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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GM-79의 삼국사기 이야기

왕은 고독하다.. 본문

한국고대사이야기/고대사 잡설

왕은 고독하다..

짐순 폰 데그레챠프 2012. 7. 21. 23:38

수업 중에 세종대왕이나 한글을 이야기할 때

드라마를 보지 않았음에도 세종은 한석규였고, 한글은 한석규와 신세경이 만든 글자라고 이야기 한다.

그럼 사람들이 솔깃하게 듣는다.

내가 아는 어느 영어강사는 맨날 황신혜를 입에 달고 살았는데

그 분의 윗 세대는 김추자 이야기를 많이했다나.

나름 학원강사들 사이에 전해 내려오는 수강생의 집중을 유도하는 흔한 기법이기도 하다.

(정말 야구 외엔 TV를 보지 않는 RGM-79가 강의할 때 이런 건 잘써먹는다.

그나마도 캔커피 30잔을 '쳐드신다'는 미친 감독이 미친 트레이드 한 후론 아예 안보니 

이젠 정말 TV 안보는 거다. 그러나 인터넷에 워낙 많은 글들이 올라오니까 잠깐 훓어봐도 그럭저럭)


출처는 인터넷 어딘가에서..


그런데 딱 세 장면만은 다운받아 보았는데

바로 한석규가 '지랄'이란 욕설을 참 구수하게 내놓는 장면하고, 경연장면,

그리고 마지막 화의 독백 부분이다.

특히나 '가보지 않았다. 울지 않았다. 다만 계속 나의 일을 했다'는 대목은 뭐 할 말이 없게 만들더라.

이따금 누가 추출해서 올린 음원을 듣는다.


오늘도 수업시간에 왕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신라 하대의 그 지랄맞은 왕위계승전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

왕의 자리는 그렇게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했다.


구중 궁궐은 하나의 감옥이며, 왕은 그의 백성들의 삶조차 이해할 수 없었다.

세종이나 옹정제처럼 과로하는 일벌레들이 아니면 올라오는 보고로만 파악해야 했다.

관료조직은 정교하게 움직이기는 하나 지나치게 처벌이 두려워 가리는 게 많았고

그나마도 고대에는 그렇게 체계적이지도 못했다.

(물론 기록상으로는 마치 기계처럼 정교하다. 서류상으로 말이다. 

그걸 관료제라고 부르면 정형돈이 권상우 몸매고 원균이 수군 명장이다)

왕의 자리를 노리는 자는 언제나 있었으나 몸바쳐 지켜줄 자는 의외로 적었으며

때론 피붙이가 가장 위험했다.

어떨 때는 왕은 그저 자리에만 잘 앉아만 있어줘도 세상은 톱니바퀴처럼 잘만 돌아가고

다른 시절에는 아무리 막아도 제방의 구멍은 메워지질 않는다.

화장실에 갈 때나, 홀로 잠에 들 때나, 예쁜 후궁의 손을 잡고 사랑을 속삭이는 밤에도

다른 사람들의 눈을 피할 수는 없었다. 옷만 입었지 벌거벗은 임금님의 일상이다.


바람의 나라 2권중에서 어디까지나 인용목적으로 올림. 가장 좋아한 대목. 이 무휼의 대사 이후 눈이 너무 싫어졌다. 안그래도 강원도는 눈이 많아 싫은데..


사실 왕과 귀족들과 그들의 정치조직을 연구하는데 가장 큰 영향을 준 건

김진의 바람의 나라였다.

순정역사극을 보며 그 가득한 소녀적 감상 속에 가려진 이야기가 큰 충격이었달까.

댕기네 책들에서 나온 초판 7권 서문에 인용된 

이집트 파라오 아메하트 1세가 아들 세누세르트 1세에게 남긴 말이 깊게 각인되었다.

너희는 모든 가신 전부를 조심하라

혼자서 그들 가까이 가지마라.

형제에게 마음을 허락하지 마라.

친구를 만들지 마라.

그들과 친해지면 한정이 없다.

잠잘 때도 자기 스스로가 심장을 지켜라.

재앙이 있는 날에는 자기 편은 없다고 생각해라.

이걸 읽기 전에 그렇게 좋아하던 춘추전국시대에도 사람을 믿어야 한다는 이야기는 있었지만

실제론 그러지 않은 예가 더 많았다.

백호 임제가 자기가 태어났으면 돌림 천자라도 했을 것이라던 위진남북조로 가면

막장도 이런 막장도 없었다.

오죽하면 목졸려 죽는 어린 황제의 유언이 다시는 황실에 태어나지 않겠다였던가.

자기도 형과 함께 조카 애장왕을 죽여놓고 자손들을 화합하기 바랬던

신라 흥덕왕의 사후에 그야말로 원성왕계 모두, 자기 손에 피를 묻히지 않았던가.

요즘 세게사 교재를 만들다가 메소포타미아의 정치사를 보노라니

문명의 발상지란 찬사의 뒤에는 앞서 언급한 모든 시대를 황금의 낙원으로 보이게 할만큼

참혹하고도 참혹하다 못해 왕의 목숨은 파리만도 못하더라.

저 만화에서야 순정코드로 포장을 했지만 속을 까보면

냉혹한 정치사극이기도 했다.


구중궁궐이 있고, 비단옷을 입으며, 아리따운 궁녀들(이말은 특히 조선의 왕들은 억울해할테다),

그리고 산해진미들로 가득찬 식단.

이 정도면 부러울듯한데 그러지 못한 것은 내 삐딱한 심정이 아니라

서류에 도장찍는 기계로, 싸앗을 뿌리기 위한 종마로 살아가는,

그러고도 자기 맘대로 할 수 있는 것은 의외로 없었던 삼국시대나 고려시대나 

특히, 학원에 피빨리는 학생들 못지 않은 일정을 수행한 조선의 왕들의 일생을 이해하기 때문이다.

(특히나 조선의 왕들 중 이 시스템에 저항한 건 연산군 정도밖에 없다. 

세도정치기나 개화기는 논외로 하고라도)

이래저래 왕들은 외롭고도 힘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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