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GM-79의 삼국사기 이야기
고구려사의 간단한 정리 5 – 고구려, 대지에 서다! 본문
뭔가 ‘간다무’스런 제목이긴 합니다만
한 국가의 건설을 이처럼 잘 납득할 수 있는 제목은 또 없습니다.
자매품으로 ‘로마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도 있는데
이 두 말을 한 데 모으면 하나의 고대국가가 성장하는 국면을 그대로 보여주기도 합니다.
고대국가의 형성과정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정도를 넘어서 무식한 수준에 있느니만큼
할 수 있는 말은 많지 않습니다.
필요하시다면 고대사를 다룬 개설서들을 읽어주세요.
제 고대국가 형성에 대한 이해도란 것이 아래의 기념비적인 그림 이상 넘어가진 않습니다.
이희준, 「삼한 소국 형성과정에 대한 고고학적 접근의 틀」, 『한국고고학보』 43, 2000, p.130
앞에서 고구려사의 기원이 한참 위로 올라갈 수 있다고 말했지만
우선은 삼국사기의 기년에 따라 고구려의 건국과정을 이야기해보기로 하지요.
이 기록에 따르면 기원전 37년에 부여에서 탈출한 주몽이 졸본지역으로 내려와
고구려라는 나라를 세웠다고 합니다.
거기에는 하늘의 후손인 주몽이 신이한 능력으로 말미암아
부여왕자들의 미움을 받고 목숨의 위험을 느껴 탈출한 후 나라를 세웠다는 신화로 채색되어 있지요.
이 기록은 국내 기록뿐만 아니라 위서魏書와 같은 중국기록에도 나옵니다.
당 초반부의 자료를 모아서 만든 한원翰苑에도 이러한 이야기가 실려 있습니다.
적어도 외국 사람들이 보기에도 그러한 이야기가 고구려에서 믿어지고 있던 것이죠.
잠시 한원 고려조에 실린 건국신화 부분을 인용해봅니다.
위수의 『위서』에 고구려는 부여에서 비롯되었으며, 스스로 말하기를 선조의 이름은 주몽이라 하고, 어미는 하백의 딸이라 하였다. 부여왕이 (주몽의 어미를) 방 안에 가두었는데, 햇빛이 비추는 바 몸을 이끌고 피했더니
햇빛이 또 (그녀를) 따랐다. 이후에 태기가 있어 알을 낳으니 닷 되들이 크기였다. 夫餘王은 알을 버려 개에게 먹이려 하였으나 개는 먹지 않았다. (왕은 또) 알을 버려 돼지에게 먹이려 하였으나 돼지 또한 먹지 않았다. (왕은 다시) 길에 알을 내버렸으나 소와 말이 그것을 피하였다. (왕은) 또 알을 들판에 버렸으나 새들이 깃털로 그것을 덮었다. 부여왕은 알을 쪼개려 하였으나 능히 깨뜨릴 수 없었다. 결국 (알을) 어미에게 돌려주었다. 그 어미는 물건으로 알을 싸서 따뜻한 곳에 두었다. 사내 아이가 있어 껍질을 깨고 나왔다. 그가 자람에 이름을 주몽이라 하였다. 그 고유한 말에 주몽은 활을 잘 쏜다는 뜻이다. 부여국 사람들이 주몽은 사람의 소생이 아니므로 장차 다른 뜻을 품을까 생각하여, 죽이기를 청하였다. 왕은 듣지 않고 주몽에게 말을 기르게 하였다. 주몽은 사사로이 살펴보아 (말의) 좋고 나쁨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날랜 것은 조금 먹여 마르게 하였고, 둔한 것은 잘 먹여 살찌웠다. 부여왕이 살찐 것은 자기가 타고, 마른 것은 주몽에게 주었다. 후에 사냥을 나갔을 적에 주몽은 활을 잘 쏘므로 화살을 한 개로 제한하였다. 주몽은 단 한 개의 화살로 짐승을 죽인 것이 많았다. 부여의 신하들이 또 죽일 것을 모의하였다. 어미가 몰래 알아 주몽에게 알렸다. (주)몽과 오인・오위 등 두 사람이 부여를 나와 동남쪽으로 도주하였다. 중도에 큰 강을 만났는데, 건너고자 하였으나 다리가 없었다. 부여인들이 추격하는 것이 매우 급하였다. 주몽이 강에 고하여 말하기를 ‘나는 해의 아들이요 하백의 외손이다. 오늘 몸을 피하는데, 추격병이 다가왔으니 어찌해야 (강을) 건널 수 있겠는가?’라고 하였다. 이에 물고기와 자라가 같이 떠올라 다리를 이루었다. 주몽이 (다리를) 건너자 물고기와 자라가 이에 흩어져 추격병이 건너지 못하였다. 주몽이 술수에 이르러 세 사람을 만났는데, 한 사람은 마의를, 한 사람은 세의를, 한 사람은 수조의를 입고 있었다. (이들이) 주몽과 더불어 홀승골성에 이르러 마침내 거처하였다. 국호를 고구려라 하고 그 이름으로 (성)씨를 삼았다.
- 직접 하긴 했는데 부실한 번역임을 밝힙니다..
그리고 이번엔 삼국사기의 고구려 건국신화부분입니다.
다만 분량 관계로 링크를 걸어둡니다.
이 신화의 앞부분은 어찌보면 전형적인 영웅신화입니다.
고난에 빠진 한 인물이 그것을 딛고 일어나 새로운 집단을 만들어낸다.
어찌보면 닳고 닳은 진부한 이야기입니다만
이와 유사한 것이 부여 건국 자체를 다룬 신화에도 나옵니다.
동명이라는 사람이 고리국이라는 곳에서 나와 고난을 겪고 부여국을 세운다는 것이죠.
이 것을 주몽이 다시 자기의 것으로 이용합니다.
그래서 일부에서는 이것을 부여족 공통의 신화구조이고
주몽이 동명이란 이름을 내세운 것은 또 하나의 동명,
자신이 동명의 화신임을 강조하려는 목적이 있었다고 보기도 합니다.(저는 동의하는 편입니다)
그러나 후반부에 나타나는 동행인 오이, 마리, 협보,
도중에 만나는 재사, 무골, 묵거의 존재는 어떻게 고구려국의 중추부가 만들어지는지를,
비류국의 송양왕이나 졸본부여의 왕은 누구와 연합하였는지를 보여줍니다.
이런 건국신화에 대해서 간단히 이야기 하자면
당시 사람들은 지금보다는 더 신비주의적인 경향을 띱니다.
가끔 자신들의 상식으로 이해할 수 없을 때,
그것은 신이한 일이 되고 숭배, 또는 경배의 대상으로 자리 잡습니다.
새로운 도구를 창안해낸다거나 새로운 집단을 구성하는 사람은
그야말로 신의 환생이거나 모종의 일로 그 능력을 분양받은 사람으로 여겨집니다.
또 지배자의 입장에서도 신의 이름을 비는 것이 통치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방법이기도 하고요.
그리고 각각의 신화를 가지고 있는 집단이 융합을 할 때
신화를 재편집함으로써 그 과정에서 오는 진통을 줄이려 합니다.
이를테면 사로국의 6촌장이 각자 하늘에서 내려온 사람이라는 것을 밝히는 기록도 있고,
또 백제 초기의 비류와 온조가 형제라는 것은
나중에 이 두 집단을 합칠 때 만들어진 것으로 보는 견해도 있습니다.
아예 이런 신화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융합되는지를 보려면 일본서기日本書紀를 보면 됩니다.
즉 다시 말해서 주몽이 고구려를 세우는 과정의 앞 부분은
건국자의 신이함과 영웅이 필연적으로 겪어야 하는 고난을 보여주고
그 능력이 범상치 않음을 역설합니다.
그리고 탈출과정에서 만나는 사람들에 대한 뒷 이야기는
고구려의 건국에서 일어난 다양한 일들을 간략하게 압축합니다.
그 역사적 전개를 바라본 사람들의 이해도에 맞게 재편집 된 것이죠.
자, 건담은 대지에 섰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나아갈지는 다음주에도 하나씩 짚어나가도록 하지요.
지금 이 연못 아래 스페이스 간담 브이가 있다가 위급시 출격한다는 것인가!!!
오녀산성 자체가 높이 우뚝 선 것은 거대한 로봇을 감추기 위한 것이었군요. 고구려 건국 자체가 이데의 의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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