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GM-79의 삼국사기 이야기
나의 부식옵하가 정전제를 말했을리 없어!! 본문
페친 분의 글을 보다 한백겸韓百謙의 구암유고久庵遺槁이 학위논문으로 역주되었다는 것을 알고 냉큼 받아서 보았습니다. 한백겸의 책은 구암유고나 동국지리지가 영인된 것이 전부라 글이 짧은 여아는 글을 읽기 어려웠거든요.
사실 이쪽 전공이라면 동국지리지도 중요했지만 평양성의 도시구획과 기자의 정전제의 관련도 중요해서 구암유고도 꼭 봐야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첫장부터 이상한 대목을 발견하고는 의문을 가지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역주자 해설에 김부식이 삼국사기에서 정전제를 최초로 언급했다는 대목입니다.
이 17번 각주에 인용된 원문은 삼국사기 어느 부분에 있는지 적혀있자 않았습니다. 그렇게 사대주의자라고 욕을 처묵다 못해 목까지 차올라 뚱뚱 불은 부식옵하라면 안적었을 리 없는데 삼국 이전 고조선과 관련된 언급은 고구려본기 동천왕 21년조에 "平壤者, 本仙人王儉之宅也. 或云, 王之都王險."이란 대목 밖에 없거든요. 그래서 제목도 삼국사기인데 삼국 이전 얘기 하나 없다고 욕을 먹는 거고.
이상해서 검색해보니 서거정의 필원잡기筆苑雜記에 있는 대목입니다. 민추에 올려진 해당 원문과 번역문을 인용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我國自箕子受周封。興八條之敎。行井田法。當其時。豈無史官。而載籍不傳。新羅高句麗百濟。三國鼎峙。亦無史可傳。金富軾作三國史。掇拾通鑑三國誌南北史隋唐書爲傳記表志。已非傳信之書。至於記事。每引所出之書。尤非作史之體。又如侵伐會盟等事。以一事而疊書於三國紀。文不稍變。亦不足取。
우리나라는 기자箕子가 주周의 봉封함을 받음으로부터 8조條의 교화를 일으키고 정전법井田法을 행하였다. 당시에 어찌 사관史官이 없었으리오마는 서적에 전하지 않으며, 신라ㆍ고구려ㆍ백제 세 나라가 서로 솥발같이 대치했던 것도 역시 역사에 전하는 것이 없다. 김부식金富軾이 《삼국사기三國史記》를 지을 때에 《통감通鑑》ㆍ《삼국지三國誌》ㆍ《남북사南北史》ㆍ《수당서隨唐書》에서 주워 모아 전傳ㆍ기記ㆍ표表ㆍ지志를 만들었으나, 이미 믿을 만한 글이 되지 못하며 사건을 기록하는 데 이르러서도 매양 이미 나온 서적을 인용하였으니, 더욱 역사를 저작하는 체제가 아니며, 또 침벌侵伐ㆍ회맹會盟 같은 사실도 한 가지 일을 세 나라의 역사에 거듭 썼고 글도 조금도 변하지 않았으니 역시 족히 취할 것이 못 된다.
글을 올리신 분은 我國自箕子受周封。興八條之敎。行井田法. 이 첫문장이 삼국사기에 실렸다고 하였지만, 사실은 뒷문장에 부식옵하가 말했다고 한 것이 아니라 안했다고 디스한 것이었습이다. 역시 우리 옵하는 성질이 드러워서 글치 기전제 논의에 가담하지 않았다능.
처음엔 삼국사기에 이런 문장이 있었나를 찾다가, 조선조 초기의 역사인식에 대한 자료를 하나 찾았습니다. 위 문장 다음엔 고려조의 역사서술에 대한 설이 따라붙습니다. 동국통감, 삼국사절요만 보렸더니 앍어야 할 게 늘었군요.(아놔!)
결론 ---------------------
1. 아무리 잘났어도 우리 부식옵하 깠으니까 사가정, 너님은 #$^#%^#$^$. 콩하고 부식옵하는 까지마! 까도 잠순이가 까.(김부식 : 네 냔이 뭔데!!!)
2. 서거정만 이카는 거 아이다카이.. https://rgm-79.tistory.com/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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