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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GM-79의 삼국사기 이야기

신라의 신분적 폐쇄성, 그리고 근친혼.. 본문

한국고대사이야기/사건과 진실

신라의 신분적 폐쇄성, 그리고 근친혼..

짐순 폰 데그레챠프 2013. 11. 21. 10:51

얼마전에도 이와 관련한 글을 쓰다가 지워버렸습니다만

다시 쓰게 되네요.


삼국시대의 신분제를 연구하는데 있어 신라의 비중은 막대합니다.

네, 그럴 수 밖에요.

신라 자료가 차지하는 비중이 엄청나기 때문이죠.

그래서 종종 한국고대사의 신분제를 신라의 골품제로 들어 설명하는 것을 봅니다.

틀리지 않아요.

고구려나 백제의 신분 역시 그러한 길을 걸어간 것은 맞거든요.

그래서 삼국시대의 신분제를 이야기할 때 골품제적 신분제라고도 부릅니다.

문제가 되는 것은 골품제가 

한국고대사회를 이야기하는 핵심 키워드라는 식의 인식입니다.

골품제라는 것이 신라의 신분제이고

어느 사회나 세세하게 신분 또는 가격家格(價格이 아닙니다)으로 나누긴 합니다.

조선시대에도 양반이래도 떵떵거리는 벌열가문이 있고 

평민보다 못한 처지에 놓인 잔반도 있습니다.

또 벡제만해도 후기에 대성팔족이라 해서 대 귀족 8가문을 이야기하지만

그 안에서도 은근히 레벨의 차이란 건 존재합니다.

그런 서열나누기로만 본다면 골품제가 삼국시대, 

더나아가 한국고대사의 가장 핵심 키워드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많은 분들이 간과하는 것이 있지요.


고구려나 백제는 왕족이 아닌데도 대귀족이 나올 수 있었지만

신라는 오로지 김씨들만 다 해먹은 나라라구요.

귀족이라 부르던, 지배층이라 부르던 진골이 다 독차지한 나랍니다.

6두품도 아래에서 보면야 천상의 신분이지만

실제로 그들이 할 수 있는 건 매우 제한적입니다.

종종 통일신라의 체제를 북한에 비유하지만

북한조차도 김일성과 그 친인척의 후손들이 모든 것을 장악한 것은 아니죠.

하지만 신라는 철저하게 분리해내고 

극소수의 사람들이 모든 것을 장악합니다.


앞서 진성왕 이야기에서 폐쇄적인 결혼, 

그리고 특이한 유전에 대해 이야기 했습니다.

발굴조사에 의한 정밀 분석이라도 벌어지지 않은 이상 

확실하게 이야기할 수 없겠지만

그렇게 폐쇄적인 신분제를 구성해버리면

결혼을 할 수 있는 대상 자체가 확 줄어듭니다.

적어도 수백명은 되었을 왕족이라 하더라도

(조선이 망할 때 왕족이 10만 단위가 넘었다지만 그건 먼 방계까지 포괄한 것이고

신라의 골품제같은 시스템은 좀 멀어지면 떨어지는 시스템입니다)

그 중에 반은 동성, 그 남은 사람들 중 반은 노인과 미성년자,

거기서 또 기혼자를 제하고 나면

결혼적령기의 이성 자체가 몇 없을 겁니다.

또 그 중에서도 정치적 입장이 다르면 로미와 쥴리엣이 되는 거고

끝물 타고 있는 집안과 혼인을 하면 자신도 같이 격떨어지는 거고

얼굴을 따질 여유는 커녕 자신의 성과 반대이기만 하면 되는 상황일 겁니다.

그나마 각기 다른 혈통의 귀족들이 존재하면 그나마 나은데

만약 신라처럼 그렇게 폐쇄적으로 신분을 묶어버리면

정말 근친혼만 해야한다는 것,



다시 앞 글의 계보도를 끌고와 봅시다.

흥덕왕의 사후 후계자로 균정이 지목되었는데

인겸계와 일부 예영계(헌정계)가 합쳐서 균정을 죽이고 희강왕을 올립하죠.

그리고 희강왕을 옹립해놓고나서 바로 민애왕이 희강왕을 죽이고...

균정의 아들과 손자들이 장보고와 힘을 합쳐 민애왕을 죽이죠.

헌정계와 균정계는 원수지간이 됩니다만

나중에 희강왕의 손자 경문왕이 헌안왕의 딸과 결혼하죠.

(그것도 자매 덮ㅂ.. 그런데 촌수로는 할머니 항렬이라는 게 개그)

뭐, 두 가계의 화해이라는 측면에서 보는 게 합리적이겠지만

남자가 없고 어린 달만 있는 균정계의 고민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합니다.

후대에 유교 사대주의자라는 욕을 수백년째 먹는 김부식이지만

근친혼에 대해 사론 하나로 끝내버린 이유는 여기에 있을 것입니다.

물론 고려도 초기 왕계는 근친혼 투성이라 할 말도 없지만

근친혼이 도덕의 붕괴로 인한 일탈행위가 아니라

폐쇄적인 신분제에서 취할 수 있는 유일한 대책임을 이해하고 있었다는 것이죠.

다른 핏줄은 다 아래 신분으로 떨어뜨려놓은 마당에

그 핏줄과 결혼을 한다?

정말 순진하기 그지 없는 이야기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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