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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GM-79의 삼국사기 이야기

번외 04 - 인간은 지고하고도 지고하도다.. 본문

역사이야기/세계사 뒷담화

번외 04 - 인간은 지고하고도 지고하도다..

짐순 폰 데그레챠프 2012. 12. 20. 14:30


신은 창조의 마지막 날에 인간을 창조하셨다. 인간이 우주의 법칙을 인식하고 그 아름다움을 사랑하고 그 위대함에 경탄하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그는 인간을 그 어떤 확고한 자리에도, 그 어떤 정해진 행동에도, 그 어떤 필연성과도 맺어놓지 않고 그에게 움직일 권한과 자유로운 의지를 주셨다. 창조주는 아담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는 세계 한가운데 너를 세웠다. 네가 더욱 쉽게 사방을 둘러보고, 그 안에 있는 모든 것들을 보도록 하기 위해서다. 나는 너를 천상의 존재도 지상의 존재도 아닌 것으로, 죽는 존재도 죽지 않는 존재도 아닌 것으로 만들었다. 네가 너 자신을 만들어가는 존재가 되고 스스로 극복하는 존재가 되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너는 짐승으로 떨어질 수도 신과 비슷한 존재로 다시 태어날 수도 있다. 짐승은 어미의 몸에서 나올 때 제가 가져야 할 모든 것을 가지고 나온다. 더 높은 정신은 태어나면서부터, 아니면 태어나 얼마 지나지 않아서부터 영원 속에 머물게 될 그런 존재가 된다. 너만이 자유 의사에 따라 발전과 성장을 할 수 있으며, 온갖 종류의 삶의 씨앗을 네 안에 가지고 있다."


- 피코 델라 미란돌라Giovanni Pico della Mirandola(1463~1494)



며칠 전에 7번째 수업이 폐강을 맞았지요. 

(그날 웃으며 병약미소녀는 쟈브로의 하이마트로 달려가 넥7을 샀습니다)

그날 원래 했어야할 주제는 르네상스와 진경시대였습니다.

수업을 위해 미리 준비했던 유인물들은 그 이후 어느 날 휴지통으로 들어갑니다.

바로 위의 인용문이 그날 분해된 유인물에 적힌 내용입니다.


피코 델라 미란돌라는 세계사 수업에서 그렇게 나올 일이 없는 인물입니다.

르네상스에 대해 다루는 좀 두꺼운 책에서나 짧게 언급될 사람이지요.

피코씨는 미란돌라라는 작은 영주가문의 둘째로 태어납니다.

당시 중세 어느 곳이나 귀족집 둘째 이하의 사내와 딸내미들은 애물단지였습니다.

그때 상속은 장자에게 집중되어 그 이하에겐 갈 것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한 놈은 용병단으로 가고, 한 놈은 성직자가 되는 것이 일반적이었습니다.

장자 외엔 너희들이 알아서 먹고 살아라.(십자군운동 활성화의 원인이기도 했죠)

딸내미들은 딸내미대로 지참금의 부담이 커서

아주 잘나가는 대귀족들은 결혼으로 국경선이 바뀌지만

보잘 것 없는 집들은 수녀원으로 보냅니다.

(그래서 수녀원 지하 하수도에 신생아의 뼈가 쌓여있다는 당시 괴담도 있었지요)


하여간 그런 시대에 우리의 피짱은 피렌체로 갑니다.(미소녀였음 ~땅이라고 할텐데)

르네상스 초기는 글의 시대라 영주, 성직자, 대상인들의 비서가 되는 길도 있었지요.

하여간 머리만을 가졌던 피짱은 머리로 출세하고 또 유명인사가 됩니다.

그때는 피렌체의 가장 영광스러운 시기였던

로렌초 데 메디치, 위대한 로렌초Lorenzo Il Magnifico가 군림하던 시댑니다.

로렌초는 신플라톤주의에 빠져 아테네 학당을 모방한 연구집단을 만듭니다.

(19세의 짧은 머리라 플라톤이 뭐했는지 조차 이해못하는데 

신플라톤주의를 설명하라 요구하는 것은 아동학대에 준하는 폭거입니다)

우리의 피짱은 거기서도 촉망받는 존재가 됩니다.


그러나 달도 차면 기우듯이 로렌초의 화려한 시대는 가고

강대국간의 다툼에 휘말리며 사보나롤라(1452 ~ 1498)의 집권기가 옵니다.

소녀여 현실을 즐겨라 꽃피는 봄날은 오래가지 않으리

로렌초의 자작 노래처럼 역사는 그렇게 돌아가는 거지요.

마키아벨리가 말한 무장하지 않은 예언가는 피렌체 전 인구보다 더 많은

프랑스의 샤를 8세가 이끄는 10만의 대군을 끌어들이기도 하는 충격을 맛봅니다.

(이제 질-?-로 승부하던 중세의 시대는 저물고 양이 중요해지는 시대의 개막입니다)

그때의 피짱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로렌초의 귀염을 받던 피짱은 열렬한 사보나롤라의 지지자가 됩니다.

로렌초의 관념론+현실적 정치랑 사보나롤라의 신정정치는 공존할 수 없는데

그는 사보나롤라에 감화된 겁니다.

그저 문장에 기반한 사람의 한계랄까.. .

플라톤 아카데미의 에이스가 걸어간 길이 이해가 안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현실에 기반하지 않은 관념론이 가혹한 현실과 마주했을 때

달리 갈 곳이 없는 것이기도 합니다.

저 글은 플라톤 아카데미에 몸담고 있던 시절에 한 인간선언입니다.

인간의 존엄성을 강조한 이 르네상스의 최고 명문은 곧바로 잊혀졌다가

부르크하르트에 의해 재조명을 받습니다.

글은 정말 아름답습니다. 

그러나 덧없기도 합니다.


가끔 사람들이 붓은(또는 펜은) 칼보다 강하다고 합니다.

그것은 칼이 용인하는 정도에서라는 전제가 붙어야 합니다.

그 조건이 붙지 않는다면 저 말은 틀린 겁니다.

쇠로 만든 칼은 쉬이 부식됩니다.

그러나 살아남아만 준다면 글은 살아남아 칼을 난도질 합니다.

그렇다면 저 말은 맞습니다.

단, 칼을 쓰는 자가 양심을 가져야 정의의 칼이 되듯

붓을 든 자가 정신을 온전히 고수해야 칼보다 강한 글이 됩니다.

이 시대에 어떤 글을 써야 하는가.

피코 델라 미란돌라의 글은 그것을 다시 생각하게 해줍니다.


말꼬리 ---------------------------------

피짱은 사보나롤라가 몰락하기 전에 요절합니다.(너도 병약미소녀냐!!)

그래서 자신의 사유가 다시 한 번 산산이 부서지는 아픔을 겪는 것은 면합니다.

다른 화가 누군가가 겪어야 했던 고난은 모면합니다.


다시 이런 봄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보티첼리의 봄? 리리안의 봄?


다시 말꼬리 -----------------------

저 글을 쓰면서 그 화가가 누군지 기억이 안났는데 그게 보티첼리군요.

게다가 봄에 대한 기사를 하나 찾았습니다.

소가 뒷걸음치다 쥐를 잡은 격.

http://media.daum.net/culture/art/newsview?newsid=20051017092430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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