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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GM-79의 삼국사기 이야기

가끔 기록이 거짓말을 할 때, 사람이 거짓말을 할 때..3 본문

삼국사기학 개론

가끔 기록이 거짓말을 할 때, 사람이 거짓말을 할 때..3

짐순 폰 데그레챠프 2013. 7. 26. 12:30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적었던 앞 글과 달리

(그냥 욱하고 써버렸네요. 질문을 던진 노예맛땅쇠님은 반성하라!)

이 문제는 몇 달전부터 머리 속에서 오물거리건 건데

이참에 덜어내고 머리를 비워보기로 하죠.


저쪽 애니 블로그를 들여다 보신분은 아시겠지만(하다못해 이 블로그 소개글만 봐도...)

짐순이는 기동전사 건담(오로지 우주세기!), 은하영웅전설, 마리아님이 보고계셔를 좋아합니다.

(그쪽 일을 하시는 분과 대화를 나누가 좋아하는 작품 얘기가 나왔을 때 

저 목록을 듣더니 황당해하시더군요)

기동전사 건담의 갖가지 설정놀이와 작품 내의 연대기 문제가 이 글에 어울릴 것 같지만

그건 그야말로 광개토왕릉비 읽기 글쓰는 것만큼 어렵구요.(누구 죽는 꼴 봅니다. ;;)

마리미테 팬들 사이에서 잠시 불거졌던 문제 하나를 잠깐 이야기해볼까요?


"초보적인 건 수업에서 하고 있는 데다, 시마코는 일본무용을 하고 있으니까 동작을 익히는 데는 자신이 있나 봐. 레이는 무도로 단련한 집중력으로 외우긴 한 것 같지만 아직 좀 서투르네...... 아, 역시 밟았다."


마침 레이님이 사치코님의 발을 밟은 때였다. 그래도 두 사람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계속해서 춤추고 있다. 구두를 신고 있지 않은 것 처음이라는 것도 있고 하니 파트너의 발을 밟았을 때를 대비한 거겠지.


"사치코는 말이지, 정진정명의 아가씨니까 사교댄스 정도는 할 줄 아는게 당연한 거야."


로사 키넨시스는 조금 자랑스러운 듯이 사치코님을 말했다. 다섯살 때부터 발레를 배우고 있었지만, 중 1때부터 3년간은 사교댄스를 배웠다고. 영어회화나 피아노, 다도, 꽃꽂이 등 중학교 때까지는 매일 뭔가의 가정교사가 와 있었다고 한다.


"왠지 다른 세계 이야기 같아."


한숨이 새어나왔다. 15년간 살아왔지만, 아직도 세상이란 모르는 것 투성이.


"그렇지? 숨이 막혀버릴 것 같아. 그러니까, 내가 전부 그만두게 했어. 그만둘 수 밖에 없게 했다는게 맞을까? 동생으로 삼아서, 산백합회의 잡무에 끌고 다녔으니까."


- 마리아님이 보고계셔 1권 중

  (국내 정발본은 집에 소장중이므로 당연 인용할 수 없어 하드 속 번역본 화일을 옮겼음을 밝힙니다)


이 작품 속의 핵심인물인 오가사와라 사치코가 능숙하게 춤을 추는 것을 보고

그녀의 선배(이 작품을 모르는 이도 있으니 이리 퉁칩시다. 모두가 카톨릭 여학교의 풍습을 알지도 못하고..)

로자 키넨시스인 요코는 사치코의 후배(또 퉁칩시다. 설명하기 귀찮아여!) 유미에게

그녀가 어떤 교육을 받았는지를 설명하고 학생회인 산백합회에 끌어들여

모든 과외 수업을 그만두게 만들었다고 나옵니다.

어차피 1권만 나왔을 때는 아무도 토를 달지 않았습니다.

딱 오가사와라 사치코가 어떤 교육을 받아 지금에 이르렀는가에 대해 납득시켜준 장치였거든요.

그러나 애니판 1기가 나온 이후 발매된 マリア樣がみてる Premium Book는 폭탄 하나를 던져주었습니다.

이 책의 후반부에 원작자 콘노 오유키의 특별 단편 answer가 실려있었습니다.

미즈노 요코가 어떻게 사치코를 만났나하는 일종의 프리퀄이었지요.

거기서는 그녀가 스스로 모든 공부를 그만두게끔 하지요


マリア樣がみてる Premium Book 표지. 출처 짐순이 하드..



생각지도 못했던 사치코의 행동에, 요코는 놀랐다. 그런 모습이 이상했는지, 사치코는 미소지었다. 눈부신 미소. 이렇게 사랑스럽게 웃을 수 있는 아이였다니, 미처 몰랐다.


"저, 교양 학습을 전부 그만두고서 찾아 뵈었어요."


싱긋하면서, 그러나 의지가 강해보이는 눈동자에 그렇게 말하고서, 사치코는 가볍게 목례한 후 등을 돌려,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 단편 answer 중. 이 단편이 단핸본에도 실렸던가.. 기억은 나질 않고 걍 번역본 화일을 긁어서.. 

  그거 하나 보자고 춘천에 기차타고 가서 확인할 수도 없고.. 웅...


실제 벌어진 일과 요코의 말, 엄밀히 말하면 둘 다 어긋나있죠.

그만두게 만든 요인 자체가 무엇인가 상반되거든요.

그래서 설정파괴 아니냐는 사소한 지적도 있었지요.

만약 이것을 하나의 역사적 사실이라고 가정하고 이 문제를 어떻게 해석해야할까요?


이래저래 짱구를 굴려보고(그래도 엉덩이를 까고 춤을 추진 않아ㅆ.. 탕!)

나름 해석을 한 건 둘 다 맞다 입니다.

단순히 보면 타의적으로 그만두었느냐 자의적으로 그만두었냐는 다르지만

이 단편을 꼼꼼히 읽어보면 사치코가 스스로 그만둔 건 사실입니다.

그래서 단편은 진실을 말합니다.

그러나 사치코가 힘든 수업들을 그만두게 유도한 건 요코가 맞습니다.

그러므로 1권의 대사도 진실을 말합니다.

그렇다면 왜 두 이야기는 상충하는 듯 보일까요?


우선 1차적으로 자기네 라인에 들어올지 안올지 모를(하지만 이 작품의 세게에선 거의 어장에 들어왔어요)

집단 외의 사람들에게 길게 이야기하는 것도 참 쉬운 것도 아니고

이것저것 해야할 것이 많은 이에게 그럴 여유는 없죠.

저간의 사정을 압축해서 말하면 1권의 대사가 나올 가능성이 크죠.

악의적인 왜곡이 아니라 대화상의 압축적인 표현에 불과하다는 거죠.

물론 둘 중 하나만 살아남았을 경우 후대의 독자들은 하나의 라인으로만 흡수하겠죠.

여기까지 읽은 분들은 무슨 라노베랑 애니갖고 뭔 문학평론 쓰냐고 하실 분도 계실지 몰라요.


하지만 이런 문제는 역사기록에서 끊임 없이 만나는 문제입니다.

고대사같은 먼 시대가 아니라 현대사같은 분과에서 특히나 빈번하게 나타납니다.

사마천의 사기에서 굴원가생열전만 보면 

가의는 참으로 고고하고도 불우한 문학청년이미지로 남는데요.

동시에 일자열전에 보면 

가의는 지 잘난 것만 알고 나대다가 혼나는 경박한 인물로 그려지지요.

(기전체란 이런 면에서 획기적인 진보였습니다)


그리고 구비문학에서 말하는 각편version의 문제도 생각해야 겠지요.

문자에 기반을 두지 않고 오로지 사람의 기억에만 의지하는 이 것의 특성상

같은 사람이 이야기하더라도 그때그때의 상황에 따라 이야기의 진폭이 달라집니다.

건강이라던가 관객들과의 호응으로 인한 상승요소 등등이요.

앞에서 말한 최남선의 김정호 이야기처럼 자기도 모르게 과장을 섞는 경우도 존재합니다.

그래서 역사적 사실에 약간 굴절이 생기는 경우가 있어요.

누가 그랬죠. 그때그때 달라요.

어느 버전이 기록되느냐에 따라 읽는 이는 머리가 아파질 수도 있죠.


맹자도 말했습니다.

경에 실린 모든 것을 믿으면 골룸이라고요.(물론 골룸이라곤 안했지만)

뭘 읽더라도 게속 회의적으로(그렇다고 단정지으면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합니다)

고민해가고, 뭐가 사라졌고, 뭐가 더 붙었는지 파악해야 하죠.


말꼬리 -----------------------

이거 삼국사기 블로그도 아니고 고대사 블로그도 아니고

무슨 역사학개론 전문 블로그가 되어버렸는데

내일이나 모레쯤 한 편 더 올리고 정말 본연의 임무로 돌아갈껍니다.(진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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