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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GM-79의 삼국사기 이야기

온달과 온군해가 같은 집안, 아니 온씨가 있는지부터.. 본문

한국고대사이야기/고대사 잡설

온달과 온군해가 같은 집안, 아니 온씨가 있는지부터..

짐순 폰 데그레챠프 2012. 11. 10. 01:19

"온달과 온군해는 중앙아시아에서 왔다"


지배선 선생님이라면 모용씨의 연만 가지고 평생을 파신 분입니다.

특히 국내에 몇 분 되지 않던 위진남북조시대 전공자시기도 합니다.

(요즘은 좀 늘어난 것 같군요)

이분의 연구는 4~5세기 고구려사를 연구하는데 필수적인 것이기도 합니다.

아무래도 미천왕대부터 장수왕대까지 전연~북연까지 이르는 

이 국가군國家群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나중에는 고선지에 대한 연구성과도 남겨주셨지요.

특히 이 분야에 대한 책은 거의 없던 상황에서 매우 귀한 가치를 갖습니다.

(당장 떠오르는 다른 자료래야 룩 콴텐의 유목민족제국사-민음사, 대우학술총서-에서 약간,

수잔 휫필드의 실크로드 이야기-이산, 2001- 정도?)

다만 '유럽문명의 아버지, 고선지'란 괴랄한 결론의 책도 있습니다만

(탈라스에서 이슬람세력에게 제지문화를 평화롭게 전수한 게 아니지 말입니다.;;;)


오늘 이것저것 찾아보다가 괴랄한 기사가 있어서 

이걸 이야기 해야하나 말아야 하나 좀 고민을 했습니다.

요즘은 연락을 못드리지만 지인 중 한 분은 이 선생님을 매우 존경하더군요.

저도 장수왕 이후에만 관심을 두기 때문에(실은 고고학과 땅따먹기대왕릉비 공부가 싫어요!!!)

이 분 글을 많이는 읽지 못했지만 그래도 재미있게 읽긴 했기에

이 분의 연구성과를 소중하게 생각합니다.

이래저래, 소심함까지 겹쳐 이걸 어떻게 생각해야 하나 참 고민했어요.


온이라는 표기는 한자식 표깁니다.

저 기사에 나오는 소그디니아의 온씨나 만약 인정할 경우 한반도의 온씨는 

정말 같은 집안이라기 보다는 각기 다른 곳에서 쓰던 명칭을 한자로 전사한 것입니다.

적어도 우리의 삼국시대에 해당하는 시기의 한자음은 

지금 우리가 쓰는 한자음과 비슷하니 음가는 거의 유사하겠지만요.

소그드어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우리는 며느리도 모릅니다.

저는 오히려 소그드인과의 교류에 대해서는 더 적극적으로 봅니다만

이런 접근이 오히려 그런 연구경향에 찬물을 끼얹는다고 봅니다.


음가가 비슷하다고 표기가 유사하다고

같은 것은 아닐까라고 생각하는 건 두계 이병도 시절에 다 한 겁니다.

더 거슬러 올라가지면 만선사학 시절에 했던 지명비정 연구에서나 쓰던 방법입니다.

그래도 이건 거의 같은 땅이고 동일한 문화권이라 계승관계도 있고

아주 괴랄할만큼 틀리기만 한 건 아닙니다.

물론 원어와 한자의 전환과정에서 일어나는 왜곡을 감안 안했다는 한계가 있지만

의외로 데이터가 쌓이니 나름 정확도도 보여준달까..

뭐 그동안 고고학만큼이나 고대 언어연구도 미약하게나마 발전했으니까요.

위의 평가도 그나마 긍정적으로 봐준 거지만 현실은.. .

백제의 지명을 전문적으로 연구하신 도수희 선생님 이후론 다 끊긴 방법론입니다.


그런데 고대사야 어디나 다 사료부족이라 빈 부분 메우는 데 도가 텄다지만

그나마 은영전으로 쳐서 양 웬리가 순양함 타고 나서고 다음 편 사라지고

그 다음편에 라인하르트도 꽥소리 내고 이젤론 사람들 다 울어대니까

아마 중간에 양 웬리에게 뭔 일이 생겼구나라고 추정내리는 거지

이거 이젤론 먹은 다음 바로 라인하르트 황제가 죽는 대목만 나왔을 때

양 웬리가 이젤론 먹으니 어느새 찬탈한 금발의 애송이 홧김에 죽었다는 해석내는 거죠.

(그런데 아텐보로랑 율리안은 왜 거기 있고, 19세가 가장 좋아하는 금은요동은 어디 간거냐???)


지금도 온달을 시조로 삼는 봉성 온씨가 있기는 합니다.

뭐, 온달이 죽은 후 멸망 직전에 당군에게 털리긴 하지만 온사문이라는 장군도 나옵니다.

그래서 더 온씨 설이 나올 여지는 있다고 봅니다. 그게 옭고 그르냐를 떠나서요.

먼저 소그드인을 이야기하기에 앞서 온달의 온이 성씨인가부터 해결해야 한다고 봅니다.

당나라 이후 사람을 희극적으로 표현하는 수사로 그가 다문화가정이었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비약과 역사적 상상은 전혀 다릅니다.

하나의 단서로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비약과 달리

하나의 단어를 가지고 순간 여러가지 가능성을 모색하는 연구에서의 상상은

전혀 달라요.

별거 아닌 거 같아도 전문가와 비전문가의 차이가 그겁니다.


사실 지난해에 발표되었다는 국내 논문을 읽지 않은 상태에서

이런 말을 하는 건 좀 위험하지만 대체 온군해는 어떻게 연결된다는 걸까?

제 머리 속에 있는 자료로는 전혀 연결고리가 그려지지 않네요.


차라리 80년대 그렇게 욕을 먹은 

삼불 김원룡의 을지문덕과 당나라 장수 위지경덕 종씨설은 나름 단점이 있었지만

나름 구도는 좋았다고 생각되는데 이건 대책이 없습니다.


말꼬리 :

이런 흠좀무한 기사도 있긴 합니다.

원자바오 조상은 경주김씨의 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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