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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GM-79의 삼국사기 이야기

역사공부를 하려면 지구과학이나 지리공부도 잘해야.. 본문

한국고대사이야기/고대사 잡설

역사공부를 하려면 지구과학이나 지리공부도 잘해야..

짐순 폰 데그레챠프 2013. 4. 12. 13:12

요즘 아주 오래된 버릇 하나나 되살아나고 있습니다.

글 주제 하나를 놓고 오래 오물짝거리기..

이 블로그를 하면서 주 5회 글쓰기를 시작하나 했더니

다시 과거로 돌아가고 있어요.

그렇다고 더 양질의 글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개인적으로 좋았던 글은 오히려 폭투처럼 던진 글에서 많이 나왔죠. -_-;;)

요즘 가장 신경쓰는 건 삼국사기의 동천왕 이야기지만

그렇다고 막 쓰던 시절보다 공부를 더 안하니 문제(앗!)


지금 오물거리는 주제가 

몽골을 비롯한 유목민족의 전투력과 잔학성의 원인에 대한 글입니다.

일전에 스기야마 마사아키의 유목민의 눈으로 본 세계사를 다룬 글에서

말한 것이지만 

유목민족의 흥기와 그 행동양식을 그들의 환경을 이해하지 않고는

전통적인 시각 - 그들은 악마야..와

수정주의적 시각 - 그들은 역동성을 가진 사람들이다 편견으로 보지말자..

이런 이야기 밖에 할 수 없거든요.

짐순이는 이 문제에 대해 유목민을 이해하자는 쪽에 서있기는 하지만

단순히 농경민족들이 개인적인 감정이나 우월의식으로

그렇게 장기간에 걸쳐 민족과 국가를 막론하고 

악평을 하는 이유가 뭔가에 대해서도 생각해야한다는 쪽입니다.

굳이 이야기하자면 신환경주의자(과거의 환경결정론과는 다른)

또는 절충론자 정도가 될 겁니다.

요건 정리되는 대로 세계사 뒷담화에서 다룰 겁니다.

(물론 그 질은 그닥일 듯합니다만..)


그동안 역사를 역사기록으로만 보았고

실제 그 역사를 만들어낸 환경은 무엇인가에 대해 관심을 두지 않았죠.

그러다 전세계적으로 환경에 관심을 가지는 역사학의 진전을 가져왔습니다.

(하도 혁신이라는 단어를 남발하는 추세라 아무래도 꺼려집니다)

E.H. 칼슘할배의 말을 빌자면 '(역사학/가의) 지평선은 넓어진다'겠죠.


그동안 삼국의 발전에선 신라가 매우 늦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어떤 것은 고구려랑 500년이 차이나죠.

이웃 백제하고도 그 문화적 격차는 엄청난 것이어서

처음 황룡사를 세울 때 쓰인 기와는 고구려의 기술이었고,

거기에 9층탑을 세울 때는 백제 기술자를 불러다가 완성했지요.

우리가 알고 있는 찬란한 신라문화란 것도

적석목곽분에서 나온 황금 덩어리들이 아니면

(황남대총을 직접 발굴하신 분의 표현대로라면 

그 무덤의 주인은 황금에 미친 女人이라고 하죠. -_-;;;)

상당수가 통일기에 고구려와 신라의 기술과 인적자원을 흡수한 이후의 것입니다.


그런 신라가 이 좁다는 땅덩어리에서 왜 그렇게 쳐질까를 생각할 때

(고고학 조사로는 고구려나 백제와 건국연대도 차이가 안납니다)

가장 큰 이유를 들 수 있는 것이 소백산맥의 존재지요.

지금도 초등학교 3학년 사회시간엔 내 고장의 모습이라고 해서

산촌, 어촌, 농촌, 그리고 도시에 대해 배웁니다.

산촌하면 말 그대로 산 때문에 교통이 원활하지 못한 환경을 가지고 있죠.

상당히 완만한 한반도 남부의 지형을 감안하면

소백산맥은 꽤나 잘 만드어진 장벽입니다.

전통적인 교통로도 그렇게 많이 생성되지 못했지요.

이런 문제들을 이해하고서야

신라의 늦은 발전과 청동기 없이 철기로 직행한 사실을 이해할 수 없게 되지요.


가야나 그리스의 도시국가들, 중세이후 이탈리아 도시국가군은 

인근지역이 규모가 큰 영역국가가 생겨남에도 끝내 하나로 만들어지지 못했습니다.

특히 그리스의 국가군들이 통합하지 못한 이유로 그들의 국민성을 들기도 합니다.

그들은 지배하게 된 측에서 '너희들은 조낸 모래알 같아서 앙대는거여'..라고 빈정거리죠.

과연 그럴까요?

이탈리아야 워낙 복잡한 유럽의 정치지형이 만든 피해자라 논외로 하더라도

가야나 그리스의 도시국가들은 어느 정도는 자연 환경의 제약을 받기도 합니다.

그런 점을 감안하지 못하고, 공부하지 않고

로마인이 남겨놓은 기록, 그리스인들이 서로 디스하거나 자학하는 기록만 봐가지고는

제대로 해결할 수가 없다는 거죠.


더욱이 거기에는 자연과학적인 지식이 필요해집니다.

이를테면 기후에서 자꾸 옛날 기록을 읽을 때 요즘 기후를 생각하고 읽는데

각 기록이 쓰인 시대의 정월이 다르고,

아주 초보적인 이야기지만 음력과 양력이 다르고,

관념적인 정의와 실제 현상이 다릅니다.

(어떤 시대에는 10월이 정월이기도 하고, 또 다른 월이 정월이기도 하고,

중세 이후 대다수의 기록은 음력 정월을 기준으로해서

1~3월을 봄이라 부릅니다.

아시다시피 음력 정월이 꽃피고 개구리 기지개 켜는 달은 아니죠)

또 멀리 올라가면 대기후와 소기후같은 문제도 건드리게 됩니다.

오늘 날씨가 좀 춥다고해서 과거 100년 전 4월도 영하날씨는 아니란 겁니다.

작년 여름이 뜨겁기만 했다고 

1000년 전 7~8월이 한달간 비도 안오는 날씨는 아니었다는 겁니다.

아주 오래전에 화산 이야기를 했지만

지구 어디선가 큰 규모의 화산이 터지면 

전세계적으로 1~2도 정도는 일시적으로 기온이 낮아집니다.

그동안 자연과학에 대한 지식이 풍부하지도 않았던 시절이야

그냥저냥 넘어가던 문제인데 이제는 그 정보들이 슬슬 들어오니

이젠 봐야할 정보도 커집니다.

여기서야 늘 동아시아사는 중요하다 떠들지만(증말? 늘 그래쩌염??????)

또 한편으로는 과학, 특히 지구과학도 역사를 공부하는데 필수적인 것이 되어갑니다.


언젠가 말한 것 같지만

작은 마을에서 도시국가를 거쳐 영역국가로 발전해가는 과정을

대개는 고고학적 발굴을 통해 규명하려고 합니다.

윤용진 선생님의 대구지역 소국형성 연구는 정말 고전이지요.

그 이후 나온 발굴조사 성과를 더 보충하니 그 의미가 더 명확해지더군요.

위성사진에 시기별로 나온 유적들을 표시해서 그걸 넘겨보니까

무슨 시뮬레이션 보는 기분도 나데요.

그런데 고고학에 아주 약한 짐순이의 경우

그것만으로는 잘 들어오지 않는 것이 있어서

(뭐, 연방의 높으신 분들이 양산기의 컴퓨터를 좋은 걸로 달아줬을리가!!!)

태양계 형성이론을 대입해서 이해하고 있는데,

거기에 중력이라는 인자를 붙이면

어느 곳에서는 국가형성에 성공하고, 어느 곳에선 성공하지 못하는 요인도

설명할 수 있을 거라고 보긴 합니다.

(뭐, 아직 머리 속에서 소화하는 과정이라 내놓으려면 오래 걸리지 싶어요)


약간은 먼 분야이긴 하지만 무기나 공구류가 나올 때

그것을 연구하는 과정과 인간의 신체구조에 대한 연구를 연계하면

더 명확한 해설이 나오지 싶어요.

이것을 어떻게 사용하는 가에 대한 구체적인 이해가 따라가지 않을까요?

아무리 그런 걸 연구하지 않던 시대라도 경험에 축적하여 발전시키다보니

사람의 관절운동의 범위를 벗어나는 도구들을 만들지도,

설령 만들더라도 오래지 않아 밀려났을 겁니다.


오늘 글 머리 아프죠?

이렇게 말이 길고 빡빡한 건 아직 소화가 덜된거라서

가뜩이나 재미없는 블로그 글에 찬 물 하나 더 끼얹어봤습니다.

그러나 인터넷으로 검색 몇 번하거나

책 몇 권 읽으면 된다는 분들 중에 단 한 명이라도 읽고

정말 공부해야 겠구나란 맘을 먹으면 나름 성공한 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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