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GM-79의 삼국사기 이야기
철원에 진흥왕 순수비가? 본문
몇년 전에 지인으로부터 철원 고석정에 대한 기록에 진흥왕이 비를 세웠다는 이야기가 실렸다고 들었습니다. 그걸로 뭘 이야기할 수 있지 않냐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뭐 늘 그렇듯, 게으름은 타인의 기회를 낳습니다.(물론 찾아보니 이미 논문이 하나 나왔고, 또 최근에도 하나 나왔습니다)
지금 남북으로 갈라져 있는 상황에 분계선이 하필 철원을 지나고 있어서 상대적으로 주목을 받고 있지 못해서 그렇지, 고대부터 근대까지 한반도의 중요 교통 요지로 자리하는 곳입니다.
현대에는 통일 후 한반도의 교통축선을 서울을 중심으로 K자 형태로 구상하는데, 사실 어느 시대나 한반도의 내륙 육로는 K자였고, 선들이 만나는 곳 중 하나가 철원입니다. 특히나 두만강 하류부터 서울로 오는 길목이기도 하고 영동의 동해안에서 중부로 오는 길목이고, 또 영서 내부를 관통해서 올라가는 길의 끝에 철원이 있습니다. 농담삼아 918년에 왕건이 너무 추운데 눈치우다 빡쳐서 궁예를 몰아냈다고들 하지만, 궁예에게 철원을 가지는 것이 곧 한반도를 아우르는 길이었을테지요.
또 신라의 북진경로상, 황로령이나 마운령 같은 곳으로 가는데 동해안 루트를 타고 갔을 것 같지만, 영서 내륙을 올라가다가 동해안으로 갔다는 설도 있을 정도지요.(갠적으로 동해안이 그나마 군사진로상 덜 괴롭다는 편이지만 아주 부정하진 않습니다. 그때 살아봤어야져)
진흥왕이 순수를 했다면 대개는 555년에서 568년 사이인데, 어느 시대라도 경주에서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곳이 철원입니다. 여기서 김화와 평강을 거치면 평양으로 가는 길입니다. 여기를 잡고 있어야 나중에 치고 올라갈 수 있고, 또 여기를 사수해야 전선이 양분되지 않고 나머지 땅을 지킬 수 있습니다.
뭐 진흥왕의 순수비를 고려나 조선의 비석으로 착각하던 시절도 있었으니까 진흥왕이 비석을 세웠다는 기록이 틀렸을 수도 있습니다. 지금 그 비석이 있어야 찍어보고 응가인지 된장인지 알 수 있는데 어쩔 수 없지요. 다만 여기가 중요하단 인식만 놓치고 있지 않으면 됩니다.
지도는 내일 무언가를 해야해서 급히 만들려던 지도인데, 마침 철원만 복사해 붙여넣기만 하면 되는 거라 금방 만들었습니다. 원래 교통로도 그려야 하는데 그건 태블릿을 꺼내야해서 귀찮네요.(등만 돌리면 있다는 건 안비밀)
말꼬리 ------------------------------
그런데 왜 이 기록을 완당집 펴놓고 암만 찾아도 없네~ 이카고 자빠졌었지요?
정정사항 540204 ----------------------------------
이 글을 쓰고난 후 자료를 다시 보니, 철원을 방문하여 비를 세운 이는 진평왕이라 보는 설이 유력하군요. 비의 물리적 상태를 조사하던 중에 일단 진흥왕순수비들이 현지에서 조달해서 제작한 것이 아니라 경주에서 제작하여 가지고 갔음이 확인된다고 합니다. 그점에서 고석정비는 순수비와는 다른 계통이라 보는 생각은 합리적입니다. 개인적으로는 비석을 세우는 활종이나 중요도로 봐서 여전히 진흥왕에 한표를 던지고 샆습니다만, 일단 위의 글에서 문제가 있으므로 덧붙여 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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