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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GM-79의 삼국사기 이야기

삼국사기에서 두번재로 격정적인 대목.. 본문

삼국사기학 개론

삼국사기에서 두번재로 격정적인 대목..

짐순 폰 데그레챠프 2014. 4. 9. 15:10

삼국사기를 읽는 이들의 불만 중 하나가 글의 세밀함이 적다는 것에 있습니다.

중국 정사나 자치통감, 또는 일본 6국사와 비교해도

기록의 세밀함이 떨어지고 내용 서술이 빈약한 곳이 많습니다.

그 이유를 들자면 삼국사기가 12세기에 편찬되었다는 것,

신라의 기록만 압도적으로 살아남았고

이러저런 전란과 혼란기를 거치며 살아남은 기록이 적다는 것을 생각할 수 있겠지요.

(또, 누구는 신라위주의 기록이란 욕을 하겠지..)

거란의 침입 덕분에 고려 초기의 기록조차 많지는 않습니다.

하물며 그 이전 시기야 더 말할 게 있겠습니까.

또 하나는 김부식이 고문파였다는 것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고문파라고 전보에 적는 글을 선호한 건 아니지만

잡다한 수사를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원고지 매수는 많이 줄었지 싶습니다.


그런데 이따금 삼국사기의 문장이 자신을 주체 못하는 말처럼 뛰어오를 때가 있습니다.

전장에서 자기를 던지는 인간군상의 이야기에 이르면

문신들이라 할지라도 그 붓에 힘이 실린달까요?

창강 김택영은 열전 중에서 가장 이질적인 온달전에 가장 높은 점수를 주었습니다.

그 영향인지 국문학계에서 온달전은 별도의 대접을 받지요.

그러나 짐순이에게 최고의 백미를 꼽으라면 관창전을 꼽을 것이고

한 챕터를 택하라면 관창전이 들어간 열전7을 들 것입니다.

맨 처음 관창전을 읽을 적에 그만 엉엉 울어버렸어요.

애국이니 충성이니 하는 것을 떠나

고문의 맛은 이런 것인가 싶을 정도로 한 글자, 한 글자에 

갖은 인간의 감정을 담은 것이 느껴졌거든요.

어른들이 말하는 80년대 신문에서 행간을 읽으라는 게 뭔지를 이해하게  되었어요.

부드럽게 이어지지 않고 뚝뚝 끊어지는 문장인데

그 사이에 벌어지는 모든 것이 하나하나 느껴진달까..

사기에서 형가가 강을 건널 적에 머리카락이 솟았다는 대목이나

항우가 해하에서 패하고 도주할 적에 

농부가 '왼족으로, 왼쪽으로' 외쳤다는 대목만큼이나

격정을 꾹꾹 눌러 버려 더욱 넘치게 하는 글이 나오지요.

그 짧은 문장이 던져주는 것은 만만치 않았어요.


삼국사기47, 열전7, 눌최전..


조만간 다룰 기록이지만 미리 한 번 인용해보죠.

오늘은 국편의 번역입니다.


"봄날의 따뜻한 기운에는 초목이 모두 꽃을 피우지만, 추위가 오면 오직 소나무와 잣나무만이 늦게 낙엽진다. 지금 외로운 성에 구원이 없어, 날로 대단히 위험해지고 있다. 지금이 진실로 뜻있는 병사와 의로운 사람이 절조를 다 바쳐 이름을 날릴 수 있는 때이다. 너희들은 장차 어떻게 하겠는가?”라고 하였다.

- 삼국사기 47, 열전7, 눌최전


짐순이가 논어에서 가장 좋아하는 대목인 

날이 추워진 연후에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뒤늦게 시듬을 안다

歲寒然後 知松柏之後彫也(자한편)의 변용입니다.

그냥 이 문구만 외웠다면 진부한 충성담이 되었을 겁니다.

그러나 이 문장 앞에 펼쳐진 현실은 참혹합니다.

압도적인 병력으로 방어선이 계속 뚫려 잃을 것 다 잃고

외로운 성 하나에 고립되어 악전고투를 벌이는 상황입니다.

그나마 전황을 역전시켜줄 것 같았던 지원군,

(무려 상주정, 하주정, 귀당, 법당, 서당의 5개 군단)

이 馬多朴家놈들은 백제군의 형세를 보고 속된 말로 쫄아버려 돌아갑니다.

마지막 희망마저 사라진 지금,

이제는 항복해도 안받아줄 것 같은 최악의 상황에서

지휘관이 살아남은 병사들에게 한 말입니다.

어느 주점에서 일개 아가리파이터가 개똥철학으로 내뱉는 말이 아닙니다.

결국 이 외로운 신라병사들은 남김 없이 죽음을 맞이합니다.


열전7은 바로 이런 치열한 곳에서 목숨을 내놓은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정말 최전선의 지옥을 뚤고 지나가는 기분이랄까요?

이상하게 영상에서 조금만 잔인한 것이 나와도 보지 못하는 체질이기도 하지만

만들어진 영상에서 일부러 리얼리티를 강조하는 것에 공감을 느끼지 못합니다.

(프런트미션인가 만화판 1권을 보니 만들어진 진실의 억지모방에 구역질이 나더군요)

정작 많이 축약된 옛 문장 속에서 전율을 느끼니

어쩌면 문자페티시일런지도 모르겠군요.


아마 이어지는 삼국사기 읽기는 당분간 열전7을 중심으로 진행될 것 같군요.

문제는 그동안 꼬불쳐놓은 주제를 먼저 한 번 건드리느냐 미루느냔데

마침 지금 오자키 유타카의 15세의 밤을 듣고 있어

고민이 됩니다.

정말 오토바이를 훔쳐 타는 15세의 밤에 전혀 다른 고민을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라..


말꼬리--------------

오자키 유타카의 15세의 밤 영상은 덤.

19세의 짐순이는 지온군 순양함을 훔쳐탑니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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