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GM-79의 삼국사기 이야기
고대 교역은 어디까지 유효한가 본문
몇 달째 가와다 준조의 "무문자사회의 역사"를 읽고 읶는지 모른다. 올해 초의 석달하고 반에서 한달 반 가량은 일을 하느라 깊은 잠을 자지 못하고 있었고, 두 달 동안은 마치 1차대전 참호전과 같았다. 이 책말고도 읽어야 할 것도 많았지만, 이 책이 한 문장, 한 문장이 그냥 스쳐지나갈 수는 없었다. 아주 오래간만에 매우 천천히 음미할 책을 골랐달까. 문제는 올해안에 마치기로 한 작업에 이 책이 매우 중요한 지도서라는 것.
본디 대외관계에서교역을 전쟁보다도 아래로 보았고, 이제는 외교행위보다도 한참 떨어지는 중요도라고 본다. 알려지면 곤란하지만, 한국고대사에서 교역이 가지는 중요성을 매우 낮게본다는 말이다. 물론 청동기~초기철기, 거기에 낙랑을 더한 초기교역과 7~10세기 황해, 또는 동아지중해 교역의 번성함을 무시하는 건 아니다. 다만 그것이 정치, 사회적 변화를 이끄는데 전쟁보다도 미약하다는 관점이라는 말이다.(이거 혼나도 할 말 없는 소리군)
가와다 준조의 책은 초기 사회의 역사가 정착되는 과정에 대해 다루다가 후반부 들어서 그 사회가 가진 역사적 성격을이야기한다. 16장의 후반부는 교역망과 권력의 형성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다. 여기서 길게 이야기하면 스스로 자백하는 셈이므로 인상깊은 마지막 문단을 옮겨보기로 한다.
모시 사회의 집권적 정치조직 하의 사회에서 '농민적 기초'와 '장거리 교역'은 후자가 수장의 권위를 강회시키는 역할을 하는 형태로 공존할 수 있지만, 양자가 농산물의(다른 사회에 팔기 위한) 상품화나, 또는 (농경생산을 증대시킬 수 있는) 상품의 (다른 사회로부터) 유압이라는 형태로는 유기적으로 결부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군사정치적 지배자가 장거리 교역을 기생적으로 이용하면 수장의 지배는 강화되겠지만 농경에 기초항 모시 사회 전체의 부의 축적에능 공헌하지 않는다. 오히려 모시 사회의 생활권으로부터 다른 지방으로 내다파는 주요 상품안 노예가 유출-노예는 모시사회의 내부의 전란의 결과로 획득된 것도 있고 약소한 다른 부족을 습격하여 포획한 것도 있지만, 크게 보아서 그 지방 전체의 생산력 유출인 것에는 변함이 없다-됨으로써 비료를 주지 않는 이동식 화전 농경이 자연에 대해 '약탈적'인 것과 마찬가지로 모시 사회를 포함한 사바나에 퍼져있는 이 지방 사회전체에 약탈적으로 작용한다고 생각할 수 았는 것이다.
- 가와다 준조, "무문자사회이 역사", 논형, 2004, 193~194쪽.
하인라인의 소설 "달은 무자비한 밤이 여왕"의 앞 부분에서 달세계 식민지인들의 독립의지가 확산되는 한 집회에서 이와같은 양상이 문제로 제기된다. 달은, 미국과 호주를 살짝 뒤섞은 형태의 이 식민지에서 농산물을 지구로 송출하는 행위는 일방적인 달자원의 소멸로 이어진다는 것이다.(달에서는 물과 공기도 다 돈으로 사야하는데, 아무리 노력해도 농산물의 수출은 순환되지 않는 자원의 이동이고, 달은 갈 수록 피폐해진다) 모든교역이 이런 것은 아니지만 고대의 대부분의 교역은 현대의 교역보다는 이쪽에 더 가갑다. 어떤 이들은 고대의 교역을 현대의 무역과 이어지는, 적어도 지중해시대의 이탈리아 주도의 교역망으로 '둔갑'시키려 하지만,(그 사람들은 마치 그 때도 국제무역기구가 존재하는 것처럼, 각국에서 통상관련부서가 존재하고 중요시되는 것처럼 이야기한다) 가야 국가군 중 '일부'의 철교역을 제외하고나면 지배층에 국한된 교역인 것이다. 이보다 더 발전적인 7~10세기 동아시아 교역망 역시 역사적 발전 동인으로서의 중요도 순위는 한 없이 뒤로 밀린다.
더 이상하면 곤란하므로 여기서 중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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