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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GM-79의 삼국사기 이야기
아주 오래간만에 삼국사기를 폈습니다.(물론 전혀 안 들쳐본 건 아닙니다. 이 블로그 글을 위해 펴든 것이 매우 오래전의 일이었다는 말이죠) 이 대목을 꺼내 든 것은 마침 "후한서 동이열전 연구"라는 책을 보기 위해 가평의 도서관까지 갔다가(삭주에는 없습니다) 마침 이 대목에 대한 언급이 나온 것이 첫째요. 마침 "남만 탐미다례 천년사"의 일로 시끄러운 형국이라 그렇습니다. 원문 二年春, 遣將襲漢右北平・漁陽・上谷・太原, 而遼東太守蔡彤, 以恩信待之, 乃復和親. 번역 2년 봄, 장수를 보내어 한의 우북평・어양・상곡・태원을 습격케 하였다. 요동태수 채동이 은덕과 신의로 대하니 이에 다시 화친하였다 - 삼국사기 권 14, 고구려본기2, 모본왕 2년조 일단, 눈에 들어오는 지역의 위치는 이렇습니다. 지금의 북경의 ..
서력왕명왕력교전대상내 용12유리왕31요서군왕망의 흉노원정 강제동원에 대항하여 요서대윤 전담 살해. 장군 엄우에게 진압 당함1433현도군한의 고구려현 기습공격28대무신왕11요동군요동태수의 공격을 수성전으로 방어함3215낙랑국최리의 낙랑국을 공격하여 멸망시킴49모본왕2후한우북평ㆍ어양ㆍ상곡ㆍ태원공격105태조왕53요동군요동군의 6개 현을 약탈하다 태수 경기에게 대패함11866현도군예맥과 함께 현도군을 공격, 화려성 공격12169유주유주자사 풍환, 요동태수 채풍, 현도태수 요광의 공격, 고구려군이 반격하여 격퇴요동군요동군의 요대현을 공격, 태수 채풍 전사현도군현도성을 포위하였으나, 한ㆍ부여 연합군에 의해 패배함12270요동군요동군을 공격하였으나, 한ㆍ부여 연합군에게 패배함14694요동군서안평현을 쳐서 대방령을 죽..
원문十年 春二月 吳王孫權 遣使者胡衛通和 王留其使 至秋七月 斬之 傳首於魏十一年 遣使如魏 賀改年號 是景初元年也十二年 魏太傅司馬宣王率衆 討公孫淵 王遣主簿大加 將兵千人助之十六年 王遣將 襲破遼東西安平 해석10년(236) 봄 2월 오왕 손권이 사자 호위를 보내어 화친하고자 하였으나 왕은 사자를 붙잡아두고는 가을 7월에 이르러 참수하고 그 머리를 위에 보냈다.11년(237) 사신을 위에 보내어 언호를 바꾼 것을 축하하였다. 이 해가 경초 원년이었다.12년(238) 위의 태부 사마선왕이 무리를 이끌고 공손연을 토벌하매, 왕은 주부와 대가를 보내어 병사 천명으로 하여금 돕게 하였다.16년(242) 왕은 장수를 보내어 요동(군)의 서안평(현)을 치게 하였다. 삼국지 게임에서 관도대전의 막이 올라갈 때쯤. 중원지역에 발을 ..
원문延優遣弟罽須 將兵禦之 漢兵大敗 罽須自爲先鋒追北 發歧告罽須曰 “汝今忍害老兄乎” 罽須不能無情於兄弟 不敢害之 曰 “延優不以國讓 雖非義也 爾以一時之憤 欲滅宗國 是何意耶 身沒之後 何面目以見先人乎” 發歧聞之 不勝慙悔 奔至裴川 自刎死 罽須哀哭 收其屍 草葬訖而還 해석연우는 아우 계수를 보내어 병사들을 이끌고 (발기의 군대를) 막게 하였다. 계수는 스스로 선봉이 되어 패한 자들을 쫓았다. 발기가 계수를 보고 말하기를 “너는 지금 늙은 형을 해하려 하느냐”고 하자 계수가 형제에게 무정할 수 없어 감히 해치지 못하고 말했다. “연우는 나라를 양보함이 없으니 비록 의롭지는 못하다. 그러나 당신은 한 때의 분노로 조국을 멸하고자 하니 이는 어쩌자는 것이냐. 육신이 죽은 후에 어떤 얼굴로 조상들을 대할 것이냐?” 발기가 그 ..
원문發歧知難 以妻子奔遼東 見太守公孫度 告曰 "某高句麗王男武之母弟也 男武死 無子 某之弟延優與嫂于氏謀卽位 以廢天倫之義 是用憤恚 來投上國 伏願假兵三萬 令擊之 得以平亂" 公孫度從之 해석발기는 (일이 이루어지는 게) 어려움을 알고 저자와 함께 요동으로 떠나서 (요동)태수 공손도를 만나 말하기를 "나는 고구려왕 남무의 형제올시다. 남무가 죽고 자식이 없어 동생인 연우가 형수와 공모하여 즉위하였소. 천륜의 의를 저버렸으니 이에 화를 참을 수 없어 상국에 투항하는 바입니다. 엎드려 바라옵건데병사 3만만 빌려주셔서 그들을 쳐 난을 평정케 해주시오." 공손도가 이 말에 따랐다. 빨리 어서 이 시리즈를 끝내고 싶어요. 주인공 이름을 부르기 참 민망해요. 소드마스터 척준경이 드라마나 영화화 안되는 이유가 있어요. 오직 그의 ..
본격적으로 고구려사 이야기를 함에 앞서서과연 어떤 토양에서 자랐길래 고구려가 그런 역사를 가지게 되었느냐는 이야기를 먼저해야 합니다.과거 제국주의 시절에 백인들이 자기들의 우월함을 환경결정론으로 수식을 했었죠.그것은 결국 피압박민의 역사에도 적용되어 이런 환경에서 컸으니 이 모양이라식민지배를 받는 게 앞으로의 역사에 도움된다는 ‘걸왕의 개가 짖는’ 소릴 했다지만역시나 역사적 진화에 있어서 환경이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환경이야기를 함에 있어 과거 제국주의 합리화 논리가 아니라재레드 다이아먼드의 “총ㆍ균ㆍ쇠”처럼 ‘인간이 환경에서 거둘 수 있는 자원은 무엇인가’에 초점을 두고 이야기해야 한다고 봅니다.왜냐하면 꼭 그 환경이라고 그렇게 흘러간다는 공식은 전혀 성립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고구려 건국기의 자연환경..