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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GM-79의 삼국사기 이야기

원문이 본의아니게 거짓을 말하는 경우 본문

삼국사기학 개론

원문이 본의아니게 거짓을 말하는 경우

짐순 폰 데그레챠프 2013. 10. 7. 12:37

원문

朔州 賈耽古今郡國志云 "句麗之東南 濊之西 古貊地" 盖今新羅北朔州 善德王六年 唐貞觀十一年 爲牛首州 置軍主 <一云 文武王十三年 唐咸亨四年 置首若州>

번역

삭주는 가탐의 고금군국지에 따르면 (고)구려의 동남 예의 서쪽, 옛 맥의 땅이라 하였다. 아마 신라의 북쪽 삭주를 말하는 것 같다. 선덕왕 6년, 당 (태종) 정관 11년에 우수주로 삼고 군주를 두었다. <또는 문무왕 13년 당 함형 4년에 수약주를 세웠다고 한다>


천사가 없는 12월도 아니고 모자이크 없는 삼국사기라니..

오늘 예정을 바꾸어 삼국사기 번외 글 하나 올려봅니다.(눼, 이른바 땜빵선발이죠) 사실 별 역사적인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그냥 삼국사기의 오자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아침에 문득 삼국사기 지리지 삭주(그러니까 지금의 춘천입니다) 부분을 펴놓고 읽다가 순간 짐순이의 해석이 잘못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바로 옆 화면의 中자를 두고 끊어읽기가 잘못되고 있던 거예요. 당의 정관 11년 중에 수주를 삼고.. 이러고 있더라는 거죠. 아니 중수주였던가? 이상하다.. 춘천 옛지명에 중수주는 없는데.. . 잠이 덜 깬 상황에서 그러고 멍하니 있다가 정문연본을 펴보니.. 눼, 중자는 우牛의 오타였던 것이죠. 그냥 원문을 바라보다보니.. 아하 우자를 어떻게 쓰다보면 중자로 보일 수도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냥 흘려쓰기 하고 조금만 더 힘을 주면 획이 더 그어질 수도 있으니까요. 


김부식과 편찬진이나 정덕본, 주자본을 제작한 사람들이 처음부터 중자로 썼을 가능성은 낮습니다. 그렇다면 결론은 김부식 이후 조선 초 사이에 이 책이 유통될 적에 서서히 오류가 자리잡았을 확률이 높지요. 더욱이 조선 초 태조대의 김거두가 쓴 발문1이나 중종 중종 때의 이계복의 발문2에는 각각 활자본은 사라지고 필사본만 돌았는데 그것 역시 오자 투성이라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사실 지금도 많은 책들이 팔리지 않아 창고에서 썩다가 재활용으로 팔려나가는 현실임을 생각하면 우울하지만 이때만 해도 아예 인쇄부수가 매우 적으니 그냥 사라지면 국물도 안남는 것이요, 어떻게 필사라도 해서 돌려보는 수밖에 없었지요. MP3가 흔하게 나오기 전에는 음반 사면 테이프로 복사해서 돌려듣기도 했다니 그런 거랑 유사한 상황입니다만..


아무래도 손으로 적다보니 필체의 문제(짐순이도 손글씨는 다, 나, 하, 화, 라 이게 똑같습니다. 거의 금석문 판독보다 더 어려워요)로 다른 이들이 착오를 보이는 경우도 있기도 합니다. 또는 정말 순수한 오탈자가 나오기도 하지요. 그리고 무의식중에 원문을 옮기는 과정에서 자기가 애용하는 것들이 삽입되기도 합니다. 특히나 문체는 서로 다 애호하는 것이 다르니 상대의 문체가 약간 거슬린다고 느낀 경우 손을 보는 수도 있습니다.. 물론 한글과 달리 한문은 그럴 여지가 좀 적지만 아주 없다고 할 수 없을 것 같아요. 또, 손에 힘을 과하게 주는 스타일이라면 멈춰야하는 데서 중단하지 못하고 그냥 쭉 가버리는 경우도 있습니다.(눼 쇤네의 손도 그런 지랄맞은 버그를 달고 살아요) 또는 계속되는 반복작업에 그만 아무 생각도 없이 취해서 착각했을 수도 있지요.(개인적으로는 이 비율이 높다고 봅니다만) 그리고 필사를 하는 사람이 해당분야의 전문가가 아니라면 미세한 착오를 저지를 가능성도 크지요. 약간만 일반적으로 쓰이지 않는 문구가 나올 경우 그게 뭔지 이해를 못할 수도 있지요. 그나마 이건 너무 쉬운 착오라서 그렇지, 좀 더 고대사에 대한 지식이 희미해진 시대에 처음 발견되었다면 아마 춘천의 옛지명 중 하나는 중수주가 되었을 겁니다.(아.. 그렇다면 우두동은 중두동이 되는 건가?)


오늘의 글은 누구를 까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이런 문제를 검토하고 수정하는 일을 하는 것이 만만치 않은 일이라는 것을 말하고자 하는 겁니다. 언젠가 중국 당대의 이른바 백과사전 비슷한 책이라 할 수 있는 한원을 읽을 때, 도저히 해석이 안되는 문장이 있었어요. 나중에 그 글의 원전이 된 것을 찾아보니 한 문단의 70%가 날아가고 앞과 뒤의 글자만 남아서 도저히 읽을 수 없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이런 오탈자를 고치는 작업을 흔히들 교감이라고 합니다. 교정보고 또 감수하고.. 상당히 지루한 과정이지요. 지금도 어지간한 것은 다 교감되었지만.. 필사본을 만드는 사람들처럼 학자들도 완벽하지 않으니 또 후대의 학자들이 전대의 업적을 딛고 일어서는 과정을 계속 해야 하는데.. 점점 한문은 매우 고난이도의 기술언어처럼 자리잡고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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