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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GM-79의 삼국사기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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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고대사이야기/사건과 진실

위서의 역사학

짐순 폰 데그레챠프 2016. 6. 23. 18:57

위서僞書라는 단어는 말 그대로 가짜 책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사전적 의미는 단순합니다. 그러나 역사학에서 보는 위서는 사전만큼이나 명료하진 않습니다. 


왜 위서가 나오는 걸까요? 2016년에 짐순이가 그럴싸하게 책을 한 권 썼다고 합시다. 그런데 출판사에 원고를 보내며 말하기를 ‘이건 수백년 전의 위인인 안문호 선생의 글인데 이제 발견했다’고 말하는 겁니다. 세상에는 연방의 하얀 악마 안문호 선생의 저서가 나왔다고 좋아할 겁니다. 물론 2016년엔 갖가지 검토 수단이 있어 먼저 원고의 상태, 사용된 어휘, 구사된 문법 등을 따져 위작 여부를 파악하겠지만 과거에는 없습니다. 어지간한 경우 그냥 안문호 선생의 저작 목록에 들어갑니다. 


요즘같이 저작권이 중요한 시대에 이런 행동은 정신 나간 짓이지요. 그 책을 쓴 짐순이의 노고는 전혀 인정받지 못하고 저작권은 안문호 선생에게 돌아갈 겁니다.(당연한 이야기지만 사후 몇 년으로 저작권이 인정되지만 그건 무시합시다) 돈을 벌어도 안문호에게 갈 것이고 그 책이 희안하게 많이 읽혀서 베스트셀러가 된다한들 돌아오는 명성치도 안문호 선생의 것입니다. 그 짓을 한 짐순이는 남 좋은 일 시키는 겁니다. 과거 사람들은 왜 그런 짓을 했을까요?


과거에는 저작권도 출판사도 없었습니다. 그러니 어차피 책을 써도 돈 벌 일은 없습니다. 그러나 저자의 명성치는 있습니다. 만약 아 바오아 쿠에서 겪은 이야기를 책으로 써낼 때 연방의 하얀 굇수 안문호 선생과 일개 양산기인 짐순이의 책 중 누가 더 읽혀질까요? 출판사의 편집자는 어떤 선택을 할까요? 그래서 위서의 작가들은 나는 잊혀져도 내 책은 잊혀지지 않는다는 생각에 남의 이름을 붙이는 겁니다. 


얼핏보면 뻐꾸기랑 같지만 더 적절한 예가 있더군요. “겐지모노가따리”에서 히카루 겐지의 여인 중에 하나는 외동딸이었습니다. 나름 귀족이지만 서서히 가세가 기우는 와중에 그녀의 아버지는 유력자에게 시집을 보내려고 매우 노력하죠. “전통적인 사유를 가진” 한국인이라면 갸우뚱 할 겁니다. 아들도 없는데 집안을 일으키는 일이 뭔 소용이 있으랴. 그러나 그 아버지의 생각은 달랐죠. 아들이 없어서 가문의 대를 이을 수는 없어도 내 딸이 유력자의 아내가 되던가 궁궐에 들어가 후궁이라도 되면 내 피의 일부는 그대로 이어나간다. 어째 매우 현대적인 생각같습니다. 딸이던 아들이던 내 유전자의 분량은 일정하니까요. 적어도 초음파 검사로 딸이면 낙태하던 80~90년대 어른들보다는 더 현대적인 생각을 가졌습니다. 위서도 그러합니다. 어떻게 되던 내 책은 살아남는다.


요즘들어 인기가 많이 떨어졌지만 동아시아에서 가장 많이 읽힌 책일 “논어”를 예로 들어볼까요? 미국의 동양학자 크릴의 설은 흥미롭습니다. 논어의 전반부는 공자의 이야기, 그리고 뒤의 25%는 다른 이들의 생각이 묻어나고 나머지 25%는 창작이라고 했었죠. 이쪽을 연구하는 분들의 말에 의하면 한제국에서 유교가 국교화 되는 과정에서 법가와 도가의 일부가 자신들의 생각을 슬그머니 유가의 경전에 심어놓았다는 겁니다.(순간 애벌레에 알을 낳는 어떤 곤충들이 생각납니다) 사마천의 아버지 사마담의 제자백가 구분이후 우리들은 각각의 학파들이 매우 독립적으로 존재한 것처럼 착각하지만 병가와 법가에 발을 걸친 오기(오자)나 한비자같은 전국시대 말 법가의 중심인물들은 유가의 제자들입니다. 유가로 분류되는 순자도 어찌보면 법가의 색채가 더 강하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자연스레 섞일 가능성도 존재합니다.


책의 저술에 대한 입장이 상당히 단순화된 현대에 와서는 위서의 개념을 이해하기 어렵게 되었습니다. 전문적인 교육을 받거나 거기에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어느 정도 감을 잡게 된달까요. 그래서 위서를 구분하는 것보다 위서라는 것의 개념을 이해하기가 어려운 시대입니다. 그 바탕에 깔린 사유가 아주 달라졌거든요. 그렇다고 일제 강점기, 혹은 1970년대 쓰여졌을지 모를 어떤 위서를 피하자고 중학생 혹은 고등학생의 학습부담을 더 늘릴 수는 없겠지요. 시베리아라는 단어가 존재하기도 전에 사백력이라는 한자가 있었다고 주장하거나, 문화와 경제라는 단어의 현대의 의미와 전근대의 의미가 전혀 다른데 그걸 같다라고 주장하는 것을 넘어 이걸 믿지 않으면 척결대상이라는 인간들이 권력을 잡겠다고 날뛰는 세상에 이런 이야기 해봐야 누가 들어줄란지 오늘의 짐순이는 참으로 할 말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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