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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GM-79의 삼국사기 이야기

앙리 피렌느는 지금 웃고 있을 것 같다.. 본문

어떤 미소녀의 금서목록

앙리 피렌느는 지금 웃고 있을 것 같다..

짐순 폰 데그레챠프 2013. 7. 1. 06:39

짐순이는 서양사를 무척 싫어했습니다.

뭔가 지들이 세계 그 자체라는 인식도 재수 없었고,

(지들 역사 써놓고 세계 자 붙이는 건 좀..)

일부 서양사 연구자들의 모습도 바나나같아서 싫었습니다.

애시당초 "음음.. 빠리는 말이죠. 엘레강스하고 음.. 고져스하게..." 

이딴 빠리지앵같은 말투가 질색인데다 거기에 보그체까지 끼면 바퀴벌레같죠.

어느 세미나장에서 계속 랑케는.. 또 누구는..하는 사람을 보고

그래서 당신이 하려는 말은 뭔데. 내가 랑케 이야기를 들으러 온 거 아니잖아.

이런 말이 더 거친 어휘로 혀의 저격능선을 넘을 뻔도 했어요.

(과거에 한국사학은 체계적이지 않다느니 이딴 소리만 안했어도 화는 덜났겠지만.

그들이 하는 짓이 과거 조선 후기 명나라빠들하고 하는 짓이 똑같았죠)

서양사에 관심은 메소포타미아나 그리스/로마 정도야 있었지만

서양사 책은 그냥 아주 간단한 개설서 한두권이 전부였습니다.

정말 보그체 남발하고 빠리지앵 흉내내는 '일부'가 혐오동물같았달까..

가뜩이나 어려서 세상물정을 모르는 아해의 눈은 그만큼 완고한 것이지요.


그런 짐순이의 눈을 띄워준 사람이 앙리 피렌느입니다.

그의 "중세 유럽의 도시"를 정말 재미 있게,

읽고 또 읽으며 정말 세계사 공부를 하기 시작해

어느 해는 한국사 책1권 당 세계사책 10권을 사는 일도 일어났지요.

한국사도 고려 이후, 

중국사는 위진남북조 아래로 내려가지도 않을 정도였던 애가 말이죠.


그래24에도 절판책이라고 그림이 없어 가지고 있는 낡은 책의 표지를 스캔뜹니다.


막연히 중세, 근대에 대한 고등학교 교과서 이상의 정보를 가지고 있지 못한 아해는

그냥 싸게 파는 자리가 있길래 아무 생각 없이 돈이 남아 산 책을

끌어안고 살게 되었습니다.

원래 공부할 때 넓은 책상에 책 너댓권 펴놓고 동시에 읽고

뭔가 재미난 이야기가 각주가 달려 있으면 

잠시 멈추고 그게 인용된 원전을 봐야 직성이 풀리는 애가

(한번은 강진철 선생님의 시대구분 논문 한 편보다가

두달간 고려시대 토지제도만 판 적도 있지요. 그래도 결국 이해를 못했지만)

이 책을 손에 쥐었을 때는 어쩌다 그렇게 책을 볼 수 없는 상황이어서

맘편하게 보자고 집어들기도 했지만요.


뭐랄까 역사적 흐름을 거시적으로 보는 것이 재미있었습니다.

로마가 망했다. 유럽은 전면적으로 뒷걸음 쳤다..

이런 얘기가 아니라 

로마의 세계구조가 어떻게 마비가 되어갔으며

그것은 또 어떻게 다시 (부분적으로나마) 이어지는가

로마 멸망의 후폭풍은 어떤 시기까지 영향을 미쳤는가..

갑자기 사라진 사회구조를 대체할만한 것은 어떻게 구성되었나..

이런 부분을 조망할 수 있는 책이었습니다.

(아무리 바둥거려도 미시보다는 거시쪽이 맞는가봅니다)

단순히 서양사에 재미를 붙인 것이 아니라

거시적 시각에 압도당했달까..

이러한 회복의 흐름이 어떤가가 궁금해져 

1년간은 당시에 나온 르네상스책은 거의 사들여 그거만 후벼팠습니다.


지금 이 책은 반양장본의 비닐 코팅이 떨어지고 

열어놓은 창가로 폭우가 쏟아질 때 물 한잔 분량 들이켜 너덜너덜 하지만

아직도 이해할 수 없는 게 더많은 

지금도 이 책은 가끔씩 가슴 설레게 합니다.


말꼬리 --------------------

1.

무려 1세기 전에 활동하던 앙리 피렌느의 시각은 많은 공격을 받는다고 합니다.

그러나 모든 연구자들의 꿈은 자신의 주장이 누군가에게 극복되는 것이며,

오래오래 한가지 의견이 자리를 잡으면 그 학계는 이미 죽었다는 말이 맞다면

그도 섭섭하거나 노여워하기 보다는 기뻐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2.

이 책은 아쉽게도 절판되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다른 책, 마호메트와 샤를마뉴는 사볼 수 잇군요.


3.

사실 문예부 출신의 문학소녀지만 절대 못하는 게 감상문 쓰긴데

(그래서 이 블로그 책 소개글이 비정규적인데 다 이유가...)

마침 좋은 블로그 글이 있어서 링크를 겁니다.

http://youth-kungfus.tistory.com/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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