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GM-79의 삼국사기 이야기
고려도경에 실린 김부식 소개 본문
동접반 통봉대부 상서예부시랑 상호군 사자금어대 김부식[同接伴 通奉大夫 尙書禮部侍郞 上護軍 賜紫金魚袋 金富軾]
김씨는 대대로 고려의 문벌가문[大族]으로 전대의 역사[前史]에 이미 실려 있었다. 박씨朴氏와 더불어 가문의 명망[族望]이 서로 대등하였다. 그러므로 그 자손들 가운데 글을 잘 하고 학문에 정진[文學] 함으로써 등용된 사람이 많다. 김부식은 얼굴이 크고 장대한 체구에 얼굴은 검고 눈이 튀어 나왔다. 그런데 두루 통달하고 기억력도 탁월하여 글을 잘 짓고 역사를 잘 알아 학사學士들에게 신망을 얻는 데에는 그보다 앞선 사람이 없었다. 그의 아우 김부철[富轍] 또한 시詩를 잘한다는 명성이 있다. 일찍이 그들 형제의 이름지은 뜻을 넌지시 물어 보았는데, 대개 〈소식蘇軾과 소철蘇轍을〉 사모하였기 때문이라고 한다. ‘김부식金富軾’과 ‘김부철金富轍’ 형제의 작명에는 송대의 문장가인 ‘소식蘇軾(소동파蘇東坡)’과 ‘소철蘇轍’ 형제의 이름을 빌려왔다고 전한다.
- 고려도경 권8 인물
부식옵하의 표준영정
위의 그림은 1993년에 그려진 김부식의 표준영정입니다. 이것을 만드는데 가장 중요한 자료는 선화봉사고려도경, 흔히 고려도경이라 불리는 견문서입니다. 이 책은 1123년 고려를 방문한 송나라 사신단의 일원이었던 서긍이 귀국 후 1124년에 자신이 본 것을 글과 그림으로 정리한 것인데 현재는 글부분만 남아있습니다.
고려의 산천이나 제도에 대해 상세한 기록을 남겼는데, 서긍이 만난 인원도 상당합니다. 대개는 아름만 언급되는데, 그 중에서 이자겸, 윤언식(윤관의 아들이자 윤언이의 형제), 김안규, 이지미와 함께 김부식에 대해 별도의 서술을 하고 있습니다. 서긍이 보기엔 이 다섯 명이 특히 주목해야할 사람으로 본 것 같습니다.
첫 부분에 김씨가 대대로 명문가였다는 서술을 하고 있는데, 이것이 김부식 가문의 정치적 지위에 대해 오해를 낳는데 얼마나 기여를 했는지는 찬찬히 살펴야할 문제입니다. 실제 김부식 가계는 고려 건국 초부터 현달한 다른 경주김씨들과는 달리 경주에 머물렀다가 그의 아버지인 김근이 과거 급제하며 중앙정계로 진출한데다 일찍 죽어 아들들의 현달에는 실질적으로 기여한 부분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 외국인이 이런 사정에 대해 잘 알 수 없을테니 이것을 근거로 삼국사기 성격까지 재단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태도입니다. 아무리 당대기록이라도 말이지요.
말꼬리 ----------------------
1. 위 글의 출처는 국편 한국사DB의 고려도경 번역입니다. 바로가기
2. 위 영정의 출처는 한중연입니다.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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