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 메뉴

RGM-79의 삼국사기 이야기

과연 김부식은 대대로 해먹었던 귀족이었을까나? 까나? 본문

삼국사기학 개론

과연 김부식은 대대로 해먹었던 귀족이었을까나? 까나?

짐순 폰 데그레챠프 2011. 9. 6. 23:53
과연 김부식이 신라왕족의식을 갖고 삼국사기를
일부러 신라 편향적으로 썼느냐에 대해선 많이들 그렇게 생각하십니다.
학계에서도 종종 그런 시각을 확인하게 되어 놀랍긴 한데
(그만큼 김부식이나 고려사회의 지적 풍토라던가
특히 귀족사회의 특질 그 자체에 대한 연구가 없다는 점에서 그렇단 겁니다)
슬슬 여기에 대해 이곳에서든 논문으로든 뭘 하나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는 중인데

마침 올해부터 사용되는 중학교 역사교과서를 보다가
재미있는 대목을 발견했습니다.

지학사판 중학교 역사(상) 133쪽


위의 글처럼 김부식은 대대로 귀족의 자리에 오른 신라왕족 출신으로 그려지고 있습니다.
물론 그가 출세한 것도, 신라왕족 출신이라는 점도 절대 틀린 얘기는 아닙니다.
그러나 그가 과연 신라왕족 출신이기 떄문에 아주 잘먹고 잘 살았던 귀족통뼈였을까요?

김부식의 가문이 과거에 급제도 하고 귀족답게 생활하는 건 겨우 그의 아버지,
김근의 세대에 들어선 것으로 '대대로'라로 말하기도 민망한 겁니다.
물론 연달아 과거급제자니 '대대로'라는 말도 틀리지 않소라고 반론을 제기하실 수도 있는데,
그럴 때는 보통 '대를 이어서'라고 합니다.
나라가 건국된 지 어언 200년, 광종의 피바다를 거치며 살아남은 귀족들의 세상에
겨우 2대 과거 급제로 뼈대있는 가'계'라고 주장하면
겨우 10년된 학교에서 우리학교는 전통있는 학교입니다..라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풀어서 얘기하면 개경의 '뉴비'입니다)

분명 그도 경주 김씨의 일문이라 명문가는 맞습니다만
당시 귀족사회는 가문도 중요하지만 그 내부의 가계도 중요합니다.
경순왕이 고려에 귀부하여 상당수가 개성으로 이동할 적에
김부식의 증조부 김위영은 경주의 향리 우두머리가 됩니다.
적어도 고려사를 잘 아시는 분이시라면 이 향리가 조선시대와는 다르다는 건 설명안해도 될껍니다.
지방에 남아 지방관의 일을 대신하기도 하고 나름 지방지배의 한 중추이기도 하고
과거 급제나 통혼을 통해 중앙으로 올라가는 귀족예비군의 성격도 가졌습니다만
결국 중요한 것은 그렇다 하더라도 중앙의 권력과 멀면 결국 밀려난다는 건 사실입니다.
경순왕의 다른 일족들이 현종조를 거치며 더 잘나가게 된 것과 달리
김부식의 가계는 상대적으로 미미한 처지에 놓입니다.
귀족사회에서 한두 다리만 떨어지면 곤두박질치는 것은 일상입니다.
그래서 결혼과 관직을 통한 신분 유지에 사활을 겁니다.

김부식의 집안은 아예 그것에 참여조차 안하다가
아버지 김근의 대에 이르러 과거급제를 하고 5품인 좌간의대부까지 올라갑니다.
김부식의 5형제 중에 부필, 부일, 부식, 부철이 과거에 급제하고
그 중 3명이 한림직에 올라가며 급속도로 성장을 하게 됩니다.
그들의 성장이 적어도 신라왕족이라는 후광에 의하지 않았음은 분명합니다.
김근은 송나라에 다녀올 만큼 재능을 안정받았고
부필은 장원 급제하고 나머지 아들들도 우수한 성적으로 합격합니다.
특히 김부식이야 말할 것도 없을 정도로 능력을 떨치지요.

이런 사람들이 얼마나 신라왕족의 마인드로 살았을까요?
개인적으로는 웃기는 얘기라고 생각합니다.
그냥 김근이 형제들 앉혀놓고
'느그들은 왕족의 후예니까 행동거지 반듯이 하여라'라고는 할 수 있겠지만
과연 나라가 망한지 200년 후에, 그것도 지금처럼 황실추대인지 뭐니 할 수 있는 시대도 아닌데
(지금은 노망난 늙은이들 장난으로 웃어넘기지만 그때는 반역입니다)
그야말로 지방에 웅크리고 살았던 사람들이
얼마나 그 의식에 철두철미하게 살아갈 수 있었을까요?
그들은 고려인이라는 의식이 강했을까요? 신라왕족이라는 의식이 강했을까요?
고작 그들이 왕족출신이고 잘나갔다는 현상만 놓고
그들은 대를 이어 신라왕족의식을 버리지 않고 역사서를 그리 쓸 정도였다고
아주 쉽게 단정을 내릴 수 있는 걸까요?

많은 분들이 간과하시는데 하도 상상력, 자유로움.. 이런 단어에 휘둘려
역사학은 아주 짜증이 나서 패죽이고 싶어질 정도로 엄밀한 면도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하는데
(물론 그게 지나치면 '너무너무 치우친' 훈고학이 됩니다)
제대로 검증 안해보고 떠드는 것은 인터넷 소설에 불과합니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사람은 그 업계에서 너무 상상력과 자유로움을 이용한다고 욕을 먹습니다)

과연 김부식은 대대로 해먹었던 귀족이었을까나? 까나?
까나리액젖같은 소리는 안했으면 좋겠습니다.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