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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GM-79의 삼국사기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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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고대사이야기/고대사 잡설

북한 논문 이야기..

짐순 폰 데그레챠프 2014. 3. 19. 19:37

주변에 고고학 하는 분들이 좀 있고, 짐순이도 고구려에 관심이 많다보니

이래저래 자료를 찾다보니 북한 물건을 건드리는 일도 종종 있습니다.


공지 : 

1. 

이 글은 부카니스탄을 찬양고무하기 위한 글이 아닙니다.

(차라리 그 시간에 "밤에도 일하는 병동"을 찬양하는 게 정신 건강에 좋습니다. 

나의 렌이, 나의 렌이...!!)


2. 

사상이나 정치적 문제를 다룬 북한 문헌은 여전히 취급에 제약이 있지만

인문학같은 현실 정치에 '덜 위험한' 책은 유통될 정도로

대한민국 사회도 나름 어른스러워졌으니

공연한 빨간 알레르기 발동하진 마세요.


그러다보니 재미난 것을 많이 보게 되는데 그 중에 몇 가지만 이야기하죠.


과거에는 고구려나 발해, 또는 고조선지역 고고학을 공부하는 일은 

매우 어려웠다고 합니다.

부카니스탄과  듕궉 모두 적대국가였으니 우선 현장을 볼 수가 없습니다.

가려고 하면 아예 못돌아올 각오를 해야하는 거죠.

그건 그렇다쳐도 (사실 그건 당연한 것이죠)

그러면 현장감을 포기하더라도 자료라도 구해볼 수 있어야 하는데

적대국가의 문헌을 보는 게 쉬울정도로 한국이 유연한 국가가 아니었다는 겁니다.

물론 답답하지만 나름 타당해보이는 이유도 있었습니다.

한국은 전혀 안그렇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대놓고 통치자의 인식이 연구자들의 인식을 규정하진 않거든요.


실제로 부카니스탄에서는 50~60년대 초 주체사상의 구축 이전에

이미 목숨을 건 학술대결투가 여러차례 벌어집니다.

고대사 부분 같으면 삼국시대를 고대 노예제로 볼 것이냐

중세 봉건제로 볼 것이냐라는 논쟁이 벌어졌는데

중세 봉건제론이 승리하고 

고대 노예제는 고조선-진국단계에 국한되는 것으로 결론이 나서

고대 노예제론 주창자들은 스리슬쩍 사라져갔습니다.

(물론 농/공장으로 갔지, 닭고기 분쇄기로 끌려간 건 아니라능..)

고고학쪽에서도 원래 유학까지 다녀온 전공자들 

거의다 부카니스탄으로 갔는데

도유호나 한흥수같은 이들이 그 과정에 연구자의 명단에서 사라졌습니다.

듕궉은 이 정도로 노골적이지 않았지만

그래도 당과 지도자의 생각이 강하게 배여있지요.

(아! 문화대혁명이 있었으니 듕궉이 더 파워풀했군요 ;;)

두 국가의 정체나 이념면에서 적대적인 국가가 그걸 보기도 함 여렵긴 합니다.




1994년에 나온 "조선기술발전사 2-삼국시기,발해,후기신라"의 머리말입니다.

앞의 굵은 줄은 누군가의 교시 어쩌구로 시작하는 북한 책의 전형적인 서문이죠.

단적으로 부카니스탄 술탄 3대 중 하나가

"세일러 머큐리는 웨딩 피치야"라고 하면 

세일러 마스의 출연작은 리리카 SOS가 되는 나라의 현실입니다.

(요즘 애니로 처음 본 뉴비들을 위해 첨언하자면

호무호무가 마마마가 아닌 유루유리에 나온다는 얘기임)

'그거 세일러문인데여'라고 했다간 다음날 공식기록에서 사라지는..

90년대 나온 책이고 그 시점에 들어온 책이라

저 부분 전체가 통편집 되기도 하지만 이처럼 이름만 지우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21세기 들어서 그냥 있는 그대로 보여주기도 하죠.

하여간 과거에 한국사연구회의 한국사연구입문 2판의 표지가 빨갛다는 이유.

그리고 한국역사연구회로 착각하였다는 이유로

군대에서 소지자가 곤역을 치뤘다고도 하고

(문제는 그 한국역사연구회도 전혀 그런 단체도 아님!!

반세기 다되가는 한국사 대표학회나

이제는 중견이된 소장파연구단체도 구별 못하던 걍 무식한 소리..)

지난 정권에서 국방부 지정 불온도서 목록이 정해지기도 하였지만

그래도 과거에 비해선 부카니스탄에 대해 자신감이 생겨난 건 사실입니다.

실제 복사본 말고 진짜 북한 출판물 보면 한심한 것이

옥수수 수염으로 만든 종이에 찍다보니

앞장의 글자가 뒷면에 그대로 비쳐줘서

복사를 해보면 분명 단면 복사를 했는데

입체 복사(?)가 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학술지 만들 종이도 없는 나라가 무섭다면 그것도 참 소심함의 극치죠.


그리고 제목도 문제가 되긴 했습니다.

요즘 중국은 공정이라 말을 쓰지만 과거에는 공작이란 말을 했습니다.

무슨 문화 연구를 @#문물공작 이런 식으로요.

그러니 대만을 거쳐 책을 어렵게 구해오더라도 

공항이나 항만의 공안담당과 얼굴을 맞대야 하는 일이 종종 벌어졌죠.

북한도 중국과는 조어다 다르지만

꽤나 전투적인 용어들을 남발하는지라

전문연구자가 아니면 당연히 오해할만한 제목을 떡하니 달고 나옵니다.

차라리 고구려는 중원고구려비라도 나왔지

아예 영역도 안겹치고 상대적으로 소수민족이던 

발해사 연구자들은 문헌목록 만드는 것조차 힘들었다고 합니다.

공부하는 입장에서는 속상할만한 일이었지만

나름 시대가 그랬다고 하니 그걸 막은 사람들 입장도 이해는 됩니다.

(여기서 이해는 논리 프로세스를 이해한다는 거지

가치판단의 측면에서 용납한다는 건 아닙니다)

특히나 고구려사를 처음 개척하던 분들은 

일본을 통해 겨우 양념이나마 맛볼 수 있었죠.

몇몇 분들은 아실 고구려고분벽화라는 책도

일본에서 출판된 것을 들여와서 구경한 겁니다.

한국어로 된 책을 보는 것은 90년대 이후에나 가능해졌습니다.

그 이전의 책을 보면 일제시대에 내놓은 책의 도판을 이용한 경우가 많아요.

(품질은 최근 부카니스탄의 책보다 그시절 일본책이 더 좋음... 아놔..)


북한과 개성공단, 금강산 관광이 되던 시기에

북한 자료가 쏟아졌습니다.

북한자료만 전문적으로 다루는 출판사가 생겼을 정도죠.

지금도 어떤 책은 교보나 영풍에서도 구할 수 있고

또 정식 계약을 맺어 출판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현장감이 떨어지지만 뭐가 있다 정도는 알 수 있게 된 겁니다.

동북공정 이전에 이미 그런 자료를 접하며

자생적으로 연구인력이 싹을 틔우고 있었죠.

(그런데 동북공정 덕에 이사람 저사람이 달려들어 

정작 연구자들이 자생적 성장을 하는데 악영향을 끼쳤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이야 엄두도 못내지만 여러 루트를 통해

연구자들이 실제 유적을 가볼 수도 있게 되었고

이를테면 한국전쟁으로 사라졌다고 생각한 

황초령비, 마운령비가 잘 남았음을 확인한다거나

일본 자료로만 보던 평양석 석각이나 

오매리 절골에서 발견된 금동명문 같은 중요 자료를 확인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됩니다.

가장 중요한 건 

부카니스탄이 한국의 역사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자체를 이해할 수 있었다는 것이죠.

최소한 사랑으로 감싸안던, 미워하고 타도하던

뭐 정확히 알아야 제대로 할 것 아닙니까.


하여간 그런 점에서 자료들이 들어오니 참 재미난 게 발견됩니다.

책이던 논문이던 앞머리에

부카니스탄 술탄 만만세가 들어가지 않으면 글이 성립 안됩니다.

부카니스탄에서 가장 대표적인 역사연구 학술지인

"력사과학"에서 광통신 케이블을 이용하게 된 건 

1대 술탄의 덕이라는 제목의 논문을 봤을 때

이게 뭐하는 건가란 생각이 들었어요.

뭐, 나름 신정국가니만큼 저럴 수도 있겠구나란 생각이 따라왔지만

어떻게던 저들과 함께하는 날이 올 때

머리 좀 아프겠구나란 생각도 들었습니다.

이거 종교경전을 읽는 건지, 학술문헌을 읽는 건지.. 참..


단행본은 제약이 덜한데

잘먹고 살기가 힘들어지기 훨씬 전부터

북한의 논문은 글자수의 제약이 있었습니다.

(이른바 고난의 행군 이후에 돈이 없어 생긴 관습이 아니란 거죠)

어떤 논문이던 주제를 막론하고 모두 쪽수가 같습니다.

도면이 많이 들어가는 고고학 논문이던, 

글만 실린 일반 역사논문이던 정말 칼같이 장수가 일치하더군요.

가장 마지막까지 보던 조선고고연구의 경우 8쪽이었던가?

솔직히 그 공간에 언제 검토하고 논증하는가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거 사륙변려문 쓰는 것도 아니고요.  


일반적인 한국의 역사학 관련 학술지가 

대개는 신국판(맞나?), 4X6배판이라면

이분들 학술지는 B5 크기의 2단 편집으로 글씨가 빡빡하죠.

단행본은 좀 작습니다만..

2대 술탄 시대부터 종이/인쇄가 더욱 조악해지고

휴간(이라지만 ㅃㅃ)되는 것도 많아지고

앞서 말한 옥수수종이 책도 나오더니

더 줄어들었습니다.

더욱이 부카니스탄과의 관계가 매우 나빠진 관계로

더욱 보기 어려워지고 있지요.

거기엔 발굴자료같은 거 아니라면 굳이 볼 필요가 없게된 상황도 작용합니다.

북한역사학 분석같은 걸 하지 않는 한

그걸 봐서 연구자들이 얻을 수 있는 것이 없다는 거죠.

또 신선함조차 사라진 측면도 있습니다.


한국의 역사학계가 

리리안 여학원처럼 소녀들의 따뜻한 공간으로 가득찬 것은 결코 아닐 겁니다.

그렇지만 똑똑한 사람들이 죄다 올라갔다는 인재풀을 가지고

부카니스탄이 사상으로 제약가하고 숙청하고 하는 동안

(사회주의 국가들이 헤겔의 아시아적 생산양식 등을 이어받은 것도 한숨 나오는데

어느 신정국가는 그 인재들 키우지도 못하고 역사관을 더 개악하였지요. 에휴..)

더 열악한 상황에서 시작한 한국의 역사학이 

이만큼 발전한 게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말꼬리 ------------------------------

조선고고연구의 대동강문명 특집호를 읽다보면 

이걸 환빠님들이 읽으셔야 하는데..란 농담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짐순이는 4대문명설 고수하는 한국과 일본이 덤이라면

5대 문명설을 주장하는 저 신정국가는 덤의 최상급을 붙여줘도 부족하달까..

4대문명설을 고수하는 것도 문제인데 5대라니..

차라리 지금 세계는 스즈미야 하루히가 재창조한 세계라고 믿거나

이데온이 포맷하고 다시 생겨난 우주라고 믿는 것이

덜 유해합니다.

(하루히는 예쁘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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