귀족사회라는 것의 인간관계는 정말 촘촘하게 얽혀있어 그런 죽임이 귀족사회 전체의 비극이 될 수도 있지요. 오늘 내가 죽인 놈의 장인이 내 오른 팔이고, 그 놈의 여동생이 시집간 집의 딸이 오늘 밤 내 옆에 누울 마누라고, 우리 아들놈의 스승의 동생이기도 하고… 아놔… 실제로 박통 때 학생운동을 거하게 하다 사형선고를 받기도 했던 모 정치가의 아버지가 박통 3남매중 하나의 고등학교 담임이어서 풀어줬다는 이야기가 있는데(스승의 날 대접한다고 불렀더니 우리 아들 사형수라 못갑니다…라고 했다나. 그 무시무시한 반인반신도 식은 땀을 흘렸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사실 일반적인 우리네 삶도 그렇게 티가 나게 떽떽거리는 말도 하기 참 어렵습니다. 짐순이도 언젠가 이상한 논문 쓴 분 디스를 하는데, ‘그 분 우리 집안 어르신임’ 하길래 당황한 적이 있어요. 그 분 논문 표절건에 대한 증거도 있어서 거짓말한 게 아니지만 말이어요.(하하 -_-;;) 


김주원의 아들 김종기는 3등인 잡찬(소판은 별칭입니다) 아버지처럼 집사부의 시중을 역임하고요. 종기의 동생인 헌창도 시중에 올랐다가 무진주(광주), 청주(진주), 웅주(공주)의 도독을 역임하다 신라 하대 최대규모의 반란을 일으키지요. 김헌창의 관계자 200명이 죽임을 당하는데 역사서는 그걸 요즘식으로 표현하자면 국물도 안남기고 다 족친다고 표현합니다. 그러면 그의 형인 종기나 조카들, 그리고 명주로 내려간 아버지와 일족들도 그 200명에 들어가는 게 정상일텐데 그들은 들어가지 않습니다. 종기가 죽었다는 기록이 없고, 종기의 아들인 장(여)와 정여도 둘 다 파진찬까지 올라가고 무사합니다. 조선시대와는 다르죠? 이런 시대의 특징은 가계가 조금만 달라져도 각자 행동하고 또 그것이 인정된다는 겁니다. 형은 반란을 일으켜도 동생은 진압편에 섭니다. 이걸 그전에는 어느 편에도 몰빵하지 않고 분산해서 생존을 도모한다고 이해해 왔는데 실제로는 각자도생의 의미가 더 강한 것 같습니다. 만약 그런 면이 없었다면 종기의 중앙정계 잔류도, 강릉 김씨가 지금까지 남아있는 사실을 설명할 수 없습니다.


종기의 아들인 장여, 그리고 우리의 주인공인 양의 아버지 정여도 약간 위축되고 했을 수도 있었지만 그들의 지위가 근본적으로 흔들리는 일은 없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의 집안이 ‘모두 대대로 명가로서 장상이 되었다’라고 할 수 있는 것이겠지요.


말꼬리 ----------------------

1.

맨날 자료 없음을 매크로처럼 자동반복하는 고대사분야라지만 신라 하대의 연구자들은 고조선 연구자들보다 더 적지 싶어요. 『고대사연구』만 봐도 그 시대 논문이 별로 안실려요.(그나마도 요즘 늘어난 편;;) 자꾸 옵하들이, ‘아가, 신라 하대로 전향하지 않겠니?’라고 꼬시는 건 짐순이의 모에함에 빠져서 그런 것은 아니라고 봐요.(삐져서 삼국시대만 공부할꼬얏!!!)

2.

무서운 한글!

위의 원문을 하나하나 입력하던 차에 성과 이름을 치고 한자키를 누르니 김장(여), 김정여까지 지원되네요. 김주원이야 좀 이름이 거론된다고 해도. 오래전에 고려사에 나오는 관직명이 거의 다 지원되는 걸 보고 한컴은 고려사만 사랑하냐고 툴툴거렸는데.. 그런데 6월 초에 문의한 프로그램 에러 문의 메일(그것도 보내라며!!!)은 왜 답이 없으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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