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 메뉴

RGM-79의 삼국사기 이야기

산상왕 13년 - 떠나는 역사에 슬픈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본문

삼국사기를 읽어보자!/고구려이야기

산상왕 13년 - 떠나는 역사에 슬픈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짐순 폰 데그레챠프 2013. 2. 26. 12:06

원문 - 

王聞之 乃復幸女家 問曰 "汝今有娠 是誰之子" 對曰 "妾平生不與兄弟同席 况敢近異姓男子乎 今在腹之子 實大王之遺體也" 王慰藉贈與甚厚 乃還告王后 竟不敢害 秋九月 酒桶女生男 王喜曰 "此天賚予嗣胤也" 始自郊豕之事 得以幸其母 乃名其子曰郊彘 立其母爲小后 初小后母孕未産 巫卜之曰 "必生王后" 母喜 及生名曰后女

十七年 春正月 立郊彘王太子


해석 - 

왕이 그 사실을 듣고 이에 곧 그녀의 집을 다시 찾아 묻기를 '네가 지금 아이를 가졌다 하는데 이는 누구의 아이더냐'고 하였다. (그녀가) 대답하기를 "첩은 평생토록 형제와 더불어 동석하지도 않았는데 하물며 다른 성(씨)의 남자를 가까이 하였겠습니까. 지금 뱃 속의 아이는 진실로 대왕이 남기신 애기씨입니다. 왕은 위로하며 선물 주기를 매우 후하게 하고 이내 돌아와 왕후에게 고하니 다투었으나 감히 해할 수 없었다. 가을 9월에 주통촌의 여인이 사내 아이를 낳았다. 왕이 기뻐 말하기를 '이는 하늘이 나에게 후사를 보내준 것이다'라고 하였다. 처음 제사지내는 돼지의 일로 비롯되어 다행히 그 어미를 얻은 것이니, 이에 그 아이의 이름을 교체라 하고 그 어미를 소후로 삼았다. 처음 소후의 어미가 임신하고 낳기 전에 무당이 말하기를 필히 왕후를 낳을 것이다'라고 하여 그녀는 기뻐하며 아이를 낳자 이름을 후녀라고 지었다.

17년 봄 정월에 교체를 왕의 태자로 세웠다.

이렇게 자르니 긴 글도 무리 없이 쓸 수 있군요. 그리고 모자이크를 오래간만에 넣을 수 있어서 햄볶아요. 그리고 맨 처음 붉은 박스안의 문장은 지난주에 빼먹은 부분입니다.


저 제목을 정한 건 지난 주 글쓰면서였지만

(수정 : 글 쓰는 중에 제목이 바뀝니다..)

사실 핑클의 루비(漏悲)와 박지윤의 Steal Away를 섞고 싶었어요.

한 남자를 두고 누군가는 그는 내꺼라고 말하고

누군가는 그 사실을 슬퍼하는 노래를 불러요.

왜그런지 두 여인의 희비가 오가는 이야기에

이 노래들의 조합처럼 어울리는 건 없다고 생각해요.

그러나 밤을 꼴딱 새고 정줄 놓은 병약여아에게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하는 건 가혹한 것이어요.

(가끔 제목만 보며 ㅎㅇ거리는 나쁜 아'자'씨들에게 밀당을 거는

짐순이는 사악한 아해이기도 해요)


사실 과거 시대에 애를 못낳는 것은 오로지 여성의 죄가 되었죠.

아무리 전횡을 부릴 정도로 강력한 친정을 갖고 있어도

자칫 잘못해 적대적인 집단에서라도 이 틈을 파고들면...

그래서 왕후는 사람을 죽이려 한 것이지요.

그런데 우짜겠어요.

단 한 방에 전세는 뒤집혀버렸군요.

"아이가 타고 있어요"

아무리 막나가고 싶어도 이렇게 된 이상,

뭔가를 해본다는 건 정말 다 뒤엎어버리자는 것이지요.

게다가 부인을 여럿 거느릴 수 있는 고구려 사회의 특성상

여인의 질투는 곧 죽어, 벌판에 버려져도 할 말이 없는 중죄.

질투정도야 왕이 감싸줄 수도 있는 것이지만

왕의 아이마저 죽인다면 그야말로 전쟁하자는 것이니까.

그런 행동이 옳다는 건 아니지만

왕후의 타들어가는 마음에 연민이 생깁니다.

정말 평생을 건 모든 도박이 산산히 부서지는 아픔이겠지요.

그 시대의 여성이 할 수 있는 건 많지 않아요.

어찌보면 그녀도 정치적 권력 조율의 한 희생양이니까요.


역사 속에서 이따금 여인들이 

주도적으로 나서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있습니다.

여왕의 몸이 된 여인들도, 

왕비나 공주의 몸으로 나선 이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녀들이 정치의 주역이 될 때는 

남자들의 꼭두각시가 되어버렸던가,

혹은 가슴달린 남자로서 살아야 했습니다.

즉 생물학적으로는 여자지만 정치적으로는 남자란 뜻입니다.

가끔 세상을 흔든 여인들이란 식으로 전기물이 나오지만

불과 100년 전까지도, 아니 그 잘났다는 서구에서조차

여성이 독자적인 주체로 나선 건 30년남짓입니다.


왕과 소후와의 대화, 아이의 탄생, 

그리고 소후라는 이름이 붙은 이야기는 더 붙일 말이 없습니다.

갑자기 우씨에게 감정이입이 되어서요.(그깟 씨앗따위!)

끝으로 17년에 산상왕은 교체를 태자로 삼습니다.

그가 사실 이 시리즈를 있게한 동천왕이지요.

그것은 왕후로서, 우씨의 권위는 무너지지 않았지만

그녀의 우위가, 그녀 집안의 권력기반이,

아니 더 나아가 고구려사회의 성격을 확 바꿔버리는 

소용돌이의 한가운데에 살기 위해 노력한 

역사속의 한 인간으로서 남았습니다.

나중에 이야기 하겠지만 

그런 비극을 종식시킨 왕이 산상왕이라는 건

그녀의 죽음에 앞선 어느 결정에 한가지 위안이 되었을까요?

조금 코끝이 찡해옵니다.


짐순이가 생각하는 역사는

그 시대에 살았던 모든 인간 행동의 총화,

그렇게 정의 내리고 있습니다.

적어도 그녀는 도망치지 않았어요.

그녀는 정말 왕비였습니다.


말꼬리 -------------

앞에서 적었듯 정한 제목이 있었는데

내 안에 네(아기)가 있다였어요.

이 글을 다적을 때쯤 지금의 제목으로 결국 바꿨씁니다.

한 역사적 인간에게 빛을 비추는 사람으로서 할 수 있는 최대의 경의를 담아.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