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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GM-79의 삼국사기 이야기

2015년에 여는 글, 반지성주의와 수도원의 지하서고.. 본문

역사이야기/역사잡설

2015년에 여는 글, 반지성주의와 수도원의 지하서고..

짐순 폰 데그레챠프 2015. 1. 2. 20:40

제목에 들어간 저 단어, 반지성주의反知性主義Anti-intellectualism는 사람들에 따라 달리 읽혀질 것입니다. 아주 간결하게 설명하자면 현재의 지성계를 부정하는 움직임이죠. 이미 1980년대에 중세가 돌아오고 있다고 주장한, 그래서 다시 수도원 지하의 곰팡내 나는 서고를 다시 세워야 한다고 주장하던 이에겐 심각한 단어입니다. 또 어떤 이들에겐 그게 뭐 그렇게 대단한 거라고 난리들이여..라고 말할지도 모릅니다. 무엇에 가치를 두느냐, 현재를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입장은 다를 겁니다. 뭐, 짐순이는 수도원의 지하서고를 생각하는 쪽에 속해있긴 합니다. 


여기저기 설명하는 반지성주의의 설명을 읽고 있다보면 이게 꽤나 그럴듯한, 매우 잘 다듬어진 것 같은 착각을 주는데 사실은 어느 시대나, 어느 대륙에서나 흔하게 벌어진 공기같은 일이고, 또 지금도 여기저기서 각기 다른 형태로 일어나는 겁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불상이 파괴되고, 현재 이슬람국가라는 곳에서 벌어지는 일, 과거 폴 포트 치하의 캄보디아에서 안경을 쓰고 있다는 이유로 서구물을 먹었다며 죽임을 당한다거나, 아니면 이상한 사람들만 찬양하는 부카니스탄 왕국에서 한국의 삼국시대가 고대사회였느냐 중세사회였느냐를 두고 토론을 벌어 패한 고대론자들이 숙청된다거나..하는 일이 벌어졌고 벌어지고 있는 중이죠.


한국에서는 그러한 일이 없었는가? 적어도 고대사에 한정한다면 단어만이 생소했을 뿐, 전혀 새로운 현상은 아닙니다. 마치 산소라는 명명이 붙여졌다고 해서 그 때부터 산소가 존재한 게 아니듯, 명명만 안했을 뿐이지 마치 윈도의 보안업데이트 담당부서처럼 맨난 시달리고 있었으니까요.


좀 더 과거에는 아버지 가카 시절에 은연중에 강조된 국수주의 사관의 공격이 있었지요. 관동군의 대륙 침략 구호인 웅비라는 단어를 사용하며 현재 한국역사학이 틀려먹었다는 주장을 벌이며 공격을 가했지요. 그게 7080연간에 나타난 국사교과서 논쟁, 상고사 논쟁이죠. 어떤 학자들은 국회에 나가서 단군조선 이야기가 사실이냐는 질문을 받아야 했고, 80년대 벌어진 상고사 세미나에선(현재 한국학중앙연구원의 전신인 한국정신문화연구원 주최) 현재 원로가 된 어느 중견연구자가 화끈하게 인신공격을 당하기도 했지요. 그 때의 속기록을 보면 중국의 문화대혁명 초반 분위기의 다운그레이드 버전입니다. 그렇게 생성된 상처 위에 환단고기가 칼을 꽃았지요.


과거의 반지성주의가 나름 자기만의 논리가 있고, 근거사료가 있었다면, 이 블로그에서 종종 이야기 하듯, 현시점의 움직임은 겉은 화려한 퇴보에 가깝습니다. 점점 내뇌망상이 깊어진달까. 잠시 발을 걸쳤던 입장에서 봐도(짐순이도 나름 극렬환빠였지 말입니다) 저쪽에서도 1세대들이 은퇴함에 따라 뒷 세대가 이어가야 하는데, 오히려 역량이 떨어지는 이들이 나섬에 따라, 또 90년대 전반의 통신, 90년대 후반 인터넷의 보급에 따라 저마다의 섬을 만든 환경이 나왔죠.


여기서도 한국사회의 고질병 하나가 나옵니다. 타자에 대한 개인적 상상이 실제라고 인식하는 상황. 그렇게 반미를 외치면서도 정작 미국의 생리를 이해하려 하지 않은(물론 본인들의 선언적 발언이 공산당 선언만큼이나 중요하다던가 실질적 연구라고 착각하고 있겠지만), 아니면 성조기를 흔들면서 God bless America를 외치는 이들도 한미동맹의 기본 속성을 이해하려 하지 않는 것처럼. 그냥 선언적 발언을 연구와 동일시하며, 그것을 세상의 악이 가려놓은 진실이라 착각하는 인지부조화가 벌어지지요.

 

그런데 시대에 따라 이런 모습에도 차이가 있습니다. 국수주의 사관 시절에 배양된 이들의 눈에는 아직도 한국의 역사학은, 특히 고대사는 식민사학의 잔재인 겁니다. 그리고 소위 강단사학이라고 멸칭하는 분야에 발을 걸치고 있는 자들은 일제가 명산, 명당에 박아놓은 쇠못같은 존재라고 여기는 거지요. 그러니 그런 이들에 대한 싸움은 성전이 되는거죠. 그 이후세대는 좀 달라집니다. 전세대가 나름의 논리를 갖춘 제2의 독립운동이라면 말이죠.(물론 그들의 입장에서 말입니다)


요즘의 움직임은 억압된 교육(지들은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라고 외쳐놓고, 지들도 안했을 수준의 공부를 애들에게 강요하는 걸 보면 솔직히 토나오지요. 역겹다구~ 웩웩..)에 찌들고, 이래저래 생각항 여유를 허락받지 못한 상황에서 성장한 아이들의 움직임이죠. 어디선가 고등학교 때까지 암기식 교육을 받다보니(영수에 비해 사회시간의 수업시수가 길지도 않으면서 할 건 제일 많습니다) 교과서적 역사를 이야기하는 사람은 적으로 보였다는 얘기를 실제로 들은 적이 있습니다. 인터넷이라는 열린 공간의 익명성에 기대어 자기가 잠시 들여다 본 부분이 전체가 되기도 하고, 또 검증과 토의의 비율이 부족한 인터넷 자료의 특성상 이것이 누적되면서 새로운 사실의 창조도 더 쉬워졌지요. 이게 현대 한국의 반지성주의의 토양입니다. 어설프게 모두가 전문가가 되어버린 상황(물론 책임지지 않는 일부 진짜 전문가들도 비료를 준 거져) 일베는 그 중에서 가장 극단적인 형태일 뿐입니다. 팩트를 외치지만 정작 팩트가 아닌, 마치 1980년대 민주주의와 자유라는 단어가 가장 많이 실렸던 매체가 프라우다였다는 역설이 다시 살아난 거죠.


그냥, '~노'라는 접미사가 붙는 경상도 사투리가 나왔다고 해서 사람들은 낙인 찍기 바쁘지만(부카니스탄 덕분에 동무라는 어휘가 사라진 아빠가카 시대도 아니고) 정작 이런 배경의 흐름에는 다들 무관심하죠. 요즘 현대사에 대한 공격들을 보며, 우린 진작에 다 겪은 일이라고 회상하기엔 상황이 좋지 않습니다. 사실 그 바닥 지분의 가장 큰 부분은 여전히 고대사니까요. 


그러나 우짜겠습니까. 이 군소블로거가 바꿀 수 잇는 건 그리 없습니다. 그나마 가까이 있는, 하루 100명 남짓 들러주시는 분들의(상당수는 서피스와 똥파이브F-5, 울진다방, 처제야설이라는 검색어에 이끌리신 분들이지만요) 일부에게 이야기하는 게 전부입니다. 세상은 미쳐도, 정신적 좀비세상이 되어도 우리만은 미치지 말자. 이러는 거요. 그저 가지고 있는 자료나 생각이 살아남을 수 있기를 바랄 뿐이죠. 그게 어쩌면 바다 건너에서 이야기하는 수도원의 지하서고랑 맥이 닿아있는 것일 겁니다. 뭐, 윤봉길 의사가 국내에서 야학을 운영할 때 썼다는 농민독본의 글을 고쳐서 끄적거리자면 수도원의 지하서고는 이런 생각을 담고 있을 겁니다.


인문학도는 인류의 나아갈 길을 그 손에 잡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 돌연히 무지와 오만의 바람이 불어 하루 아침에 인문학이 자취를 잃어버렸다 하더라도 이 변치못할 진리의 열쇠는 지구상 어느 나라의 인문학도가 잡고있을 것입니다.



말꼬리 ----------------------

1.

부카니스탄의 저 논쟁은 헤겔-맑스(어느 선생님에 따르면 마륵스)-엥겔스로 이어진 서구 중심의 경제단계 인식에 레닌과 스탈린 언저리에 생겨난 아시아적 생산양식이란 사생아가 버무려진 것의 마지막 불꽃인데, 서글펐던 것은 그 전제가 되는 노예제가 동앙에서는 성립되지 않는다는 것이죠. 주인의 물건, 말할 수 있는 인간 이하로서의 존재인 노예와 동일시 하기엔 동양의 노비는 그야말로 천민, 사람 중에 등급이 낮은 자였다는 차이가 있습니다. 정말 화성인 앉혀놓고 얘가 오징어인가 문어인가를 다투던 형국!

2. 

오늘의 짐순이는 수도원의 서고를 만들려고 했었지만 과거에는 저쪽이었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


이 발언도 많이 순화된 겁니다. 북조선TV의 그 할마이보다 격하면 격한 아이였지요. 쩝. 정말 무덤 속의 부식옵하가 엉엉 울으셨을 발언도 많이 했어요.

3.

뉴스페퍼민트에 재미난 기사가 올라왔습니다. 사실 반지성주의 때문은 아니었지만, 중세이즈커밍! 수도원의 지하서고가 필요해!..를 처음 외친 건 미국이었죠. 예전에도 안그런 건 아닌데 요즘 더 심해지나 봅니다.

기사 링크 - 금지도서의 등장, 교육계의 반지성주의

언젠가 헨타이 오지님의 글에 댓글 달아놓은 것에 어느 저능아가 달아놓은 뻘글과 함께 반지성주의를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4. 

서피스나 똥파이브는 그렇다 쳐도 (처제, 형수, 며느리)야설이 이 블로그의 인기 검색어인가..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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