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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GM-79의 삼국사기 이야기

아직도 살수대첩은 수공인가... 본문

한국고대사이야기/사건과 진실

아직도 살수대첩은 수공인가...

짐순 폰 데그레챠프 2014. 6. 16. 15:49

며칠 전에 아는 중딩과 이야기를 하다가 살수대첩을 수공으로 가르쳤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교과서에 있다는 겁니다. 엥?


이웃나라 북해도 어느 식당에서 근무중인 T모양의 반응..


마침 교과서를 가지고 있길래 한번 펴보자고 했더니 그런 얘긴 없어요.(교과서에는 없어!) 다시 물어보니 선생님이 수업시간에 그렇게 말했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이 누나가 공부해봐서 아는데 그거 틀린 거임"  이런 말을 해주었습니다.


좀 오래전에 그렇게 친절하진 않지만 여기에 대해 글을 쓴 적이 있긴 합니다.

아무래도 짐순이가 건축이나 물에 대한 지식이 너무 부족해서 그렇게 구체적인 논증이 있는 건 아닙니다. 다시 읽어보니 손대야할 것 투성이네요.(혹시? 짐순이는 글감이 떨어질 것을 대비, 개판으로 쓴 건 아닐까? 에이~ 그럴리가... 연방군의 양산형 모빌슈츠가 그렇게 정밀할리 없어!...요)


위의 글 도판의 재활용. 짐순이는 알뜰살뜰하기도 하지..


하여간 누군가 한 번 이상한 이야기를 해놓으니 그게 어느새 역사적 믿음이 됩니다. 수공이라는 게 서기 600년대 초, 7세기 초반에 그렇게 쉬운 것이었다면 지금은 21세기, 3대째가 다스리는 어느 신정국가에서 남쪽의 적대국 수도를 일거에 쓸어버려 물 위로 올라오는 건 산 밖에 안남을 물바다작전을 실행에 옮겼겠지요.(하지만 그들도 3대째 물 대신 불바다를 만든다고 뻥카만 날리잖아.. 풋~)


저게 아니라고 이야기해주니 그 중딩은 다른 책에서도 그렇게 말했다고 이야기합니다. 눼, 알아요. 짐순이도 그런 책 몇 권 가지고 있지요. 그런데 또 다른 짐순이가 가지고 있는 책, 그러니까 삼국사기, 수서, 북사, 자치통감, 그 시대의 사실을 기록한 책 어디에도 수공 이야기는 없습니다. 설마 113만 명 동원해서 요동성 하나 못 깨먹고 30만명을 수도로 보내 2천 7백명 겨우 귀환했다는 걸 다 기록에 남긴 듕궉 애들이 수공으로 졌다는 말은 족팔려서 누락 시켰을리가요. 더욱이 수서나 북사는 다 당 초기에 쓴 것이거든요. 전왕조의 실책을 크게 부풀려야 자기 왕조의 정통성이 설 것이고 100만 동원해도 못 깨버린 성을 기록상 10분의 1, 아마 실제로는 5분의 1 병력으로 단 번에 함락시키고도 모자라 고구려의 요하방어선을 쑥밭으로 만든 당태종이 겸손을 떨었을리가요.. (게다가 수서나 북사 이런 전시기를 다룬 정사 대부분이 태종 때 완성. 더욱이 당태종은 그런 역사적 겸양과는 거리가 멈)


그런 소릴 지껄이는 책을 볼 때마다 석양을 등지고 손에는 무시무시한 걸 쥐고서, "거짓말"을 외친달까나, 까나?


윗 글에 올린 삼국사기 기록을 (또 재탕으로) 올려보지요.

평양성이 험하고 튼튼하여서 갑자기 함락시키기 어려운 것을 헤아리고, 마침내 그 속임수에 따라 되돌아갔다. [우문]술 등이 방형의 진을 이루고 행군하였는데, 우리 군대가 사방에서 습격하니 [우문]술 등이 한편 싸우며 한편 행군하였다. 가을 7월에 [수나라 군대가] 살수에 이르러 군대의 반이 건넜을 때 우리 군사가 뒤에서 후군을 쳤으므로, 우둔위장군 신세웅(辛世雄)이 전사하였다. 이리하여 여러 군대가 모두 무너져서 걷잡을 수 없게 되어 장수와 사졸들이 달아나 돌아가는데, 하루낮 하룻밤 사이에 압록수에 이르러 450리를 행군하였다. 
- 삼국사기 권 20, 고구려본기 8, 영양왕 23년


가끔 인터넷에서 전쟁사관련 논쟁글에서 종종 군인들의 사기와 보급, 급박한 상황에서의 전투공황 문제를 생각안하고 마구잡이로 우기는 사람들을 종종 보는데요. 그런 분들이 저 이야기를 할 때, 저 문장만 제대로 읽었어도 수공이 아니라면 30만이 일거에 탈탈 털릴 수 없다고 주장 못해요. 정말 보급이 끊기고 적진에 고립된 상황에서 일각이 무너지자 순식간에 붕괴하는 패턴 그 자체거든요. 춘추전국시대, 펠로폰네소스전쟁 시절 이후에 수 없이 반복된 패배의 한 사례죠. 실제로 사상자의 상당수, 때에 따라 절대다수가 바로 이런 공황상태에서 벌어졌지요. (뭐, 로마병사들 중 등에 상처난 이가 거의 없었다는 칸네에 전투가 오히려 보기 드문 예지요. 정말 힘과 힘이 마주쳐 박살난 참 보기드문 전투라능. 역사상 가장 유사한 결과를 냈다는 탄넨베르그 전투도 러시아의 궤주로 더 많이 죽었는데)


이거 누가 이런 뻥카를 하나 날린 것이 후대의 역사인식에 해를 끼친 사례라 씩씩대기엔 오늘도 어느 게시판에서 또하나의 살수가 만들어지고 있다는 거. 정말 아무 생각 없이, 아니면 어설픈데다 교란된 기억력이 사료가 되어 @#는 $%라는 이야기가 수도 없이 만들어지고, 퍼지고 있어요.


강원도의 모 교대(하나 밖에 없잖아!!!)에서 짐순이가 엉금엉금 기어다닐 적에 어떤 강사가 환단고기가 사실이라는 소릴 했다고 들었지요. 그 말 한 사람을 만날 기회가 있었는데 솔직히 이러고 싶었어염.


내여귀에서 가장 통쾌한 장면. 참고로 여기에 대한 논평은 http://daznyang.tistory.com/74


미래의 선생님들에게 그따위로 가르치냐? 엉? 앙! (하지만 짐순이는 조신한 소녀라... 퍽!)


말꼬리 --------------------

1.

김원룡 선생님이 을지문덕은 귀화인일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가 맹폭을 받으셨는데 요즘 생각해보면 아주 틀린 말은 아닌 것 같습니다.

2

솔직히 안시성 전투의 승장이 양만춘이라는 것도 신뢰도가 떨어지는데 이젠 수문제의 침입을 강이식이 물리쳤다고 주장하는 분들 보면.. .

3.

아마 1&2의 발언으로 짐순이는 또 모 총리 후보자랑 동급으로 불리겠지..

4. 

저 논평의 링크 : http://daznyang.tistory.com/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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