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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GM-79의 삼국사기 이야기

황룡사 9층목탑, 그리고 평성경.. 본문

한국고대사이야기/고대사 잡설

황룡사 9층목탑, 그리고 평성경..

짐순 폰 데그레챠프 2013. 5. 16. 02:10

한국고대사학회 홈페이지에는 정기적으로 문화재 관련 소식 정리가 올라옵니다.

각종 언론에서 다뤄진 고대사나 역사문화 관련 소식이 올라오지요.

뭐 숭고한 귀차니즘을 가진 짐순이는 하나하나 검색치 아니하고,

이걸 봅니다.

우연히 1면에 걸리지 않는 한 사실 놓치는 기사도 종종 있지요.



눼, 귀차니즘은 숭고하다니까요.

천하의 친정권님께서 휴머니즘보다 더 상위의 이상이라고 하시잖아요.

맑시즘과 캐피탈리즘보다 더 위대하죠.

김훈 선생도 인간은 놀아야 하는 동물이라는 말쌈도 하셨고..


암튼, 오늘 낮에 올라온 소식 중에 이런 기사가 있었습니다.

높이도 모르면서 황룡사탑 복원한다?

사실 이걸 복원하는지도 잘 몰랐습니다.

작년에 황룡사지에 갈 때만 해도 아무 것도 없었고,

또 복원의 복자만 들어도 진절머리를 내는지라

어쩌면 들었어도 자동 검열삭제 되었을지도 몰라요.

기사를 보니 이미 13년째 하고 있군요.

아놔 그동안 여길 몇 번을 갔는데 몰랐던걸까.

딴데 가서는 복원작업 같은 거 귀신같이 찾아내면서,


작년 2월의 황룡사지


직접 찍은 것이니 저작권은 짐순이에게 있죠.


그러므로 이 기사가 제대로 비판하는 건지 아니면 

그냥 똥을 선사하는 건지는 솔직히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워낙 두가지 경우가 골고루 나와서 잘 모르겠어요.

(개판인 복원도 있고, 정말 개객같은 기자들도 있고.. 세상 참 다양해요)

중고기 신라에 대해 관심을 그리 많이 보일 수 없는 상황이라..


다만 말씀드릴 수 있는 건, 

돈줄과 명줄을 쥔 한국의 높으신 분들의 습성을 생각해볼 때,

13년째 미세하게 진행된다는 것은 개판은 아니란 겁니다.

특히나 지자체의 문화사업은 정말 말하기도 싫을 정도죠.

그래도 경주니까 13년을 뭘해도 못느낄 정도로 진행될 수 있는 거죠.

차라리 공구리로 복원사업한 일제 치하가 낫다 싶을 정도의 상황이 벌어집니다.

일제시대에는 오히려 지금 생각과 달리 공구리가 최첨단 기술이고

또 문화재의 파괴를 막는 최선책이라 믿었어요.

일본 애들은 지네 유적도 공구리를 쳤씁니다.

마치 한동안 토기 복원할 때 석고를 쓴 것 처럼요.

지금은 미세한 석고가루가 토기를 덮어 오히려 변질시킨다고

CTK같은 것을 사용하지만요.


소위 말하는 삐까뻔쩍한 무언가를 남기고 싶다는 일념인지

마치 7세기 갑옷 입고 질주하는 고구려 건국 드라마처럼

뭔가 희안한 걸 만들고 싶어하지만 만약 그것을 고증할 자료가 없을 때도,

또는 그 자료가 맞는 지 대조할 자료가 없을 때도

뭐 말하면 입만 아픈 것들을 만들어 내야 합니다.

이럴 때 모든 것이 명확하지 않으면 움직이지 않겠다는 학자정신은

새해 첫날 포크레인 앞의 풍납토성 꼴이 됩니다.


여기 하나 정말 약을 덕용포장으로 빨아대는 사람들 이야기를 하나 하죠.


요것도 직찍.


지난 2010년은 나라의 평성경/헤이죠쿄 천도 1300주년이 되는 해였습니다.

일본의 고대 수도야 그 다음다음 수도인 교토의 평안경/헤이안쿄가 더 중요하다지만

그래도 고대국가의 본격적인 출범으로부터 

뒤이을 헤이안 시대로 넘어가는 중요한 길목의 수도입니다.

그들은 거의 반세기 가량 이 궁성을 조사하고

여러차례에 걸친 수도 개축상황을 파악할 정도였고

매우 오래 전부터 평성경의 복원을 시작했습니다.

적어도 20년 이상은 된 걸로 압니다.

그런데 2010년에 완성된 것은 저 1차 태극전(그러니까 근정전 같은 정전이죠),

맨 처음 평성경을 조성했을 때의 건물 하나 복원했습니다.

작년에 이 앞을 버스로 지나치며 보니 더 늘어난 것 같지는 않더군요.

우리보다는 건물도 많이 남아서 자료는 어느 정도 풍부한데도

저 지붕의 각도를 알아내는데만 4년을 썼다고 합니다.

그때 쓰인 기와를 토대로 어떻게 쌓였는가를 연구하는 거죠.

이렇게만 쓰면 니뽄은 대단해~라는 소리가 나올테지만

안의 옥좌는 메이지 유신때 쓰던 것을 올려놨습니다.

거기까지는 도저히 해결할 수 없었던거죠.



저 건물과 사진을 찍은 짐순이 등 뒤의 주작문이 전부.

위의 기사에 언급되지 않았지만 오래된 탑이 하나 더 있습니다.

나라의 약사사/야쿠시지에 있는 두 목탑 중 하나.



전부 흐리거나 비온 날에 찍은 사진.

(어딜가나 비를 부르는 짐순이는 나라에만 가면 비가 옵니다. 

나미가 부릅니다. '그저~ 나라만 가면 비지~')

요건 오히려 부여의 새로 만든 역사단지에서 비슷한 탑을 본 것 같은데..

아마 능산리 능사 복원장이었을 겁니다.

그나마 이런 탑도 있고, 정림사지 5층 석탑의 처마 각도라는 자료라도 있지.

정말 비교대상이 없는 황룡사 9층 목탑은 빡빡한 건 당연하다고 봅니다.

그래서 어지간하면 뜩딱하는 나라에서 그 시간을 들이는 거구요.


갠적으로 폐허는 폐허로 남아야 한다고 봅니다.

그 존재도 하나의 역사입니다.

정 뭐라도 보고 싶다면, 또 상상력이 너무 빈곤하다면,

옆에 일정 축척의 모형 정도는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거야 오류가 발견되면 살짝 고치면 되는 거거든요.

그냥 그 자리에 이런 것이 있었을 것이라고 상상해주세요라고 한다면 

문제될 것은 없습니다.

그러나 실물크기로 실제 현장에 올려놓는데에 급급한 나머지

완전하지 않은 상태에서 올리면

거기서 나오는 문제를 어떻게 해야할까요.

그때는 또 하나의 유적파괴의 현장을 보는 것이겠지요.


자,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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