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 메뉴

RGM-79의 삼국사기 이야기

전태일을 생각한다.. 본문

역사이야기/역사잡설

전태일을 생각한다..

짐순 폰 데그레챠프 2021. 6. 2. 12:19

예전에 어느 디자이너 였나, 그 많은 공순이들은 어디로 갔을까란 글을 쓴 것을 읽었다. 그 글에서 매우 인상 깊었던 부분은 패션 디자인 산업의 완성을 숙련공에게서 찾았다는 점이다. 

아무리 천재적인 영감을 가진 디자이너가 있어도 그의 생각을 미세한 부분까지 구현해내줄 이가 없으면 그 생각은 스케치에 머물고 만다. 마치 마치 다 빈치의 구상을 당대 기술이 구현해내지 못한 것처럼. 그래도 저 바닥에도 시스템이라는 것이 어떤 건가를 생각하는 분은 계시는구나하고 절로 고개를 숙였다. 적어도 그 민망한 연구보고서같은 소리는 아니지 않나.

전태일이 사라지고도 한동안은, 아니 80년대말까지도 평화시장의 아이들은 주택가 지하실에 작은 재단용 책상, 미싱 두어개(삼봉, 본봉, 오바르꼬)만 있어도 적당히 먹고 살 수 있었다.(커피전문점이 경쟁자로 나서기 전까지 말이다)

섬유산업이 부흥하지 않는다고 한탄하던 이들은 어느 디자이너가 하던 생각도 하지 못했다. 전태일과 같은 시대를 살면서 고생하던 시다들은(거기서 '진급'하면 미싱사가 되었다) 아이를 낳고 일을 떠났고, 그와 동급의 재단사들은 어디로 갔는지 지금은 전혀 다른 일들을 하며 늙어가고 있다.

책으로만 전태일을, 평화시장을 배운 사람들의 말은 많았지만, 정작 나중에는 전태일을 몰아붙이던 사람들의 색으로 변해가고 있더라. 가끔 그 의기를 입에 담지만, 아아, 전태일도 당신은 알고 싶지도 친하고 싶지도 않았을 것이어요. 좀 냉정히 말하자면 대학생이 되어 처음 술마시며 배운 노동자 세상은 그야말로 당신들의 환상, 80년대 라노베였던 거지.

전태일을 옆에서 보았다는, '참 작더라'는 말에 그 허황한 미사여구들보다 더 깊은 역사가 숨어있다. 

그런데, 짐순이는 그 말을 내뱉거나, 위선적인 사람들 모두와 싸우고 있었을까??

문득 빡치는 게 있어서 쓰는 글이다.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